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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과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부채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사모펀드(PE)로부터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당장 재정 위기에 직면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부채 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투자사들은 대출금 상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코브라이트론 비중 늘어나면서 채권자 부담 증가
지난달 파이낸셜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베인캐피탈(Bain Capital), 칼라일그룹(Carlyle Group), KKR 등 주요 PE 기업들이 가치가 급락하거나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일부 자산을 양도하거나 매각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PE 기업들도 사적 금용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NAV(Net asset value) 대출을 활용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NAV 대출은 투자 포트폴리오의 순 자산가치를 산출해 이를 담보로 대출하는 방식으로 투자사들이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는 용이하지만 잠재적인 위험이 높다.
채권자들 역시 채권자에 대한 보호조항과 채무자의 의무조항이 적은 코브라이트론(Covenant-Lite Loan)이 누적되면서 대출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피치북 LCD 데이터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유럽 레버리지론 시장에서 신규 대출의 대부분을 코브라이트론이 차지했으며 지난해에는 그 비중이 97%에 달했다. 미국에서도 지난 2013년 이후 레버리지론 시장의 대출 대부분이 코프라이트론이었으며 지난해에는 93%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위기 이후 사모신용펀드(PCF)는 레버리지 금융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출 대부분은 여전히 보호조항이 있는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PCF 중에도 코브라이트론이 운용되고 있는데 몇 년 전 금융시장 호황기에는 이러한 방식이 특히 두드러졌다.
투자은행 모엘리스앤컴퍼니(Moelis & Company)의 디렉터이자 본부장인 빌 더로(Bill Derrough)는 "대부분의 PCF 거래는 변동금리를 적용하는데, 레버리지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이자를 지급하기 위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거나 이자 지급을 위해 보유한 현금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러한 조치는 자칫 기업의 재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러한 사례는 대출 대부분이 보호조항이 없는 코브라이트론이거나 경영진이 고금리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자주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대출에서 보호조항(covenants)은 자금을 조달한 채권자가 재정적 위기가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 감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채무자와 협의할 시간을 확보하게 해준다. 더로 디렉터는 "과거에는 채무 기업의 위기를 최초로 감지한 시점에 재정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겠지만 이제는 채권자들이 채무 기업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면 이는 정말 큰 위기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며 "예를 들어 자금이 바닥났거나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는 상태의 심각한 문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 채권자들은 일반적으로 PE가 해당 기업에 추가로 투자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데, 만약 PE가 추가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자금을 추가 투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로펌 로프스앤그레이(Ropes and Gray)의 파트너 변호사인 매튜 지크(Matthew Czyzyk)는 "투자자들이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를 고려할 때, 그 기업의 가치는 얼마인지, 부채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확인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식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발생할 경우, 투자자들은 상황을 주시하고 필요하면 채권자들에게 기업을 양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권자도 기업 인수나 경영 참여 가능성 고려해야
투자은행 훌리한로키(Houlihan Lokey)의 아시아지부장 마누엘 마르티네스-피달고(Manuel Martínez-Fidalgo)는 "출자전환을 통해 채권자에게 기업을 양도하는 것은 투자자에게 어려운 결정이지만 포트폴리오 회사가 실제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가장 좋은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기업 실적이 악화되고 추가 투자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해당 기업은 운영을 중단하고 채권자에게 양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 될 것"이라며 "PE는 이렇게 재무 위기에 직면한 기업의 소유권을 투자자들에게 양도함으로써 실적이 좋은 기업에 투자를 집중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때 채권자가 강제로 기업의 소유권을 가져가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며 "이 경우 양측의 협상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면서 기업 평판이나 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인들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채권자 재무 위기에 처한 기업을 인수하거나 운영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경우도 있다. 실제 기업을 인수하고 경영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정인 데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채권자가 기업 경영에 개입하도록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로 디렉터는 "그동안 채권자들이 기업을 인수하거나 자산을 소유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지만 이제는 레버리지 금융 거래에서 채권자들이 대출금을 지원할 때 추후 그 기업 혹은 자산을 소유할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며 "대출을 해주기 전에 이 기업을 실제 소유할 준비가 된 것인지 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기업의 소유주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며 기업을 소유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이는 단순히 이사회에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는 조치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부 사모대출기관들은 기업을 효과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지 못했지만 사모펀드와 사모신용대출을 함께 운용하며 다양한 경영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큰 기업들은 기업의 인수와 경영에 강점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부실채권 대출기관(distressed lenders)과 거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부실채권 PE(distressed debt PE)는 특별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요구하는 분야로 일반적은 PE와는 구별되는 관리역량이 필요하다. 지클 파트너 변호사는 "자금력을 갖춘 대형 펀드들이 다양한 전략을 활용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지만 이들은 광범위한 사업 분야에 집중하지 않는 데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반해 공격적인 투자 전략을 구사하는 부실채권 대출기관들은 대형 펀드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재정 위기에 처한 기업들에게 협력적인 파트너가 되는 전략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포트폴리오 기업, 사모신용대출 등 조달 경로 다변화
포트폴리오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 PCF를 통해 지원받을 수도 있다. 다국적 로펌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즈(Herbert Smith Freehills, HSF)의 파트너 변호사 앰버리쉬 대쉬(Ambarish Dash)는 "일부 PCF들은 래버리지 대출시장보다 더 높은 프리미엄을 받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NAV 대출은 PE 사용하는 대출 옵션 중 하나로 이들은 포트폴리오 전체 가치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개별 포트폴리오 기업의 부채를 상환하는 데 투입한다. 일례로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Vista Equity Partners)가 투자한 빅테크기업 피나스트라(Finastra)는 최근 사모대출기관으로부터 53억 달러(약 6조9,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 중에는 48억 달러(약 6조2,000억원)라는 기록적인 규모의 유니트랜치론(선후순위 혼합대출)도 포함돼있다.
당시 피나스트라는 신용등급이 하락했으며 만기가 도래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한 채권자들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었지만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로부터 10억 달러(1조3,000억원)를 투자받고 NAV 대출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방식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개별 기업들도 전체 포트폴리오의 가치에 따라 평가받아 유리한 대출 옵션을 확보할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지만 잠재적인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