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심사를 심평원에 위탁함에 따라 치료비에 대한 정확한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입법처)는 '자동차보험 경상환자 과잉진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보공유를 통한 진료 및 심사 개선방향'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말하며 보험사와 심평원, 의료기관이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사고정보와 진료 정보를 적정범위에서 공유하는 방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보험사-심평원 실무 협의, 형식에 그쳐
입법처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심사를 심평원에 위탁하며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심사가 어려워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심평원의 심사가 대부분 서면에 의해 이뤄지는 탓에 과잉 치료나 장기 입원 등의 심사가 어렵고 적극적인 현장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소관 부처로 자동차보험을 관장하고 있지만, 실무 검토 전담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심평원에 업무를 위탁하다 보니 실질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심사인력의 수도 적극적인 심사가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완결된 자동차보험 심사는 약 1,998만 건으로 심평원 4급 이하 심사직원당 매월 19,361건을 심사했다. 심평원의 심사인력 증원을 통한 심사강화를 검토할 수 있지만,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심사가 심평원의 본래 업무가 아닌 위탁 업무인 점을 고려하면 예산 확보와 인력 배치에는 한계가 있다.
나아가 심평원은 의학적 심사에 주안점을 둔 기관으로, 진료기록 정보 등에만 접근할 권한이 주어져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심사를 위한 교통사고정보 등 기타 자료의 활용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처럼 심평원의 업무경감 및 심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위탁사인 보험사와 심평원의 실무 협의가 필요함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계약상의 형식적인 협의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과잉 치료 유도하는 의료기관, 보험사가 막을 방법 없어
의료기관의 피해자 과잉 치료 유인도 심평원 위탁 체제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과거 심평원 위탁 이전까지는 의료기관과 보험사가 보상실무 직원을 통해 환자의 사고정보 등을 공유해 왔다. 하지만 심평원 위탁 이후 의료기관의 진료단계에서 사고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실무상 절차가 사라지면서 경미한 사고임에도 증상을 과잉 호소하는 환자를 통제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료기관은 과다 치료를 위해 환자의 경미 사고 여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른바 ‘패키지화’된 치료를 수행함으로써 진료비 급증을 부추기고 있다.
개별 보험사의 지불보증관리 미흡도 피해 갈 수 없다. 현행 자동차손배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의료기관이 심평원에 진료비를 청구한 후에야 피해자의 진료기록 열람이 가능하다. 이는 심평원이 진료수가 심사를 마치기 전에는 보험사가 환자에 대한 진료기록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통상 의료기관의 진료비 청구는 일정 주기(15일, 30일)로 이뤄지나, 수개월 또는 최대 1년 이상 지연 청구를 하는 사례도 종종 포착된다.
현행법상 보험사가 환자의 진료기록을 확인할 방법은 의료기관에 방문해 자료를 열람하는 것이 유일하다. 현재 일선 보험사는 보상 실무를 위해 의료기관이 유선으로 제공하는 비공식적 정보에 의지하거나, 환자에게 진료기록 제공을 요청하는 등 간접적 방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의료기관은 「의료법」에 따라 다른 법령에 특별히 규정된 경우 이외에는 환자의 정보를 누설할 수 없으므로 보험사는 사고 피해자 측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과거 개별 보험사의 진료수가 심사 체제에서는 과잉 진료가 의심되는 경우 의사 면담 등을 거칠 수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유연한 지불보증이 이뤄진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사고·진료 정보 공유에 보험업계-의료업계 의견 엇갈려
입법처는 보험사와 심평원, 의료기관이 자동차 사고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사고정보와 진료 정보를 적절한 시점에 적정범위에서 공유하는 방안을 통해 의료수가 심사 심평원 위탁 체제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의료기관이 사고 경위 및 경미 사고 여부, 피해 차량 사진 등 교통사고정보를 인지하도록 하는 방안을 통해 경상환자의 무리한 과다 치료 요구를 차단하고 적정한 수준의 진료를 수행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교통사고 유형별 실제 치료 현황 등을 종합해 향후 통계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보험업계는 사고정보의 제공에 찬성하고 있는 반면, 의료업계는 정보공유 시 의료기관이 과잉 의료기관으로 오인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특히 한의업계는 해당 정보의 공유를 의무화하면 심사와 관련된 분쟁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의료기관의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해 보험사의 진료기록 열람 시점을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성도 대두된다. 보험사가 의료기관에 진료비 지급보증을 한 시점과 초진 시점 등에 진료기록 열람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는 환자의 동의를 전제로 의료 기록 등의 열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의료업계는 의료법에 따른 환자의 정보누설 금지 및 진료권 침해와 환자의 치료권 보장 필요성 등을 근거로 반대하고 있다.
진료수가 심사 주체를 보험사로 할 경우 보험금 책정에 대한 피해자와 보험사의 빈번한 분쟁이 예상되는 만큼 해당 심사를 심평원에 위탁했다는 점에는 모두가 수긍한다. 다만 자동차 사고 과잉 진료 문제는 개별 보험사를 넘어 전체 건강보험 시스템에도 악영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경상환자의 과잉 진료나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건에 대한 한정적 진료기록 열람 시점 개선 등의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