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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모(FOMO·Fearing of missing out) 현상과 맞물리며 테마주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테마주 열풍'이 한반도를 휩쓴 모양새다. 이에 금융당국은 테마주 확산 억제를 위한 조치에 들어갔으나,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빠지는 개미들을 억제하기란 역부족이다.
꼬리에 꼬리 무는 테마주
테마주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연초 2차전지로 시작된 테마는 반도체, 초전도체를 지나 최근엔 비만, 중국 단체관광 관련주까지 그 불씨가 옮겨붙은 모양새다. 다만 일각에선 "테마주가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실제 이전에 비해 최근 테마주는 더 많은 투자자가 몰리며 오를 땐 더 많이 오르고 내릴 때도 더 많이 내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어제 올랐던 종목이 오늘 하한가를 치는가 하면 오늘 내렸던 종목이 돌연 내일 급등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전문가들은 "테마주는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시장의 수급이 받쳐주지 않거나 투자자들의 시선이 다른 테마로 넘어가면 순식간에 손실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는 대표적인 하이리스크-하이리턴 매매”라고 강조했다. 에코프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달 26일 153만9,000원까지 올랐던 에코프로는 현재 106만6,000원까지 떨어졌다. 에코프로가 최고가를 기록한 날 52주 신고가를 경신한 POSCO홀딩스도 당시 고점 76만4,000원 대비 24%나 하락했다.
테마주 '폭탄 돌리기'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2주(7월 27일~8월 10일) 서남의 회전율은 1,240.49%로 기록됐다. 회전율이란 일정 기간 거래량을 상장 주식 수로 나눈 값을 뜻하는데, 해당 수치가 높을수록 투자자 간 거래가 자주 일어났다는 의미다. 회전율이 1,200%가 넘는다는 건 즉 주식 1주당 12회가 넘는 손바뀜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서남의 회전율은 코스닥 전체 평균 회전율(21.26%)보다 58배 높다.
개인투자자들의 테마주 선호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달리는 말'에 성급히 올라타려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테마주들의 흐름을 살펴보면 최고점에서 거래가 터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남들이 빠져나갈 때 새로 유입되는 개인이 너무 많은 탓이다. 테마주 투자 시 리스크와 리턴을 추정하지 않고 그저 개미들이 모여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추가 매수를 속행하는 이들이 늘면서 테마주라는 시한폭탄의 위력은 더욱 커지는 형국이다.
갈 곳 잃은 돈, 일부 투자처에 '쏠림 현상'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의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최근 54조원을 넘었다. 주식시장 내 거래대금은 62조원을 넘어섰고, 일평균 거래대금은 27조~28조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코스닥시장에서 개인투자자 거래 비중이 높은 건 그리 특기할 만한 사항이 아니나, 최근 유가증권시장에서도 개인투자자의 힘이 세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2020년 동학개미운동이 일면서 기관이 매수한 종목보다 개인이 매수한 종목의 성과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개인투자자의 자금력이 높아진 만큼, 주식시장 분석 및 전망엔 변수가 더욱 많아졌다. 개인의 수급 영향력이 일시적인 이벤트에서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 흐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물살의 변화가 극심해졌다는 의미다. 이처럼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이 높아진 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시장에 '갈 곳 잃은 자금'이 많아진 영향도 크다. 투자할 곳이 마땅히 없으니 순간적으로 뚜렷한 성장성을 보이는 산업에 개인투자자들이 확 모여버리는 것이다.
'테마주 잡기' 들어간 금융당국, 하지만
이에 금융당국은 테마주 잡기에 들어갔다. 지난 12일 금융당국은 메신저 등에 기반한 소위 '리딩방'을 중심으로 떠도는 풍문을 특별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헛소문을 유포한 뒤 투자에 이용하려는 정황이 발견되면 유포자에게 불공정거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경고장도 날렸다. 증권사들엔 신용 거래를 부추기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빚을 내 주식을 사들이는 이른바 '빚투'를 부추기지 않도록 신용 투자를 관리해달라는 주문이다.
테마주 열풍에 개미들의 피해가 이어지자 일각에서 "금융당국이 사실상 폭탄 돌리기에 손을 놓고 있어 피해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소문만 듣고 몰려다니는 개미를 금융당국이 일일이 커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쓴소리를 내놓는다. 국내 증시가 경기나 기업 실적보단 일부 신기술 테마주로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무작정 테마에 올라타기만 하는 개미들을 금융당국이 일일이 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 7일 국내 증시에선 상온·상압 초전도체 ‘LK-99’를 둘러싼 학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초전도체 테마주들이 다시 급등한 바 있다. LK-99와의 연관성을 직접적으로 부인한 기업의 주가마저 오르는 현상도 나타났다. 초전도체 테마주로 주목받았던 서남과 대정화금은 주가가 급등하자 홈페이지를 통해 LK-99와 연관성이 없다고 알렸지만, 이날 각각 14.85%, 10.78% 올랐다. 전혀 관계없는 기업까지 '테마'로 묶이면서 개미들의 타깃이 된 셈이다. 결국 주가가 널뛰는 근본적인 이유는 소문에 따라 급격히 모였다 급격히 빠지는 식의, 줏대 없는 투자 방식에 있다.
전문가들은 "숱한 음모와 작전이 난무하는 주식시장에서 개인 투자자가 단기 호재를 활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불투명한 소문에 의존해 추세매매를 하는 건 위험하다는 뜻으로, 원론적이지만 결국 실적 중심이나 중장기 가치투자·간접투자가 유일한 해법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테마주 열풍은 여전히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일부 투자자들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한탕주의에 빠진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하며 "테마주를 좇는 건 투자가 아닌 투기나 도박에 가까운 일"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한다. 뜬금없는 소문에 휩쓸려 날뛰는 테마주에 올라탔다 굴러떨어져도 책임져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테마주 좇기에 바빠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이들은 '불쌍한 개미'가 아니라 '어리석은 개미'에 불과하다. 테마주 열풍에 휩쓸려 나가지 않기 위한 '지침돌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