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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당선 작가들에게 '독점 제작권'을 요구한 카카오의 웹소설 플랫폼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게 됐다. 24일 공정위는 카카오엔터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공모전 당선 작가들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제한(공정거래법 위반)했다고 판단, 시정명령과 과징금 5억4,0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카카오 측은 공정위 결정에 크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공정위, 카카오 '플랫폼 갑질' 지적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저작권법상 소설 등 원저작물을 각색하거나 변형해 웹툰, 드라마, 영화 등 2차 콘텐츠로 제작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공정위는 웹소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대규모 플랫폼 사업자인 카카오엔터가 작가들의 웹소설 드라마·영화화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카카오엔터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5개의 웹소설 공모전을 개최했으며, 일부 공모전 요강에 ‘수상작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카카오페이지에 있다’는 조건을 붙였다. 공모전 응모 작가들은 이 같은 내용이 명시된 공모전 안내문에 서명 또는 날인을 한 뒤 작품을 제출했고, 카카오엔터는 5개 공모전 당선 작가 28명과 당선작 연재 계약을 맺음과 동시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독점적으로 부여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아울러 카카오는 특정 공모전에 당선된 7명의 작가들과 해외 현지화 작품의 2차적 저작물 작성에 대해 우선 협상권을 부여하는 계약을 맺었다. 만약 작가와 카카오엔터 간 합의가 결렬될 경우, 작가가 카카오엔터에 제시한 것 대비 유리한 조건을 제삼자에게 제시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거래 조건도 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이 같은 카카오의 행태가 금전적 손해 규모를 추정하기 어려운 '권리 침해'라고 판단, 정액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 결정에 카카오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카카오엔터는 “법원에서 부당함을 다툴 예정”이라며 “당사는 창작자를 국내 창작 생태계의 주요 파트너로 여기고 있으며, 실제 창작자의 2차 저작물 작성권을 부당하게 양도받은 사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부분을 충분히 소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제재 판단을 내린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공모전 저작권, 어디로 가나
기본적으로 저작물의 저작권은 창작한 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다. 공모전에 응모해 수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저작권이 주최사로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주최사들은 공모전 수상작의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 사전에 저작권 귀속 등에 대해 안내하고, 차후 계약을 통해 저작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모전 수상작과 주최사 사이 법률관계는 민법상 ‘현상광고’에 해당한다. 현상광고는 광고자가 어느 행위를 한 자에게 일정한 보수를 지급할 의사를 드러내고, 이에 응모한 자가 그 광고에 정한 행위를 완료함으로써 효력이 생기는 계약(민법 제675조)을 뜻한다. 특히 공모전의 경우 특정 행위를 완료한 자 가운데 우수한 자에게만 보수를 지급하는 '우수현상광고'에 속한다.
우수현상광고 시 저작권 귀속에 대한 조건에 따라 저작권은 주최 측 또는 주최 측이 지정하는 자에게 귀속되며, 주최 측은 이에 대한 대가를 수상자에게 지급하게 된다. 공모전 응모자가 해당 규정에 동의하는 것은 ‘저작권 양도’의 청약이 되고, 주최사가 수상작으로 채택하는 행위는 승낙돼 저작권 양도 계약이 성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가를 지급한다고 무조건 '능사'인 것은 아니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저작권 귀속에 대한 대가가 충분치 않다면 공모전을 통해 발생한 저작권 양도 계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저작권 양도 조건에 걸맞지 않은 소규모 상금을 내건 공모전이 저작권 양도를 요구하는 경우, 창작자와 주최 사이에서 저작권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독점 지위 남용했다는 공정위, 돈 나눴다는 카카오
공정위는 카카오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며 웹소설 시장의 '독점 구조'를 지적했다. 구성림 공정위 지식산업감시과장은 "웹소설 시장을 네이버와 카카오가 양분하고 있어 공모전을 통하지 않고서는 신인·무명 작가가 자기 작품을 세상에 낼 기회가 없다"며 "카카오엔터가 너무나 우월적 지위를 가진 상황에서, 사적 계약이고 (작가가) 동의했으니 괜찮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카카오가 저작권을 포기하고서라도 이름을 알려야 하는 응모자의 처지를 악용, 소위 '플랫폼 갑질'을 했다는 것이다.
반면 카카오엔터 측은 계약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카카오엔터는 지금껏 2차적 저작물 제작으로 발생한 수익을 원작자와 배분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히트작을 내놓은 원작자가 저작권을 빼앗기고, 이로 인해 흥행 수익을 가져가지 못하는 '갑질'은 없었다는 의미다. 시장 내외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웹소설 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공모전 저작권 양도 체계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