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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박 6일간의 폴란드 순방 이후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약 2,000조원으로 추정되는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에서 우리 기업의 사업 수주를 위한 활로 개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에너지 및 건설 기업들이 재건 사업에서 기회를 얻기 위해 분주한 가운데, 정부는 앞으로 민관 협력 활성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을 추가로 발굴하고 사업 수주 규모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윤 대통령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 추진하겠다”
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방문한 데 이어 지난 12~14일(이하 현지 시간) 폴란드를 공식 방문했다. 이후 국외 순방 일정을 연장해 지난 15일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며 “한국의 안보·인도·재건 지원을 포괄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함께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안보, 인도, 재건 등 3개 분야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각종 지원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6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프레스센터에서 우크라이나 방문 결과에 대한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에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을 붙였다”면서 “이번에 안보 분야 3가지, 인도 분야 3가지, 재건 분야 3가지 총 9개 패키지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먼저 인도주의 분야에선 재정지원이 있을 예정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을 지원하기 위해 세계은행을 통하거나, 국제사회와 협력해 우크라이나의 재정 상황을 적절한 수준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안보 분야에선 방탄복·헬멧 등 군수물자 지원을 확대하고, 양국 방위산업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재건지원 분야에선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한 지원, 공적개발원조(ODA) 무상원조 지원을 적절히 배합해 지원하기로 했다. 김 차장은 “우크라이나는 이번 회담에서 이차전지, 전기자동차 생산, 금속 제련 분야까지 우리 기업의 직접 투자를 요청했다”면서 “우리나라가 이미 폴란드와 함께 양자 간에 재건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지만, 우크라이나 내부적으로 관련 분야에 대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직접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기회 노리는 국내 건설·에너지 기업들, 정부 주최 업무협약 ‘활발’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가 재건에 힘쓰는 분야는 △도로·철도 등 교통망 복구와 현대화 △전력·수소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 △에너지 설비생산 관련 프로젝트 △리튬 및 에너지 분야 등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서 기회를 노리는 국내 건설·에너지 기업들의 수주 활동이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기업의 경우 정부와 함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참여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 14일(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 보리스필 국제공항공사와 공항 확장공사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현대건설은 이날 협약식을 계기로 키이우 보리스필 국제공항의 정상화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향후 고속철도 및 에너지 인프라 사업 등 국가 기반 시설로 협력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이날 협약식에서 과거 한국의 재건 역사와 성과를 강조하며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자신을 보였다.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은 “종전 후 우크라이나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 현대건설은 한국 재건 역사의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참여 기회를 검토하고 있다”며 “공항, 철도 등 교통 인프라뿐만 아니라 에너지인프라 등 우크라이나의 발전을 위해 다각적으로 적극 협력해 한강의 기적을 재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지난 14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한-폴란드 비즈니스 포럼'에서는 우리 기업들과 폴란드 간 양해각서(MOU) 체결이 있었다. 구체적으론 두산에너빌리티, 현대엔지니어링, 대우건설 등 원전 관련 기업들이 폴란드 기업들과 6건의 원전 협력 MOU를 체결했다. 아울러 양국 기업들은 신산업, 에너지 협력, 인프라 수주, 개발 협력 등 30여 건의 MOU도 체결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한국 정부에 ‘5,000여 개’ 재건 프로젝트 참여 요청
정부는 우리 기업들이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을 통해 약 520억 달러(약 65조원) 상당의 사업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5월 우리 정부에 총 200억 달러(약 25조2,300억원) 규모, 5,000여 개 재건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요청했다. 여기에 정부를 통하지 않고 우리 기업이 자체적으로 따낸 재건사업들만 약 320억 달러(약 40조3,520억원) 수준이다.
최상목 경제수석에 따르면 5,000개 재건사업 중 상당수는 학교와 주택, 병원 등 긴급시설 복구를 위한 모듈러 건축 시범사업, 파괴된 카호우카 댐 등 수자원 인프라 재건 기술 지원 제공, 키이우와 우만 등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 수립 및 첨단교통체계, 스마트 물관리 등의 사업과 관련이 있다.
민간에서 유치한 분야도 SMR(소형 모듈 원전), 공항 재건, 건설기계, 철도차량, 정보기술(IT) 등의 분야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민간 주도 재건사업에 대해서도 프로젝트별 민관 합동 수주지원단을 구성해 적극 지원하고, ODA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을 활용한 금융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해 반(反)러시아 태도를 분명히 밝힌 만큼 이번 재건사업을 통해 그간의 무역 적자를 반드시 만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무역상사 관계자는 “미중 갈등, 러우 전쟁 등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흐름에서 한국은 올해 수출 부진으로 경기 회복이 더디다. 특히 한때 무역수지 흑자국 1위였던 중국이 이제는 무역적자 1위국으로 변해버린 지금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면서 “중국으로부터 연간 200억 달러 이상의 무역 흑자를 냈던 지난 5년의 성과를 돌이켜볼 때 이번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서 그 이상의 흑자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