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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필라델피아 아동병원(The Children's Hospital of Philadelphia, CHOP) 태아연구센터의 앨런 플레이크(Alan Flake) 박사 연구팀이 초미숙 단계의 새끼 양을 인공자궁을 통해 최대 4주간 건강하게 키워내는 실험에 성공했다. 연구팀은 어미 양의 자궁에 있던 임신 24주 미만의 새끼 양을 제왕절걔 수술로 꺼낸 후 비닐백 형태의 인공자궁 바이오백(biobag)에 넣어 30일간 성공적으로 키운 결과, 새끼 양이 인공자궁 시스템 속에서 뇌와 폐, 안구 등의 장기가 정상적으로 성숙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연구팀이 공개한 실험영상에서는 투명한 전해질의 액체로 채워진 비닐백 속에 솜털만 자란 새끼 양이 눈을 감은 채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이같은 인공자궁 실험의 성공은 인간이 인공자궁 시스템을 통해 실험실에서 성장하는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인공자궁 'EXTEND', FDA에 임상시험 승인 요청
최근 CHOP 연구팀은 자신들이 개발한 인공자궁 시스템을 '신생아 발달을 위한 자궁 외 환경(EXTEND)'으로 명명하고 미 식품의약국(FDA)에 인간 대상 임상시험의 승인을 요청했다. FDA는 조만간 임상시험 허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연구팀은 EXTEND에 대해 모체의 자궁이 가지고 있는 일부 기능을 모방해 개발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초극소 조산아는 통상 37~40주의 임신기간 중 70%를 채우지 못한 28주 미만 미숙아로, 만기 출산아에 비해 고혈압, 뇌성마비, 간질 등을 앓을 위험은 2배 가량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연구팀은 "EXTEND의 개발 목적은 임신부터 출생에 이르는 태아의 발달단계 전 과정을 인공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며 이는 실제로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인공자궁을 통해 초극소 조산아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CHOP 연구팀이 임상시험을 앞두고 인공자궁 기술의 적용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앞서 2017년 인공자궁 기술을 최초 공개했을 때는 해당 기술의 미래에 대해 대담한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2017년 바이오백 공개 당시 프로젝트를 총괄한 플레이크 박사는 “만약 연구진이 예상한 대로 인공자궁 기술이 성공한다면 조산 위험이 높은 임산부의 경우, 조기 분만 후 인공자궁 시스템에서 태아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더 이상 기계식 인공호흡기나 인큐베이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2019년에는 CHOP 연구팀 중 일부가 필라델피아 소재의 스타트업 비타라 바이오메디컬(Vitara Biomedical)에 합류했고 비라타 바이오메디컬은 EXTEND의 개발을 위해 1억 달러(약 130억원)를 투자금을 유치하기도 했다.
한편 FDA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소아자문위원회를 소집해 인공자궁 기술에 대한 규제와 윤리적 고려사항, 인간 대상 임상시험의 진행방식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유사한 인공자궁을 개발하고 있는 다른 국가의 사례, 건강 형평성(health equity)과 재생산 권리(Reproductive Rights)의 이슈와 관련해 생명윤리학자들의 검토를 병행할 계획이다. 컬럼비아대학교의 생명윤리학자이자 신생아과 전문의인 켈리 워너(Kelly Werner) 박사는 "인공자궁은 오랜 시간 기다려온 기술로 분명 흥미로운 발전"이라면서도 "다만 태아나 조산아 분야의 의료 전문가들과 FDA 소아자문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조산 관련 합병증으로 사망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조산(preterm birth)’은 임신 37주 이전에 이뤄지는 출산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고 감염, 호르몬 불균형, 고혈압, 당뇨병 등으로 인해 자궁 상태가 태아에게 적합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기도 한다. 조산은 생후 4주 이내 신생아 사망의 주요 원인이며 5세 미만 아동의 사망 원인 중에는 폐렴에 이에 두 번째로 큰 요인이다. 이 때문에 국제적으로 조산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미래 아동의 생존과 보건에 관한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WHO에 따르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조산율이 증가하고 있다. 10명 중 1명 이상의 유아가 조산아로 태어나며 지난 2020년에는 1,340만 건의 조산이 발생했다. 이중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아동이 조산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생존한 아동들도 생애에 걸쳐 장애를 갖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인공자궁 기술은 22주부터 28주 사이에 출생한 조산아의 생존율을 높이고 장애 확률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산아의 사망률은 출생 전 임신기간과 강한 인과관계를 갖는다. 태아가 모체의 자궁 안에서 성장하는 기간이 길수록 아기가 건강하게 오래 생존할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의료적 처지를 통해 조산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인간의 폐와 뇌는 태아의 발달단계에서 가장 나중에 완성되는 장기 중 하나로 조산아의 경우 미처 뇌와 폐가 발달하지 못한 상태로 태어나 장애확률 및 사망률이 높다.
대개 임신 22주를 기준으로 조산아의 생존 가능성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22주 이전에 출생한 신생아의 생존율은 극히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임신 28주를 채울 경우 대부분이 생존할 수는 있지만 이때 신생아의 생존을 돕기 위한 의료적인 지원과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 다만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22주부터 28주 사이에 출생한 조산아의 생존율은 향상됐음에도 아직까지 조산아들은 시력, 청력 등 장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실제 스웨덴에서 25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임신 28주를 채우지 못한 조산아의 경우 78%가 성인이 될 때까지 천식, 고혈압, 뇌성마비, 간질 등과 같은 질병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만기 출산아의 경우 해당 비율은 조산아의 절반 수준인 37%로 집계됐다.
혈관과 인공자궁을 연결해 스스로 혈액 순환시켜
태아는 자궁 안에서 태반을 통해 모체로부터 산소, 영양분, 항체, 호르몬 신호를 공급받고 노폐물을 배출한다. 인공자궁은 조산아에게 안정적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함으로써 기존에 사용해온 기계식 인공호흡기를 대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기계식 인공호흡기는 미처 발달되지 못한 신생아의 폐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TEND는 기계식 인공호흡기와 생명유지장치로 조산아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인큐베이터와 달리 양수와 탯줄까지 구현했다. 아기가 양수의 구성 성분을 모방한 전해질 액체에 머물면서 탯줄 속 혈관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을 받고 노폐물을 내보내는 방식이다. 아기는 모체의 자궁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이오백에서 심장을 통해 스스로 혈액순환을 하는데, 장기가 어느 정도 발달해 건강하게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아기를 EXTEND로부터 분리하게 된다. 워너 박사는 “인공자궁 기술은 조산아들이 페와 뇌 손상 위험이 가장 높은 기간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인공자궁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아기의 혈관을 시스템과 연결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신생아의 동맥은 매우 작은 데다 출생 직후부터 수축을 시작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불과 몇 분 안에 신속하게 탯줄에 있는 혈관을 시스템과 연결해야 한다. 런던대학교의 안나 데이비드(Anna David) 박사는 “인공자궁과 태아를 연결하는 수술은 정확하면서도 빠른 기술이 요구되는 수술”이라며 “이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매우 숙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