Skip to main content

도널드 트럼프 '주한미군 방위비' 재차 저격, '안보 장사'에 韓 본보기 삼았나

도널드 트럼프 '주한미군 방위비' 재차 저격, '안보 장사'에 韓 본보기 삼았나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트럼프 “韓은 머니 머신”, 방위비 인상 언급
최근 타결한 2026년 1.5조보다 9배 많은 규모
주한미군 규모, 실제 분담금 왜곡하며 표심 자극
2기 행정부 집권 시 '재협상 시도' 전망 확산
SMA_PE_20241017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한·미 간에 최근 타결한 주한미군 주둔비용(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다시 할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또 내놨다. 이는 '한국은 부유하면서도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인식이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집권 당시 한국 등 우방국들에 고액의 계산서를 들이밀었던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한미동맹이 또 한 번 '트럼프 탠트럼(발작)'을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또 韓 방위비 거론 "이용당해선 안 돼"

16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는 폭스뉴스의 ‘포크너 포커스(Faulkner Focus)’ 타운홀 미팅에서 “한국에는 4만2,000명의 미군이 있지만 그들(한국)은 돈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그들에게 돈을 내게 했는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협상을 해 그들은 더 이상 돈을 내지 않는다"며 “그들(한국)은 부유한 나라다.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이상 이용당할 수만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는 전날인 15일에도 시카고경제클럽에서 진행된 블룸버그 대담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현금자동지급기)’이라 지칭하며 자신이 재임 중이라면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6,000억원)를 지불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100억 달러는 2026년부터 5년간 한국이 지불할 액수의 9배에 가까운 규모다.

앞서 한미 양국은 이달 초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을 2025년 대비 8.3% 오른 1조5,192억원으로 책정하는 내용의 방위비분담금협정(SMA)을 타결했다. 2030년까지 매년 분담금을 올릴 때 조건으로 물가를 반영키로 함으로써 급격한 분담금 증가를 예방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이런 약속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실제 트럼프의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We have to start)'는 발언은 재집권 시 이번 SMA를 깨고 재협상을 요구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트럼프는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위협한 바도 있다. 이에 외교가에서도 만일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한국과 미국이 대선에 앞서 서둘러 끝맺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방위비·주둔 규모 등 기본 사실도 왜곡

트럼프가 한국의 실제 분담금과 관련한 ‘가짜 뉴스’를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데 대해선 한국을 표적으로 삼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트럼프의 최근 행보는 미국 대선의 한반도 안보 영향을 분석한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고서와도 맞아떨어진다. CSIS는 지난달 “트럼프는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하면서도 국방비 지출이 적은 동맹국을 가장 경멸한다”며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동안 한국은 쉽게 트럼프의 목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445억 달러(약 60조9,000억원) 규모의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했고, 올해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점이 트럼프의 분노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 이전에 방위비 분담금을 거의 지불하지 않았다거나,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분담금을 대폭 낮췄다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인 2016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9,441억원이었고,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20년에는 1조389억원이었다.

한국의 방위비가 낮다는 것도 거짓이다. 우리나라 방위비 분담금은 다른 동맹국과 비교해서도 최고 수준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GDP(국내총생산) 대비 방위비 분담금 비율은 우리가 0.052%로, 일본(0.037%), 독일(0.015%)보다 높다. 국방비 수준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국방비 가이드라인인 '국내총생산(GDP)의 2%'를 넘는 2.5%에 이르고 있어 1%대 수준인 일본과 독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트럼프가 줄곧 4만 명이라 주장하고 있는 주한 미군 규모도 실제로는 2만8,500명 수준이다.

United States Forces Korea_PE_20241017
사진=주한미군

미군 주둔, 쌍방이 윈-윈

주한미군을 마치 한국에 시혜를 베푸는 존재로 여기는 것도 잘못된 인식이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주한미군의 철수보다는 ‘철수론’을 활용해 한국과 협상할 때 큰 이익을 취해왔다. 노무현 정부 당시 이뤄진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FOTA) 회의에서도 미국 쪽 협상대표 리처드 롤리스(Richard Lawless) 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부차관은 주한미군 철수론을 꺼내 들었다.

이에 당시 북핵 문제 이외에도 용산기지 이전, 주한미군 재배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등의 모든 난제가 미국의 뜻대로 이뤄졌다. 이렇게 터득한 주한미군 철수론 활용법은 한미 협상에 있어 미국의 만능 보검이 됐다. 트럼프 역시 지난 집권 당시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을 지렛대 삼아 분담금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치적으로 자랑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도 적지 않다. 특히 중국 견제 등 미국의 이익은 쏙 빼놓고 오로지 한국을 위해서만 주둔하는 것처럼 강변하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미군이 아무런 이득 없이 한반도에 주둔할 리 만무하다. 지난 2차 세계대전으로 패권을 쥐게 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독일,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에 군대를 배치하며 자국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토를 늘려왔다. 냉전 시대 당시 라이벌이었던 소련과 인접한 한국에 주둔하며 ‘남한의 공산화’를 막은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가 공짜 혜택을 입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산 무기를 대량 사들이고 있다. 당초 지급할 의무가 없었던 방위비 분담금도 1991년(당시 1,000억원)부터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다. 1953년 10월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은 토지, 건물만 제공하고 주둔비용은 일체 미국이 부담하도록 했지만, 미국이 한국의 경제력 상승에 변심한 것이다. 물론 냉전이 종식되고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현행 주둔 방식의 효용성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이에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특정 지역에 주둔하는 붙박이 미군을 전략적 상황에 따라 어디든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기동군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게 중론이다. 2004년 전국에 흩어진 미군 기지를 모아놓은 경기 평택의 험프리스 기지가 사실상 ‘중국 견제 맞춤형’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중국이 도발하면 곧바로 미사일로 베이징을 타격할 수 있는 구조다. 또한 북한이 미 본토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알래스카에서 탐지하는 데는 15분이 걸리지만 한국에선 8초밖에 걸리지 않으며, 북한 공격에 대한 미 본토 방어에도 주한미군이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부 감축은 불가피할지 모르나 전면 철수는 미국에도 좋을 게 없다는 얘기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러시아 '병력 부족'에 김정은 손잡았나, 우크라 언론 "러, 북한군 3,000명 부대 편성 중"

러시아 '병력 부족'에 김정은 손잡았나, 우크라 언론 "러, 북한군 3,000명 부대 편성 중"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김차수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신선한 시각으로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수정

우크라 현지 매체들 "국경 공수여단에 3,000명 대대급 편성"
한족과 외모 흡사한 몽골계 '부랴트 특수대대'로 편제
키이우인디펜던트 "북한군 1만 명 러시아 파병" 주장도
NIS_PE_20241016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에 파병될 특수전 부대의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사진=국가정보원

심각한 병력 부족을 겪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이 보낸 지원 병력으로 대대급 부대를 편성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들은 러시아군 11공수돌격여단 내에 ‘부랴트(Buryat) 특수대대’로 편제될 것으로 알려졌다. 부랴트는 한민족과 외모가 흡사한 몽골계 러시아인이 모여 사는 러시아 연방 소속 공화국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러, 北 병력으로 특별대대 조직"

15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포스트와 리가넷은 자국군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군이 제11공수돌격여단에 북한군 장병으로 구성된 부랴트 특수대대를 조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리가넷은 이 대대 예상 병력이 약 3,000명이며, 현재 소형 무기와 탄약을 보급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8월 공격한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주에 배치될 수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HUR) 소식통은 키이우포스트에 북한이 무기와 장비뿐 아니라 러시아의 병력 손실도 메꾸기 위해 대규모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키이우인디펜던트는 더 나아가 북한이 군인 1만 명을 러시아에 보냈으며 이들의 역할은 분명하지 않다고 서방 외교관을 인용해 보도했다.

북한군 파병설은 이달 초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서 북한군이 사망했다는 보도 이후 계속 언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언론은 지난 3일 도네츠크 전선에서 자국군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한 러시아 측 20여 명 가운데 북한군 6명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키이우포스트는 숨진 북한군이 러시아에 지원한 탄약 등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 파견된 인력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Putin Kimjungun 2024062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9일 평양 순안 공항에서 열린 푸틴의 출국 행사에 참석해 함께 서 있다/사진=크렘린궁

북한군, 우크라 국경서 집단 탈영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마주한 러시아 브랸스크주(州) 인근 국경 지대에서 북한군 병사들의 집단 탈영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북한군 파병설에 힘을 더했다. 우크라이나군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 브랸스크주와 쿠르스크주 사이 우크라이나 국경 북서쪽 약 7㎞ 지점에서 북한군 병사 18명이 탈영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며 “러시아군이 이들을 뒤쫓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이들이 잡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현지의 러시아군이 이 사실을 상급 부대에는 숨기려 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들의 정확한 소속 및 탈영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포탄과 미사일에 이어 병력까지 지원받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올해 맺은 조약을 근거로 러시아에 무기에 이어 군인도 보낼 것이란 관측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 방문 때 맺은 양국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돼 있다. 이를 근거로 러시아는 지난 8월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주 진격을 ‘(러시아가)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라고 간주, 북한에 군사 지원을 공식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동해·경의선 도로 폭파도 러의 뒷배 덕분"

러시아 측은 이를 '가짜뉴스'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최근 북·러 군사 밀착에서 엿보이는 정황상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게 국내외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 도발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 교란에 이어 남북을 연결해 온 동해·경의선 도로까지 폭파한 것도 러시아의 뒷배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 도로를 멋대로 폭파한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서울 작전 지도를 펴놓고 “주권을 침해하면 물리력을 거침없이 사용하겠다”며 재차 협박하기도 했는데, 이는 러시아 외교부가 평양 상공에 출현한 무인기(드론)에 대해 사실 확인도 없이 “한국의 도발적 행동”이라 단정하면서 “북한이 침략당하면 군사 원조를 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과 유사한 행보라는 게 중론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작년 말부터 남북 육로 단절을 위해 도로 주변 지뢰 매설과 가로등 제거, 철로 제거, 인접 부속 건물 철거 등을 진행해 왔다. 북한은 작년 11월 경의선 도로 인근에 나뭇잎 지뢰를 살포했고, 같은 해 12월 동해선에 지뢰를 매설했으며, 올해 3월 동해선 도로 펜스를 철거했고, 4월엔 경의선 도로 가로등을 철거했다. 이어 지난 5월에는 동해선 철도 레일 및 침목을 제거했고, 6월에 동해선 도로 가로등을 철거했으며, 7월엔 경의선 철도 레일 및 침목을 제거, 8월 경의선 열차 보관소를 해체했다.

이 같은 북·러의 군사적 밀착은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 초미의 위협 요소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번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정찰위성, 원자력 추진 잠수함, 핵무기 기술 등의 전수에 합의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무엇보다 북한군이 6·25 이후 본격적인 현대전 경험을 쌓음으로써 도발 능력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거절해 왔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을 개시하라는 국제 사회의 압력이 커질 수도 있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김차수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신선한 시각으로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미-중 갈등이 불러온 반도체 겨울, 시장 최고 '슈퍼 을' ASML에도 한파 덮쳤다

미-중 갈등이 불러온 반도체 겨울, 시장 최고 '슈퍼 을' ASML에도 한파 덮쳤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이시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세상은 다면적입니다. 내공이 쌓인다는 것은 다면성을 두루 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내공을 쌓고 있습니다. 쌓아놓은 내공을 여러분과 공유하겠습니다.

수정

중국 판매 급감에 ASML도 3분기 실적 쇼크
매출 비중 49% → 20%대로 추락
AI 외 칩 수요 부진, 내년 매출 전망치도 큰 폭으로 하향 조정
장비 예약 급감, 삼성전자 내년 투자 축소도 영향
ASML_20241016_PE
사진=ASML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업체인 네덜란드 ASML이 3분기 실적 발표 후 주가가 15%나 떨어졌다. 3분기 실적 자체는 양호했으나 내년 매출 전망치가 크게 하락한 것과 중국 매출 감소가 주요 원인이다. 특히 미-중 갈등 영향으로 반도체 관련 상품의 중국 판매 제품이 제한된 것이 직·간접적으로 ASML 매출 저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미-중 갈등에 중국 수요 급감, 내년 매출 전망 어두워

15일(현지시각) ASML은 올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약 20% 오른 74억7,000만 유로(약 11조원), 주당순이익은 약 31% 증가한 5.28유로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ASML은 당초 16일 실적 발표 설명회와 함께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회사 측 실수로 하루 전 ASML 웹사이트에 실적이 공개됐다. ASML은 이에 대해 기술적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올 3분기 매출이 전년보다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크게 하락한 것은 내년 매출 전망치가 어둡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증권가 관계자들은 일반적으로 향후 2분기에서 최대 4분기 동안의 실적이 현재 주가에 직접 반영된다고 본다. 때문에 내년 실적을 가늠할 수 있는 순예약(Net bookings) 규모가 ASML의 주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초 시장조사업체 LSEG는 주요 보고서들 합계를 토대로 3분기 중 순예약을 56억 유로(약 8조3,000억원)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26억3,300만 유로(약 3조9,000억원)에 그친 것으로 알려져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어 내년 매출 전망치도 기존 예상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을 나타났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로 ASML 노광기의 중국 수출길이 제한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로저 다센(Roger Dassen) ASML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내년 중국 사업이 회사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회사의 주문 잔고에 나타난 비율과도 일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 2분기 ASML은 매출액의 49%가 중국에서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 매출 예상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든 데 가장 큰 영향을 줄 만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 미국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생산 국가들에서 장비 주문 물량이 줄어든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는 D램 생산 설비를 올해 대비 내년에 거의 추가 증설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으로 수익화가 급한 SK하이닉스만 설비 투자가 예정돼 있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도 콘퍼런스 콜 중 “AI 분야에선 계속해서 강력한 발전과 상승 가능성이 있는 반면, 다른 시장 부문들은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며 “현재 수요 회복 속도는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완만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추세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일부 고객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ASML_2_20241016_PE
사진=ASML

'반도체 겨울론', AI 칩 제외한 모든 반도체가 한파에 떨 것

이런 가운데 지난달 모건스탠리 숀 킴 애널리스트의 반도체 겨울론 발표 이후 반도체 업계에서는 D램 감산 이외에는 수익성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특히 ASML의 노광기 수요 지연이 현실화되자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증설을 쉬어가는 것이 기정 사실화 될 것으로 내다본다. 푸케 CEO도 ASML은 부진한 장비 예약 실적을 두고 “EUV(극자외선) 리소그래피(노광) 장비에서의 수요 지연이 원인”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의 주요 업체들이 D램 가격 정체에 생산 설비 확대를 늦추고 있는 것이 주원인이다. 특히 최악의 실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인텔은 파운드리 자본 지출을 줄이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신규 반도체 생산 공장인 평택 P4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팹의 발주를 미뤘다.

이어 중국의 저가형 D램 생산 물량 확대도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 2분기까지 중국에서 구형 노광기를 대규모로 수입했고, 중국발 DDR(더블데이터레이트)4 등의 구형 메모리 반도체 공급량이 확대되면서 D램 가격 상승세가 올해 여름부터 꺾인 상태다. 지난달 발표된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에서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점유율이 10%를 넘은 것으로 알려지며 중국이 이끄는 반도체 겨울론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미-중 갈등 여파로 ASML이 내년부터 중국에 반도체 장비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발 D램 한파가 내년 이후까지 이어질지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반면 중국 시장 전문가들은 구형 노광기인 DUV 장비에 의존해 생산을 계속할 경우 D램 가격 정상화가 지연될 여지가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ASML과 관련해서는 재고 자산으로 분류된 구형 장비들을 중국에 판매하고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남기던 기존 ASML의 사업 모델이 보완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제재 대비 사재기했던 장비 남아있어 장기화 될 것 전망도

일각에서는 지난 1, 2분기 동안 중국이 DUV 장비를 대규모로 사재기했던 것을 감안하면 미국 제재가 가시화되더라도 당분간 중국산 저가 D램 공급량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지난해만 해도 ASML의 중국 매출 비중은 1분기 8%에 불과했다가 2분기 들어 24%로 크게 증가했던 것을 고려하면, 중국이 추가 장비 매입 없이도 내년 이후까지 장기적으로 저가형 D램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ASML뿐만 아니라 유럽의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인 KLA,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1, 2분기에 40%를 넘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 제한을 예상하고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적극적으로 장비를 사재기했던 만큼, 내년까지 물량 공급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이시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세상은 다면적입니다. 내공이 쌓인다는 것은 다면성을 두루 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내공을 쌓고 있습니다. 쌓아놓은 내공을 여러분과 공유하겠습니다.

중국 국경절 정부 부양책에 TV 판매 급증, LCD 수요 폭증에 LCD 가격 오를 것 전망

중국 국경절 정부 부양책에 TV 판매 급증, LCD 수요 폭증에 LCD 가격 오를 것 전망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이태선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수정

중국 정부 보조금 지급에 4분기 중국 TV 수요 증가 전망
LCD 수요 증가에 시장 단가 오를 전망
삼성, LG TV대신 중국산 TV 수요만 증가
삼성, LG는 LCD 매각 후 시장 구매 중, 단가 올라 비용 부담
Hisense_20241015_PE
중국 하이센스의 퀀텀닷 QLED TV/사진=하이센스

중국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으로 올해 4분기 TV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에 따라 중국 TV 제조업체들이 올해 4분기에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구입을 늘릴 것으로 예상되며, 패널 가격 상승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중국 시장 점유율이 2%에 불과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큰 혜택을 받기 어려우며 오히려 패널 가격 인상으로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정부 보조금 지급에 TV 판매 급증, 국내 기업은 손해만 볼 수도

14일 시장조사업체 DSCC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중국 정부가 시행한 보조금 프로그램은 4분기 TV 수요를 촉진할 것”이라며 “보조금이 시행됨에 따라 올해 중국 내 TV 판매량이 4,000만 대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에서 안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중국의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지난달 15일 지역 상황에 따라 소비재 구입을 지원하기 위해 지방에 1,500억 위안(약 28조7,000억 원)의 초장기 특별 국채 기금을 발행했다. 이에 따라 중국 소비자는 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 등 조건에 맞는 8가지 유형의 가전제품을 구매할 때 판매 가격의 15%~20%에 해당하는 보조금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에너지 효율 등급이 2단계인 TV는 15%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으며, 효율 등급이 1단계인 TV를 구매하면 20%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중국 TV 시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출하량이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TV 출하량은 2018년 6,000만 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 5,000만 대 이하로 떨어졌고 2023년에는 4,000만 대 이하로 더욱 쪼그라들었다. 올해 역시 지난해 대비 TV 출하량이 11%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다만 보조금 지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3,000만 대 후반 수준에서 안정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 동안 중국 내 LCD TV 판매는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9월부터 시행한 '가전 이구환신' 정책 덕분에 그간 침체됐던 TV 수요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오래된 가전제품을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할 때 소비자에게 판매 가격의 15~2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TV, 냉장고, 세탁기 등 8가지 품목에 대해 품목당 최대 2,000위안(약 38만원)의 보조금을 제공한다. 올해 중국 정부는 보조금 예산을 사상 최대인 3,000억 위안(약 57조7,000억원)으로 확대했다.

LG_TE_OLED_202410
사진=LG전자

혜택은 중국 기업들만, LCD 구매하는 한국 기업들은 손해

그러나 이런 혜택은 중국 자국 기업들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조사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중·일 지역의 소비자들은 자국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중국의 주요 TV 제조업체인 TCL, 하이센스, 스카이워스, 샤오미 등은 4분기 생산 목표를 10~20% 상향 조정하고 있으며, LCD 패널 구매도 늘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LCD 패널 가격이 상승하면서 국내 TV 제조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의 패널 제조업체들은 올해 중순 가격이 최고점을 찍은 후 하락하자 공급을 조절하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수요 증가로 인해 빠르게 공장을 재가동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CD 패널 가격이 전년 대비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에는 비용 부담이 계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2022년에 마지막으로 LCD를 생산했고, 이후 중국 기업에 매각했다. LG전자는 올해 9월에 광저우에 있던 LCD 공장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으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국 지난 2022년부터 국내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LCD 공장을 매각하면서 우려했던 상황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앞서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LCD 공급을 완전히 장악한 가운데 자칫 가격 협상력마저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국내 기업들 아직도 LCD 필요한 상황, 시장 대응 전략 찾아야

이에 LCD 업계 관계자들은 OLED로 완전한 이전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LCD 사업부를 지나치게 일찍 매각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아직 글로벌 LCD 수요가 견고한 데다 국내 제조사들이 LCD 패널 제품 생산을 이어갈 계획인 만큼 이에 대응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한해 LCD TV 생산량은 연간 5,000만 대 규모로, 전체 TV 제품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산 LCD 패널 생산라인이 전부 사라질 경우 자연스럽게 전체 생산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의 대형 LCD 패널 시장 점유율은 49.7%에 달한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기업 BOE의 경우 점유율이 32.3% 달한다. 이번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공장을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는 CSOT도 현재 17.4%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만약 광저우 LCD까지 넘어가게 되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LCD 패널의 70%가 중국이 차지하게 된다. 일각에선 대만과 일본 기업들을 물망에 올려놓고 향후 대체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시장 전체 생산 규모를 감안했을 때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가 가격경쟁력과 시장 영향력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점하고 있어 다른 선택지를 고른다는 게 쉽지 않다.

막대한 고정비 및 LCD 사업부의 부채 등을 감안하면 일시적인 가격 상승을 감당하더라도 LCD 사업부를 매각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업계 관계자도 많다. 실제로 LG 디스플레이의 경우 부채만 16조원인 상황으로, OLED 사업 및 터치 인식 등의 기술적인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금융지원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LCD 패널 가격이 떨어진 시점에 물량을 비축한다거나, OLED 전환을 가속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이태선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국가 간 불평등'에 주목한 3인, 노벨 경제학상 수상 영예

'국가 간 불평등'에 주목한 3인, 노벨 경제학상 수상 영예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김차수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신선한 시각으로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수정

사회제도, 번영에 미치는 영향 분석한 세 교수
경제·사회적 제도가 소득 격차 결정 주장
성공·실패 대표적 사례로 대한민국-북한 언급
EKONOMIPRISET_PE_20241015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제모을루(왼쪽)와 사이먼 존슨(가운데), 제임스 로빈슨/사진=스웨덴 한림원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하나같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동시에 전 세계 번영의 길은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와 포용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관해선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뒷받침하는 성공 사례로 지목하며 극찬했다.

국가 간 격차 설명한 연구자들, 노벨경제학상 수상

14일(현지시간)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올해 경제학상 수상자로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 (James Robinson) 시카고대 교수를 선정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이들은 법치주의가 부족하고 국민을 착취하는 정권과 사회에선 경제 성장이 더디지만,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반대의 경우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을 분석해 사회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했다.

노벨위원회는 “세 교수는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했다”며 “국가 간 소득 차이를 줄이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인데, 수상자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회 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아제모을루 교수와 로빈슨 교수는 경제를 발전시키고 그 발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좁은 회랑(narrow corridor to liberty)' 등의 저서로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제도'가 자유와 번영 이끈다

‘왜 그토록 여러 나라가 발전하지 못하는지’ 더 나아가 오늘날 ‘번영과 빈곤, 세계 불평등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지’를 탐구하는 두 교수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하는 곳은 바로 대한민국의 성공과 북한의 실패다. 두 교수는 대한민국이 번영하고 북한이 빈곤한 것은 제도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한민국은 사유재산이 보장되고 법치주의가 적용되며 자유로운 직업 선택이 보장되는 ‘포용적 경제제도’를 택한 결과 경제적 번영을 누렸지만 북한은 소수가 더 큰 이익을 챙기는 ‘착취적 경제 제도’를 도입해 빈곤해졌다는 것이다.

두 교수는 "대한민국은 포용적 경제제도, 다시 말해 사유재산이 보장되고,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며,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가 제공되는 시스템을 채택했다"며 "그 결과 경제활동이 왕성해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며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반면 북한은 일부 개인과 집단이 더 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착취적 경제제도를 도입했고, 그것이 북한 체제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봤다.

두 교수는 이 같은 착취적 제도야말로 ‘실패한 국가들의 공통점’이라고 지적하면서 “착취적 제도가 끈질기게 계속되는 이유는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서로 지탱해줌으로써 점진적인 개선을 방해하는 엄청난 장애물이 생겨나기 때문"이라며 "이런 순환 고리가 두고두고 반복되며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것”라고 말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의 후속작인 '좁은 회랑'에서는 ‘포용적 제도’를 채택해 어렵게 번영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그리고 번영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할지라도 번영을 계속해서 지속하게 하는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설파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교수가 “국가와 사회가 둘 다 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두 교수는 국가나 사회보다는 시장과 개인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들과 차이점을 보여준다. 폭력을 억제하고, 법을 집행하며,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을 추구할 역량을 갖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지만, 강력한 국가를 통제하고 제약하려면 강력하고 결집된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사회가 국가를 경계하지 않으면 헌법과 권리 보장의 값어치는 그것이 적힌 종이값에 지나지 않으며, 독재 국가가 불러오는 공포와 억압 그리고 국가의 부재로 나타나는 폭력과 무법 상태 사이에 자유로 가는 좁은 회랑이 끼어 있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두 교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국가가 사회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역량을 키우면서도 여전히 족쇄를 차고 있을 수 있게 보장하느냐”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리바이어던(Leviathan, 절대권력을 가진 국가)이 시장 가격과 소득 분배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조세를 통한 재분배에만 의존해 목표를 이루려고 하면 높은 수준의 세금 부담과 재분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 발전이 모두에게 이익' 통념 배격

아제모을루 교수는 존슨 교수와 공동 편찬한 '권력과 진보'에선 기술 발전이 곧 진보라는 통념에 반박했다. 두 교수는 기술 그 자체는 인류의 삶에 번영을 가져다 주지 않으며, 권력을 빼놓고는 인류의 진보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일례로 중세에는 농업기술이, 산업혁명 초기에는 산업기술이 각각 발전했지만, 농민과 노동자의 생활 수준은 나아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정치 권력을 강화하고서야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두 교수는 인공지능(AI) 회의론자기도 하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테크 분야의 많은 리더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자신이 약속한 성취의 대부분을 달성하지 못하면서도 노동자 수요는 줄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맥락에서 두 교수는 한국 정치권에서도 이슈가 된 보편적 기본소득론을 ‘패배주의’라고 비판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 시민들이 무기력하게 일자리와 소득을 잃으리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두 교수는 시민과 노동자들이 권력을 확장해 더 많은 시민이 사회안전망을 누릴 수 있고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기술 발전의 방향을 돌리자고 제안했다.

Paul Romer_PE_20241015
폴 로머 뉴욕대 교수/사진=노벨위원회

폴 로머 교수의 '내생적 경제 성장 이론'

세 교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이끈 경제성장론은 지난 2018년 세계적 석학 폴 로머(Paul Romer) 뉴욕대 교수에게도 노벨상 영예를 안긴 이론이다. 로머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혁신으로 분류되는 지식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방식에 대한 이론을 정립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이른바 '내생적 성장'(Endogenous Growth)론으로,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는 기술·지식·창의적 아이디어는 외부가 아닌 안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이론이다.

로머 교수가 제시한 내생적 경제 성장 이론은 기존의 경제 이론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연구개발(R&D) 부문을 기존의 경제모형에 도입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모형에서는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해 모형 밖에서 외생적(exogenous)으로 주어진다고 가정했지만 로머 교수는 이론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R&D 부문을 모형 내에 도입해 기술발전이 내생적으로 결정되도록 했다. 로머 교수는 기술 발전이 R&D를 통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R&D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이라는 재료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들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R&D를 통해 지식을 발전시키면 경제도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국가별로 경제성장률도, 경제가 발전한 정도도 다른데, 로머 교수는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가 지식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있다고 봤다. 로머 교수에 따르면 모든 유형의 지식은 비경합성(non-rivalry)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비경합성이란 어느 누군가가 사용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피타고라스의 정리(Pythagorean theorem)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의 또 다른 특성으로는 배제성(excludability)이 있다. 이는 다른 사람에 의해 사용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성질을 의미하는 말로, 지식에 따라 배제성이라는 특성을 가질 수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배제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는 비배제성(non-excludability)이라고 부르며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갖는 재화를 공공재라고 한다. 단 공공재는 이익이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은 공공재를 사회적으로 필요한 양보다 적게 만들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 근거로 로머 교수는 지식도 배제성이라는 특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식재산권(IP)을 잘 보호해 줄 수 있는 국가일수록 지식의 축적에 따른 성장 효과가 크다는 주장이다.

로머 교수는 또 전통적인 경제 성장 이론에선 자본과 노동의 투입과 축적으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봤다. 그러나 일정 시점에 다다르면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떨어지면서 더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점은 전통 이론을 가지고 설명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로머 교수는 기술혁신이 한계에 다다른 경제 성장을 지속 가능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교육을 통한 인적 자본의 축적과 R&D가 강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김차수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신선한 시각으로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中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최대 규모 부양책, 비관론-낙관론 팽팽

中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최대 규모 부양책, 비관론-낙관론 팽팽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이동진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IT 기업들의 현재와 그 속에 담길 한국의 미래를 전하겠습니다.

수정

中 란포안 재정부장, 점진적 재정 부양 예고
특수채권 발행 및 재정적자 규모 확대
디플레이션 목전, 더 큰 부양책 요구 목소리도
yuan_PE_20241014
사진=셔터스톡

부진한 경기에 대응해 잇따라 내놓는 중국의 대응책에 시장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구체적인 부양책 규모 등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관론과 추가 부양책을 기대하자는 낙관론이 함께 나오는 모습이다.

낙관론 측 "가뭄 속 단비"

12일 란포안(藍佛安) 중국 재정부장은 3명의 부부장(차관)과 함께 중국의 재정 부양책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란 부장은 이 자리에서 “차입 및 재정적자를 확대할 공간이 크다”며 점진적인 재정 부양을 예고했다. 그러면서 '역주기조절(逆周期調節) 강화'에 대해 설명했다. ‘역주기조절’은 경기가 침체하면 금리 인하와 정부 투자 확대 등을 통해 추가 하락을 막고, 경기가 과열되면 시장의 유동성을 적절하게 긴축하는 경기 대응 정책을 말한다.

란 부장은 이날 올해 나머지 석 달 동안 특수채권 2조3,000억 위안(약 439조원)을 발행하고, 올해 재정적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1,800억 위안(약 34조원) 늘어난 4조600억 위안(약 776조원)으로 편성할 것이라며 적극적 재정정책을 강조했다. 그는 또 지방정부의 부채 리스크 해결, 대형 국유은행의 자본 보충, 부동산 시장의 추가 하락 방지, 소외 계층 지원 등 네 가지 경기 대응 정책을 들었다. 이어 “역주기조절은 네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며 “더 많은 정책 도구를 현재 연구 중이며, 중앙 재정은 차입을 크게 늘릴 공간과 적자를 확대할 공간을 여전히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전문가 반응은 엇갈렸다. 중국 관영 매체는 이번 회견을 가뭄 속 단비를 뜻하는 '급시우(及时雨)'에 비유하며 추가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고 둥시먀오(董希淼) 자오롄금융 수석연구원은 13일 중국중앙방송(CC-TV)과의 인터뷰에서 “란 부장이 차입과 적자 확대를 두 차례 강조했다”며 “안정적 성장, 리스크 해소, 내수 확대, 민생 개선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맞춤 정책이 점진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5% 성장률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경제 기자회견이 연쇄 개최되는 것을 놓고 긍정적 해석도 나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 인식에 '근본적 전환'이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매튜스아시아펀드의 앤디 로스먼 투자전략가는 FT에 “시 주석은 소비자와 기업가 사이에서 신뢰를 회복하려면 정책 대응이 상당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신뢰가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CN_stock market_PE_20241010

비관론 측 "추가 부양책에도 '알맹이' 부재"

반면 양위팅(楊宇霆) 호주·뉴질랜드은행그룹(ANZ)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모두가 숫자를 찾고 있었지만 란 부장은 우리에게 숫자를 주지 않았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지방 정부의 부채를 줄이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재정부의 거시정책은 타당하지만, 시장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 베이징 소재 투자은행 샹송앤코(Chanson & Co)의 선멍(沈萌) 이사 역시 “대다수 사람의 희망이 사라졌다”며 “10월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추가 채권 발행을 비준할 수 있겠지만, 시장은 바로 지금 신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도 “이번에 발표된 중국 재정 부양책에서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 의지가 이전보다 강해지고 있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알맹이가 없어 부양책을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크다"며 "가장 큰 비판을 받는 부분은 일정이나 규모, 세부적인 자금 사용 방법이 제시되지 않은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경제의 가장 큰 숙제가 부채 리스크라는 점에서 이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경기 부양책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나, 문제는 규모다. 발표되는 수준의 재정투입만으로는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어 부양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 디플레이션 공포 현실로

최근 중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만큼 더 큰 부양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9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0.4%)은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고, 생산자 물가도 전년 동월 대비 2.8% 하락하며 6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8월(-1.8%)보다 하락 폭이 커졌고, 시장 예상치(-2.5%)보다도 낮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중국이 산업 과잉 생산 능력과 저조한 소비 등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도한 국내 투자와 수요 감소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고,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임금을 낮추거나 근로자를 해고하면서 소비자 신뢰도를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중국 주식 시장에 대한 신뢰도까지 떨어뜨렸다. 상하이 증시는 2022년 15.13%, 2023년 3.7% 하락했고 올해 초에도 바닥을 쳤다. 최근 중국 지도부가 내놓은 부양책 효과로 단기가 급등세를 보이긴 했지만, 예전과 같은 호조를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이 같은 중국 증시 하락의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유도 있다. 중국공산당은 2021년 중반부터 ‘공동부유’ 정책을 내놓으며 민간 기업과 교육·게임 분야 등 특정 산업을 탄압했고 2022년 3월에는 코로나19가 퍼진 상하이를 장기 봉쇄했다. 이런 ‘단호한 조처’는 공급망과 민생에 영향을 줬을 뿐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불렀고, 큰손들의 탈중국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이동진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IT 기업들의 현재와 그 속에 담길 한국의 미래를 전하겠습니다.

사우디 ‘네옴시티 프로젝트’ 사업 축소 현실화하나, 건설업계 촉각

사우디 ‘네옴시티 프로젝트’ 사업 축소 현실화하나, 건설업계 촉각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김차수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신선한 시각으로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수정

사우디 2025년 예상 회계지출 462조, 전년比 5.2% 감소
저유가 계속돼 대형 프로젝트 조달 자금 부족
국내 업계 “추가 수주 규모 적어져도 당장 큰 영향 없을 것”
NEOMCITY TheLine PE 001 20240626
사진=네옴닷컴

천문학적인 재정이 투입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속도 조절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건설업계의 이목이 사우디로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수주 후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큰 우려를 하지 않지만, 추가적인 수주에서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우디 예상 회계 지출 감소

10일 사우디 재무부가 발표한 2025년 회계연도 사전 예산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의 2025년 예상 회계 지출은 1조2,850억 리얄(약 462조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4년 예상 지출 1조3,550억 리얄에 비해 5.2% 감소한 수준이다. 2025년 예상 수입은 1조1,184억 리얄로 2024년 예상 수입 1조2,370억 리얄(약 458조2,000억원) 대비 4.3% 감소했다.

사우디 정부의 예상 지출이 줄어든 데는 네옴시티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될 것이라는 전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건설업계는 보고 있다.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사우디가 대형 프로젝트에 조달할 자금 여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끄는 정부 위원회는 네옴시티를 포함한 거대 프로젝트들에 대한 전면적 검토에 나서며 네옴시티에 당초 목표보다 20% 적은 예산이 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더욱이 사우디는 올해 1월 이후 네옴시티 대표 사업인 더라인의 공정 속도를 늦추고 있는데, 다른 메가 프로젝트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우디 정부의 예산 압박으로 대형 프로젝트들의 일정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해 8월 사우디의 5대 메가 프로젝트인 디리야, 네옴, 퀴디야, 로신, 홍해개발과 관련한 계약은 한 건도 낙찰되지 않았다.

달라진 사우디 현장 분위기, "사업 둔화 피부로 느낀다"

이에 업계에서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평이 팽배하다. 대형 프로젝트들이 시작되는 만큼 그에 파생되는 다양한 발주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각종 장애물들로 인해 개발 속도가 더뎌지고 발주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현지 관계자들도 사업 둔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에 따르면 올해 사우디 메가 프로젝트 참여사들은 올해 계약 수주가 증가했음에도 사우디의 개발 속도 지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초 우리나라 기업에도 속도를 늦춰달라는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우려는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한 계약 수주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지만, 시장에서의 기대는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재 사우디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지 기업들은 올해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한 활동이 급격하게 둔화되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지난 8월 중동 전문 경제지 MEED 웨비나(온라인 세미나)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362명 중 72%가 올해 기가 프로젝트 활동이 둔화됐다고 답했다. 활동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앞서 올해 초 개최된 MEED 웨비나에서 설문조사 응답자의 92%가 2024년에 더 많은 수주가 기대된다고 답변한 것을 고려하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NEOMCITY TheLine PE 002 20240626
사진=네옴닷컴

사우디, FDI 통해 상쇄 노력

네옴시티는 빈 살만 왕세자가 2017년 발표한 탈(脫)탄소 국가발전 계획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으로 꼽힌다. 사우디는 홍해와 인접한 사막과 산악지대에 서울의 44배 넓이에 달하는 2만6,500㎢ 규모로 친환경 스마트 도시와 바다 위 첨단산업단지,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릴 산악 관광단지 등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네옴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업은 총길이 170㎞ 규모의 초연결 커뮤니티 벨트 조성 사업인 더라인이다. 폭 200m·높이 500m·길이 170㎞의 거대한 직선형 구조물인 더라인은 수소·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되며, 도로나 자동차가 없어 주민들은 초고속 열차와 에어택시로 이동한다.

이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성사시키기 위해 사우디는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부족한 자금을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통해 상쇄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사우디의 올해 1분기 FDI는 45억 달러(약 6조원)를 기록해 연간 목표인 290억 달러(약 40조원)를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요원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건설사들은 아직은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네옴시티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네옴시티가 건축학적으로 불가하거나,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어 투자자들은 막상 사우디 계획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이런 분위기에 민관합동투자(PPP) 사업이 아니면 사우디에 투자할 건설사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그나마 인프라 사업은 건설사 투자 없이 단순 도급이나 턴키(설계·시공 일괄 진행)로 발주가 되니 그 방면으로 노력하면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미글로벌 관계자 역시 “사우디가 재정을 줄이면 추가 수주를 기대했던 것들은 그 규모가 적어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미 수주한 네옴시티 건설 근로자 숙소단지 등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우디가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들을 유치했기 때문에 네옴시티 외에 관련 인프라들도 수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여기서 추가 수주를 기대하는 국내 기업도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김차수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하는 가치라고 믿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신선한 시각으로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통화·재정정책에도 증시 폭락, 中 ‘경기 부양책 회의론’ 급부상

통화·재정정책에도 증시 폭락, 中 ‘경기 부양책 회의론’ 급부상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임선주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미디어의 영향력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예리한 시각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CSI300지수 7.1% 폭락, 항셍지수 이틀째 하락
美 증시 개장 전 알리바바 등 중국 주식 ADR도 하락
전문가들 "지준율 낮춰도 부동산 소생 어려울 것"
CN_stock market_PE_20241010

대규모 부양책으로 들끓던 증시가 한숨 쉬어가는 가운데, 중국 주식의 장기적인 투자 매력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물 경제 반등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은 데다 다음 달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큰 산이 있어서다. 특히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중국에 대한 고율의 관세가 예정돼 있어 수출에 대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증시 강세에 '부의 효과' 기대했지만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은 은행의 지급준비율(RRR·지준율)을 0.5%포인트 인하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오는 12일엔 란포안(藍佛安) 중국 재정부장이 ‘역주기조절 강도 강화와 경제 고품질 발전 추진’ 상황을 브리핑한다. 중국 인민은행이 통화정책을 조정하자, 재정 정책이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재정부장이 기자회견에 나서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달 24일 중국은 지준율을 낮추면서 1조 위안(약 190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정책 금리·부동산 대출 금리 인하, 증시 안정화를 위한 자금 투입 등의 의지도 보였다. 방점을 찍은 것은 주식 매수 자금 지원이었다. 인민은행은 기관투자자들에게 5,000억 위안(약 95조원)을 지원해 주가 받치기에 나서도록 독려했다. 나아가 상장사에도 같은 규모의 자금을 지원해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중앙은행이 나서 노골적인 주가 띄우기에 돌입한 셈이다.

이에 따라 증시도 부양책 발표일을 전후로 일제히 출렁였다. 부양책 발표 전인 지난달 20일부터 국경절 연휴(이달 1~7일) 직전인 9월 30일까지 MSCI중국지수는 무려 30.5% 올랐다. 이 외 선전거래소에 상장된 회사들의 주가가 반영된 선전종합지수는 29.0%, 상해·선전증시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300은 25.5%, 상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으로 구성된 상해종합지수는 21.9% 상승했다. 10일 동안 20~30%가 뛴 것이다. 이처럼 증시가 지속적인 강세를 보이자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 경기가 회복되는 '부의 효과'에 대한 기대도 확산했다.

추가 부양책 실망감 확산, 증시 폭락

하지만 급등 움직임은 지난 9일 멈춰섰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 추진 속도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되면서 중국 증시가 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다. 9일 CSI300 지수는 7.1% 폭락하면서 11일간의 상승 후 처음으로 하락했고, 홍콩 항셍지수도 전날 10% 급락한 후 또다시 1.5% 하락했다. 주식이 폭락하자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으로 돌아오면서 중국 국채가 급등했다. 30년물 선물은 0.8% 상승했고, 현물 시장의 기준 수익률은 소폭 하락했다. 중국 대기업의 미국주식예탁증서도 9일 오전 뉴욕증시 개장전 거래에서 일제히 고꾸라졌다. 소매업체 알리바바와 징둥닷컴은 각각 2.8%와 4.3% 하락했고, 기술 회사인 바이두는 2.9%,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니오는 2.4% 떨어졌다.

이와 관련해 CSOP자산운용의 투자책임자인 왕이는 “투자자들은 경기 부양책이 기업 수익 개선, 더 나은 거시경제 데이터로 빠르게 전환되는 것을 원하지만 기대와 경제 현실 사이에 시차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중국 자본시장이 취약한 상태라는 점도 하락을 견인한 요소로 지목된다. 미국의 경우 최근 주식시장의 전체 시가총액은 55조 달러(약 7경4,200조원)를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29조 달러(약 3경9,000조원)의 190%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를 기준으로 주식시장의 과열 여부를 판단하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주가의 과도한 상승을 경계할 정도다.

반면 중국의 GDP는 18조5,000억 달러(약 2경5,000조원)로 미국의 63% 수준이지만 시가총액은 GDP의 60%가량에 불과한 10조 달러(약 1경3,500조원) 정도다. 중국 인구를 15억 명으로 가정해 추산할 경우 1인당 시가총액은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 급등이 얼마나 경기 부양에 기여할지는 미지수다. 이는 중국 증시가 2021년 고점을 찍은 이후 지금까지 6조5,000억 달러(약 8,800조원)에 달하는 상장기업 시가총액이 증발한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의 시총 증발액은 일본 주식시장의 전체 시총과도 맞먹는 규모다.

pbc_PE_20240926

단기 부양책만으로는 펀더멘털 개선 어려워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결국 부양책의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선 실질적인 경기 반등을 이룰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 중국의 경제 상태는 2015년보다 훨씬 나쁜 상태로, 중국 경제가 제대로 회복하려면 성장을 이끄는 양 날개인 제조업과 부동산 경기가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공장을 자임하면서 수출 위주로 성장한 제조업은 무역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는 주요국의 견제로 휘청거리고 있다. 이에 수출기업은 판매단가를 낮춰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판매단가의 인위적 하락은 무역 상대국의 적대감을 고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수출기업 자체의 수익성이 악화한다. 이에 현재 다수의 중국 기업이 무역마찰을 피하고자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국내 공장을 닫으면서 실업 문제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 역시 중국 경기의 걸림돌이다. 다음 달 초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의 대중 외교 노선을 결정하는 가장 큰 이벤트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중국 제품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될 전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60%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 부과를 공약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민은행이 시중은행 지준율을 낮추고 주택담보대출의 다운페이먼트를 줄여준다고 한들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간 많은 부동산 개발업체가 도산하면서 은행에는 부실자산이 넘쳐나게 됐다. 부실 대출로 인한 영업수지 악화로 신음하고 있는 은행이 순순히 대출 문을 열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제조업과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기 전에는 기관이나 해외 투자자가 증시에 복귀해 장기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개인투자자가 주도하던 주식시장이 급락하자 정부가 나서 주가 방어에 나서는 작금의 중국의 부양책은 주가 반등은커녕 더 큰 폭락을 이어질 수 있어서다. 결국 주가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실적이고 기업 실적은 경제 펀더멘털에 좌우된다. 많은 문제가 중첩되고 또 산적한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단기 부양책만으로 개선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임선주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미디어의 영향력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예리한 시각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만을 전달하겠습니다.

38조 규모 예산 조기투입에 그친 ‘쩐해전술 2탄’, 경기 부양 화력 불충분

38조 규모 예산 조기투입에 그친 ‘쩐해전술 2탄’, 경기 부양 화력 불충분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중국 국가발전개혁위 "5개 분야 정책패키지 도입 강화" 발표
3조 위안 규모 부양책 기대했으나 2천억 위안 조기 집행에 그쳐
재정 투입 방안 등 구체적 내용도 부재, 실망감에 증시 급등락
stats.gov_PE_002_20241009

중국 정부가 38조원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및 내수 침체로 '성장률 5% 안팎'이라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계속되자, 지난달 단행한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에 이어 재차 돈 보따리를 풀기로 한 것이다. 서방과의 무역 갈등이 갈수록 격해지는 가운데 내수 경기 활성화에 총력을 펼치고 있지만 시장은 추가 부양책이 사실상 없었다는 부정적 평가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경기 회복 속도 내는 中, 38조 부양책 발표

8일 중국 거시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정산제(鄭柵潔) 주임(장관급)과 류수서·자오천신·리춘린·정베이 부주임이 참석한 가운데 새로운 재정 정책을 발표했다. 류수서 NDRC 부주임은 “내년 중앙 예산에 배정된 1,000억 위안(약 19조원)을 이달 말에 조기 투입하고, 1,000억 위안 규모의 양중(兩重·국가 중대 전략과 중점 안보 분야) 건설 사업 명단 또한 일찍 발표해 지방정부가 사전 준비 작업에 나서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인프라에 투입할 2,000억 위안(약 38조원)의 자금 집행을 앞당겨 시행해 경기 부양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류 부주임은 "지방 파이프 건설·개조가 향후 5년 동안 총 60만㎞, 총투자액 4조 위안(약 760조원)에 이를 것"이라며 "프로젝트 리스트와 투자 계획을 앞당겨 설정해 도시 인프라 건설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6조 위안(약 1,150조원)에 가까운 정부 투자 중 절대다수가 이미 구체적 프로젝트로 이행됐다"며 7,000억 위안(약 133조원)의 중앙정부 예산 내에서도 투자가 모두 이뤄져 58%의 착공률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1조 위안(약 190조원) 규모 초장기 특별 국채 중 양중 영역에 7,000억 위안이 모두 하달됐으며 2025년에도 계속해서 초장기 특별국채를 발행해 양중 건설 강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오는 11월과 12월에 새로운 채권을 발행할 것인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올해 사업 건설에 쓰이는 특별채권은 3조1,200억 위안(약 595조원)으로, 9월 말까지 2조8,300억 위안(약 540조원) 발행했고 2,900억 위안(약 55조원)이 더 있다"며 "현재 각 지역에 이달 말까지 발행을 마치라고 독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내 시장 강화 조치를 단행하고 필요한 재정 지출을 보장하면서 부채 위험을 해결하겠다”고 전했다.

stats.gov_PE_20241009

5% 성장 적신호에 위기 관리

중국 정부가 연이어 경기 부양책을 내놓는 것은 중국 경제를 둘러싼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구조개혁에 방점을 찍은 경제정책을 운용해 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지자 4조 위안(약 760조원)의 대규모 부양책을 펼치며 글로벌 경제의 ‘위기 탈출’을 견인했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현재 중국 경제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는 자산 가격 폭등과 지방정부 부채 급증, 과잉·중복 투자, 불평등 확대 등의 부작용도 겪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펜데믹 기간과 이후에도 부양책에 소극적이었던 이유기도 하다.

이 같은 부채 기반 성장 탓에 중국 경제 성장률은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4.9%를 기록한 뒤 4분기 5.2%, 올해 1분기 5.3%로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올해 2분기 4.7%로 급락하며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3분기 역시 산업생산, 소매판매, 수출입 등 각종 경제지표를 감안하면 4%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3분기 지표가 발표되면 지난달 말 부양책 발표 이후 모처럼 활기를 찾은 중국 자산시장이 다시 꺾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최근에는 서방국과의 관세 전쟁으로 수출길마저 좁아지는 등 심리적 악재도 쌓이고 있다. 지난 4일 EU(유럽연합)가 중국 전기차에 부과하는 관세율을 최고 45.3%로 확정하면서 이달 말부터 중국산 전기차에는 고율 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중국산 전기차의 유럽 수출 비중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손실이 예상된다. 아울러 미국과 캐나다 등도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100%의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pbc_PE_20240926

"커다란 한 방은 없었다"

중국 정부는 우선 증량 정책을 통해 올해 당국이 제시한 경제성장률 목표 5%를 달성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추가 부양책은 사실상 시장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추가로 대규모 재정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달 24일 지급준비율(RRR) 인하 등 유동성 공급대책을 발표할 당시 정부 투자와 국유기업 자금 활용 등을 결합한 부양책을 시행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시 주석도 중국의 경제 불황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부동산과 기업, 민생 등 경제 핵심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시장에선 중국 지도부가 큰 규모의 ‘초장기 특별국채’를 추가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렇게 확보한 재정을 국가 전략 사업에 투입한다는 내용의 굵직한 추가 부양책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이 돌았다. 모건스탠리와 시티그룹은 각각 2조 위안, 3조 위안 규모의 재정 패키지를 내놓을 것이라고 점쳤고 블룸버그통신은 최대 10조 위안(약 1,900조원) 규모의 재정 팽창 정책이 나올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중국 정부가 발표한 개별 정책 프로그램에도 경기 부양을 위한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기존에 따로따로 발표했던 정책을 종합해 설명하는 데 주력했을 뿐이다. 또 시장이 기대하던 '숫자'는 뒤로한 채 경제상황 자화자찬에 대부분을 할애했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은 올해 경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장을 더욱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주 전 판궁성(潘功勝) 인민은행장이 깜짝 통화 완화 조치를 내놓은 것과는 비교하기 어렵다"며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추가적으로 내놓지 않아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보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현재 부족한 것은 공격적인 재정 지원”이라고 짚었고, 이번 대책을 ‘바주카포’에 비유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분석가들은 코로나 초기 이래 중국이 내놓은 가장 중요한 경기 부양책이라고 칭찬했지만, 반전을 이끌기 위해서는 더 큰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시장 반응 역시 미지근하다. 이날 상하이종합지수와 중국CSI300지수 등은 전 거래일 대비 10%대 상승하며 장을 시작했으나 기자회견 내용이 공개되면서 상하이종합지수는 4.59%, CSI300지수는 5.93% 상승으로 마감했다.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에도 거래돼 강한 상승세를 보였던 홍콩 항셍지수의 경우 이날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9.41% 급락했다.

내년 경제 성장 전망도 하향 조정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은행(WB)은 이날 내놓은 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4.8%에서 내년에는 4.3%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은행은 “최근 경기부양책은 단기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성장은 더 심화된 구조개혁에 달렸다”고 분석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온기를 되찾고 부진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해선 더욱 강력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비등하다. 지난달 시장 예상을 뛰어넘은 유동성 대책에 시장이 폭발적으로 반응했으나 이후 발표된 재정 정책이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이란 원유 시설 공격하면 어쩌나" 확전 우려 속 국제유가 급등세

"이스라엘, 이란 원유 시설 공격하면 어쩌나" 확전 우려 속 국제유가 급등세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수정

이스라엘에 대규모 미사일 공격 감행한 이란, 이스라엘은 '보복'
중동 지역 확전 가능성 본격화, 국제유가 상승세
이란 원유 시설 공습 시 유가 추가 급등 가능성, 바이든 "대안 생각해야"
oil_price_20241002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 이후 국제유가가 뚜렷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이란의 공격에 대한 보복을 본격화하자 확전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한 결과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눈에 띄게 고조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스라엘군이 이란의 원유 기반 시설·무역로 등을 공격할 경우 국제유가가 200달러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동 긴장 고조에 국제유가 '상승곡선'

블룸버그, AP통신, CNBC 등에 외신에 따르면 3일(이하 현지시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11월 인도분은 전 거래일 대비 5.15% 뛴 배럴당 73.7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12월 인도분 가격도 5.03% 상승해 배럴당 77.62달러를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최근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며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이란 혁명수비대는 성명을 통해 “점령지(이스라엘) 중심부에 있는 중요한 군사·안보 목표물을 표적으로 탄도미사일을 쐈다”고 발표했다.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은 180여 발로 추산된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스라엘 군사기지 3개가 타격을 받았다”며 “미사일 90%가 목표물에 성공적으로 명중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란의 미사일 공격과 관련해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미사일 상당수가 요격됐지만 이스라엘 중부와 남부에서 일부 타격이 있었다”고 브리핑을 통해 설명했다. 이어 “이번 미사일 발사에는 후과가 따를 것”이라며 “우리에게는 (보복) 계획이 있으며 시간과 장소를 결정해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israel_iran_20241002

이스라엘의 군사적 보복

이에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하마스 등 적대 세력에 대한 공격을 단행하며 '맞불'을 놨다. 지난 3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위치한 헤즈볼라 정보본부를 공습했다고 밝혔다. 해당 공습을 통해 정보 본부 소속 요원과 정보 수집 수단, 지휘 센터 등의 목표물을 타격했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군은 6일에도 베이루트에 공습을 이어갔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남부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사망자 12명이 발생했다. 이에 레바논 교육부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현 상황을 고려, 지난 9월로 예정돼 있던 새 학기 시작 일정을 오는 11월로 연기하기로 했다.

같은 날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도 감행했다. 팔레스타인의 과격 이슬람 단체인 하마스의 공격 기반을 해체하기 위함이다. AFP통신은 이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공습으로 어린이 9명을 포함해 최소 17명이 사망했다고 가자지구 당국자를 인용해 전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언론은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알발라의 이슬람 사원과 학교가 폭격에 휘말리며 최소 24명이 숨지고 93명이 다쳤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이란 '원유 시설' 공격할까

문제는 차후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경우 글로벌 원유 시장에 큰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이란은 지난 2분기에 하루 평균 33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3위 원유 수출국”이라며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격한다면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며 글로벌 원유 시장 상황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중동 석유 수출의 핵심 통로인 페르시아만 입구의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것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는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국가들의 핵심적인 수출 통로로,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20%가 해당 지역을 거쳐 이동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이란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수의 주요 산유국이 원유 수송에 차질을 빚게 된다는 의미다. 일부 분석가들 사이에서 호르무즈 해안이 봉쇄될 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이스라엘의 이란 석유 시설 공습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4일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 직접 참석해 “내가 이스라엘 입장이라면 유전 타격이 아닌 대안을 생각하겠다”고 발언, 이스라엘의 보복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Picture

Member for

1 month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