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트럼프, 파월 의장에게 '또' 금리 인하 주문해 "관세 영향 파악해야" 연준, 관망세 유지 시사 다가오는 경기 침체의 그림자, 금리 인하 압박 커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이사회 의장에게 재차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연준이 관세 정책의 '후폭풍'을 주시하며 관망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정부 차원의 금리 조정 압박이 거세져 가는 양상이다. 이 같은 대립은 연준과 백악관의 물가 전망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의 금리 인하 요구
10일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지속적으로 연준에 금리 인하를 주문하고 있다. 그는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너무 늦는' 연준은 재앙"이라며 "금리를 1% 채워 인하하라"고 적었다. 이어 "현재는 사실상 인플레이션이 없고, 만약 인플레이션이 다시 나타나면 금리를 올려서 대응하면 된다"면서 "'너무 늦는 사람(파월 의장)'은 미국에 엄청난 비용을 안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차기 연준 의장에 대해 곧 발표할 것"이라며 "좋은 연준 의장은 금리를 적절한 시기에 인하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2026년 5월까지다. 하지만 월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종료 전 이른바 '그림자 의장'을 내세워 파월 의장의 레임덕(임기 만료를 앞둔 공직자의 권력 누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의장 자리를 무기 삼아 금리 인하를 종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파월 의장을 조기 해임하는 안을 검토했으나,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의 만류로 포기했다고 전한 바 있다. 독립성이 보장되는 연준 의장을 해임할 경우 미국 경제의 신뢰성이 훼손돼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참모들의 경고를 수용한 것이다.
신중한 태도 견지하는 연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불구, 연준 고위 인사들은 금리 인하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지난달 모기지은행협회 콘퍼런스에서 “6월이 된다고 해서 (미국 경제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며, 7월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인 관세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도 CNBC 인터뷰에서 윌리엄스 총재와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내놨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을 대표적인 경제 불확실성 요인으로 꼽았다. 보스틱 총재는 “(관세 정책과 신용등급 강등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 상황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보려면 3~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예상하기로는 상황이 정리되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나는 연내 1회 인하 입장에 좀 더 기울어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연준은 지난 3월 FOMC 후 공개한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나타낸 도표)에서 연말까지 금리를 2회 인하할 것이라 시사한 바 있다.
관세 정책을 경계하는 것은 파월 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파월 의장은 관세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수차례 언급했고, 관세에 따른 인플레이션 영향을 지켜본 후 금리를 조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백악관 측은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어디까지나 '일회성'이라고 본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은 CNBC와 인터뷰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꽤 잘 작동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한다는 초기 징후는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는 이어 "2019년 시행된 트럼프 1기의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인플레이션 징후가 없고 경제 또한 안정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연준은 제한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금리를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 가라앉는다" 우려 속출
다만 연준이 앞으로도 백악관과 '대립각'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미국 시장 곳곳에서 경기 침체 우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싱크탱크 콘퍼런스보드가 재계 포럼인 비즈니스카운실과 함께 CEO 133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2∼18개월 안에 미국 경제에 '짧고 가벼운 침체'(71%)나 '심각한 침체'(12%)가 도래할 것이라 응답한 이의 비율은 83%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3분기 조사 당시 응답치(30%)를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자, 고금리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2023년 3분기 조사 결과(84%)와 비슷한 수치다.
CEO들의 현재·미래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를 나타내는 'CEO 신뢰 지수'는 이번 조사에서 34를 기록했다. 2022년 4분기 이후 최저치다. 직전 조사 대비 하락폭은 26포인트로, 조사를 시작한 1976년 이래 최대였다. 6개월 전보다 현재 경제 상황이 나빠졌다는 응답은 지난 1분기 조사 당시 11%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82%로 뛰어올랐다. 반면 경제 상황이 나아졌다는 응답은 1분기 44%에서 2%로 급감했다. 6개월 뒤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1분기 15%에서 64%까지 늘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도 유사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월가 거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JP모건 글로벌 마켓 콘퍼런스에서 블룸버그TV와 인터뷰를 통해 "경기 침체가 발생한다면 그 규모나 지속 시간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침체를) 피할 수 있길 희망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그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을 것"이라며 "JP모건 경제학자들은 경기 침체 가능성을 50%로 평가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