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지난 3월 말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가 석유 대금에 대한 위안화 결제를 전격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달러 패권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 연구소(American Institute of Economic Research, AIER)는 지난 4일 기고를 통해 1944년에 정립된 이래 1973년 한 차례 변형을 거치며 유지되어 온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가 다시 변화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중국과 연대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며 유럽 주요국 정상 중 처음으로 미국 중심 체제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고 논평했다.
기축통화의 요건, 중국이 지킬 수 있을까?
경제 전문가들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한 주요 조건으로 언급되는 경제력, 안정성, 교환성과 더불어 선진화된 금융시장 요건에서 중국이 오랜 기간 발목이 잡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기축통화 패권 국가는 시장 선진화를 위해 많은 경우 자국 화폐 가치 손실과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 글로벌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나, 지난 100여 년간 미국이 해왔듯이 중국이 유동성 공급에 선뜻 나설 것 같지는 않아 보이며 중국에 이러한 기대를 하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리관유 공공정책 대학원 학장을 맡고 있는 대니 콰(Danny Quah) 교수는 중국이 주변 소국들을 상대하며 독재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 적은 있어도 미국처럼 주변국을 포용하는 정책을 낸 적은 지난 수천 년간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은 중원(中元)을 점령한 '황제'가 독점적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고, 주변국의 대표들은 그 시스템을 따를지만 결정할 수 있었던 시스템을 수천 년간 유지해왔던 탓에 기축통화가 될 수 있는 다른 조건을 갖추더라도 실제 시스템을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콰 교수는 지난 2016년까지 런던정경대학 교수로 있을 때부터 "중국을 다룰 수 있는 국가는 북한, 한국 등 봉국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던 국가들과 화교 이주민이 전체 인구의 10% 이상인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에 한정된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간 서유럽 및 미국은 각국의 자유 의지 속에 합의를 끌어 내는 국제정치 시스템을 유지해왔지만 중국 및 주변국들은 사뭇 다른 방식으로 국제정치를 겪어왔으며, 그 경험의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서유럽 국가들이 기존의 방식대로 중국의 부상에 접근하려 한다면 외교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올라서기 위한 조건, 중국의 양보와 개방성
중국이 타국과 합의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왔던 부분도 우려 사항으로 언급된다. 외교가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은 그간 '사회주의 국가 동료의식'을 기반으로 북한, 몽고, 베트남 등과의 관계에서 동맹국에 대한 지원을 우선으로 한 적은 있으나, 한국, 일본과의 관계 및 주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물리력을 앞세우거나 외교적으로 강한 언사를 쏟아내면서 문제 해결만을 상대방에게 강요해왔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중국 외교가 관리가 "소국이 대국에게 대항해서 되겠나"는 발언을 했던 것이 그 단적인 예다.
특히 무역적자를 장기간 감수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자국 화폐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부분에서 중국은 시장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강조된다. 미국은 1940년대 중반 세계 2차대전 종결과 함께 막대한 규모의 전쟁 물자 구매 비용을 장기 대출로 전환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금융시장 발전도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다. 중국은 여전히 관치 금융으로 금융시장이 운영되고 있고, 나스닥 상장 등을 통해 거대 부호로 올라선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의 석연찮은 은퇴 과정 등에서 나타나듯이 중국의 경제 시스템 운영이 암흑에 싸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이 시장과 정보를 개방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이상, 언제 가치가 급격하게 재조정될 지도 알 수 없는 화폐를 기축통화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