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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를 휩쓴 폭우로 사상자가 속출하며 '4대강 보 해체'가 부적절한 선택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 시절 금강·영산강의 5개 보 해체·개방 결정 과정을 좌파 시민 단체들이 이끌었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20일 공개됐다. 실질적인 자연재해 피해 해결책을 강구하기는커녕 4대강 사업을 중심에 둔 여야 간 '기 싸움'만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감사원 "좌파 시민 단체가 '보 해체' 좌지우지했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금강·영산강 보 해체와 상시 개방 관련’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8월 환경부는 문 전 대통령 훈령에 따라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조사평가단)을 설치했다. 조사평가단 내에는 ‘전문위원회’와 ‘기획위원회’가 수립됐으며, 이 중 전문가 8명과 공무원 7명으로 구성된 기획위가 4대강 보 처분 방안을 결정하는 핵심 기구 역할을 수행했고, 기획위 내 민간 전문가 8명은 전문위 위원 내에서 채택됐다.
문제가 된 것은 2018년 11월 전문 위원으로 선정된 43명 중 25명(58.1%)이 당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 단체 연합인 ‘4대강 재자연화 시민위원회’(재자연위)에서 추천한 인사라는 점이다. 기획위 민간 전문가 역시 8명 전원이 재자연위가 추천한 인사들이었다.
감사원은 문 정부가 임기 첫 달인 2017년 5월부터 ‘4대강 보의 처리 방안을 2018년 말까지 확정한다’는 발표를 반복했으며, 문 정부 청와대가 환경부에 시간표를 지키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기획위는 보를 해체하면 수질이 개선되고 홍수 조절 능력도 개선된다는 전제하에 2019년 2월까지 보 처리 방안을 결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당시 기획위가 고안한 처리 방안은 보 해체 및 개방뿐이었으며, 보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은 아예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감사원은 기획위가 보 해체 비용과 이득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보 설치 이전 측정한 수질 자료를 사용한 점을 지적했다. 이미 강의 형태가 변형된 만큼, 보를 해체한다고 강의 수질이 원상 복귀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위는 ‘보 설치 전’에 측정한 자료를 활용해 금강 세종보·공주보와 영산강 죽산보는 해체하고, 금강 백제보와 영산강 승촌보는 상시 개방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결론을 냈다. 국가물관리위원회는 2021년 1월 기획위 결론을 수용해 다섯 보의 해체·개방을 확정했다.
감사원은 추가 수집한 자료 등을 바탕으로 보 해체의 이익을 재평가한 결과 공주보·죽산보는 해체하지 말아야 하며, 세종보는 해체가 이로운지 아닌지 확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감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환경부는 “지난 정부 보 해체 결정은 성급하고 무책임했다”며 “4대강 보를 모두 존치하고 세종보와 공주보 운영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보 개방으로 500억원대 손실이 발생한 ‘소(小)수력발전’ 정상화, 지류 하천 정비도 연내 추진하기로 했다.
'정치 공방' 수단으로 전락한 4대강 사업
한편 윤석열 정부는 정권을 잡은 이후 몇 개월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해 온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뒤집은 바 있다. 2022년 7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기후 위기에 대응해 보 활용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발언은 사실상 4대강의 보를 철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해 보 해체와 개방을 모두 검토한 문재인 정부와는 정반대 노선을 탄 셈이다.
문 정부에서 4대강 사업 문제 해결을 위해 수립됐던 환경부 조사평가단,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 역시 윤 정부 들어 모두 해산했다. 4대강 문제를 전담하는 정부 기구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이후 윤 정부는 조사평가단 소속 공무원들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으며, 감사 끝에 결국 해체될 예정이었던 금강 세종보·공주보 운영 정상화가 결정됐다.
이에 환경운동연합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전임 정부의 정책을 뒤집고 있다"며 4대강 보 유지는 국민이 겪게 될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최악의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여당 측은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4대강 보 해체 또는 개방으로 인해 수천억원의 혈세를 낭비했으며, 문재인 정부의 재자연화 정책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행정이었다고 일갈했다.
이후 환경부는 문재인 정부의 조사평가단이 법적으로 폐기된 평가 기준을 활용하는 등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이며 편향적인' 의사 결정을 했다는 의견을 감사원에 냈다. 이번 감사 결과에는 이 같은 환경부의 주장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4대강을 중심에 두고 여야가 무조건적으로 서로의 주장에 대해 반대하며 무의미한 행정을 번복하는 양상이다.
자연재해 피해는 뒷전? 해결책 마련이 우선이다
지난주 전국구를 덮친 호우로 침수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한 뒤에도 4대강 관련 논쟁은 이어졌다. 보 해체를 주장하는 야당 측은 보가 없어야 물이 원활하게 흘러 홍수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보를 존치해야 한다는 여당 측은 보를 통해 물을 가둬둬야 2014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는 가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 공방에 심취해 유의미한 해결책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지난 2020년 홍수 피해 이후 바로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여름 거대 장마전선 영향으로 규슈 지방이 홍수 피해를 당하자 일본은 그해 11월 ‘가와베가와댐’ 건설을 추진한 바 있다. 장마가 끝난 이후 기상청에 ‘기상방재감’이란 직책을 만들어 재해 대비 조직을 새로 구성하고, 가고시마현 댐 건설을 위한 주민 간담회와 전문가 자문을 실시한 것이다. 그 결과 4개월 만에 가와베가와댐 추진이 국토교통성에 공식 요청됐다.
반면에 당시 정치 공방에 혈안이 돼 있던 한국이 내놓은 결론은 '보 해체'였다. 홍수로 인한 피해가 아닌 4대강이라는 정치적 현안에 초점을 맞추고, 사실상 재해 예방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등한시한 셈이다. 자연재해 피해 경감은 인명이 달린 중대 사안이다. 이제는 무의미한 정치 공방을 멈추고 대책 마련을 위해 실질적인 논의를 진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