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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감독조합(DGK)의 주도로 논의돼 온 저작권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이하 ‘문체위 소위’)에서 의결 보류됐다. 기존에 없던 '재상영료’ 개념의 보상권 법적 도입을 두고 이해당사자들의 찬반이 치열하게 갈린 탓이다. 영화감독과 작가는 이를 '정당한 보상'으로 보고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지만, IPTV와 OTT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중 보상'이라며 극렬히 반대했다.
IP 양도하는 韓, 세계구급 성공 이뤄도 보상은 일절 없어
국내에서 영화감독은 통상 제작사와 사전에 연출료를 명시하는 방식으로 계약한 뒤 지적재산권(IP)을 양도한다. 때문에 작품이 완성된 뒤 IPTV나 OTT에서 저작물이 방영된다 해도 감독에게 따로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히트작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또한 <오징어 게임>의 성공에도 불구, IP 양도에 따른 보상 외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와 프랑스 등 해외에선 영화감독들도 OTT 방영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2년 전 DGK가 프랑스에서 저작권관리단체(SACD)와 개별 협약을 맺고 박찬욱 감독의 단편 <파란만장>, 장편 <JSA 공동경비구역>, <친절한 금자씨> 등의 재상영료를 찾아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당시 박찬욱 감독은 “잃어버린 권리를 찾게 돼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이후로도 DGK는 스페인 영상물 저작관리단체(DAMA), 아르헨티나 영상물 저작관리단체(DAC)로부터 현지에서 시청된 한국 감독들의 연출작에 대한 저작보상금을 대신 지급받아 감독들에게 분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양상헌 한국영화감독조합 해외사업팀장은 “현재 미국의 경우도 단체협상 형식으로 감독과 작가에게 관련 보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작가조합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현지 창작자를 초대해서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는 등의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美서도 '정당한 보상' 위한 '파업' 현재진행형
'정당한 보상' 논란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지난 17일 미국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은 파업에 들어갔는데, 주된 쟁점 사안은 OTT에서의 '리지듀얼(Residuals)'이다. 리지듀얼이란 영화나 TV 프로그램이 극장 개봉이나 첫 방송 이후에 다른 플랫폼에서 상영하거나 방송될 때 배우, 작가, 감독 등에게 분배되는 금액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재상영분배금'이라고 부르는 게 바로 리지듀얼이다.
업계에 따르면 배우들은 넷플릭스, 디즈니+ 등 OTT 업체에 저작권이 귀속되면서 리지듀얼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넷플릭스의 화제작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단역 배우 10명은 회당 1,000달러 미만의 출연료를 받았고, 그중 한 명인 마일스의 올해 리지듀얼은 약 20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나라 지상파, IPTV, OTT 등 플랫폼사는 이를 '추가 보상'으로 판단, 관련 법 개정에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방송협회,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한국IPTV방송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OTT협의회 등 5개 단체가 미디어플랫폼저작권대책연대(이하 ‘플랫폼연대’)라는 이름으로 모여 “국내 영상 산업 전반이 함께 보호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기도 했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법 개정으로 인해 우리나라 플랫폼사가 감당해야 할 연간 경제적 손실은 약 1,000억원으로 추정된다.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발표한 ‘영상저작물 수익분배 제도의 산업 영향분석 연구보고회’에 따르면 법 개정 이후 플랫폼사가 감독, 작가 등에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상금 규모는 1,128억원 가량이다. 2022년 작품 기준에 2.5%의 요율을 적용한 것이다. 만일 이 같은 기준이 해외 감독들의 작품에까지 적용될 경우 부담액은 더욱 커질 수 있다.
DGK의 '정당한 보상', 영화계 '러닝개런티'와 닮은꼴
한편 DGK가 주장하는 정당한 보상은 할리우드에서 보현화되어 있는 러닝개런티(Running guarantee)와 닮은꼴이다. 러닝개런티란 영화에 참여하는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들이 출연료와 별도로 흥행에 따라 추가 개런티를 지급받는 것을 뜻한다. 흥행이 보장되지 못한 상황에서 높은 출연료를 한 번에 지급하는 건 제작비만 높인다. 때문에 투자사나 제작사는 개봉 이후 수익에 따라 분배를 하는 러닝개런티 형식을 활용해 무리를 덜어내곤 한다.
OTT 플랫폼과 영화 산업계 간의 차이는 이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최근 쿠팡플레이는 현재 상영 중인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쿠플시네마'다. 쿠플시네마는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쿠팡플레이에서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로 월 4,990원의 쿠팡와우 멤버십 회원이라면 추가 비용 없이 쿠팡플레이를 통해 상영 중인 영화를 집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사실상 '영화관'과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OTT' 사이의 경계가 거의 무너진 것이다.
영화계에서 통용되던 러닝개런티 등 보상을 OTT에까지 적용해야 한단 목소리가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IPTV, OTT 등 사업자는 추가 보상이라며 극구 반대하고 있지만, 배우나 감독 입장에선 러닝개런티 등 보상이 후에 있을 이득을 생각해 더욱 열심히 일에 임하게 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배우와 감독의 역량 제고는 곧 사업자의 이익으로 직결된다. '정당한 보상'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