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지정학적 불확실성 및 고금리 기조의 장기화로 인해 중부 및 동부 유럽의 외국인 바이아웃(기업 인수합병)이 3년 연속 감소할 전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러-우 전쟁의 여파로 인해 러시아 규제가 강하게 이어지면서, 올해 들어 중·동부 유럽 기업들 사이에서 러시아 관련 자산 매각이 대규모로 이뤄지는 추세다.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글로벌 고금리 기조에 신음 앓는 유럽 경제
26일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중·동부 유럽에 대한 외국인 바이아웃 규모·건수는 각각 총 110억 유로(약 15조6,872억원), 83건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현재 추세가 계속되면 올해 해외 바이아웃은 지난해 규모·건수인 125억 유로(약 17조8,237억원), 137건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올해 중·동부 유럽의 외국인 바이아웃 규모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시점이자 '유동성 파티'의 수혜를 입었던 2021년 155억 유로(약 22조1,074억원)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 외국인의 중·동부 유럽에 대한 해외 바이아웃 활동이 위축세에 접어든 건, 러-우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여파가 유럽 기업 활동 전반에 악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7월부터 독일을 통해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노르트스트림을 봉쇄했는데, 이로 인해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유럽 전반의 인플레이션이 촉발됐고, 나아가 유럽 제조 분야 기업의 프로젝트 수주 및 가계 지출도 크게 감소한 것이다. 여기에 미 연준(Fed)의 고강도 통화 긴축에 따라 달러화 강세가 이어진 것도 인플레이션 부담을 가중시킨 모양새다. 이와 관련, 지난달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5.3% 상승하면서 시장 컨센서스(5.1%)를 웃돌았다.
아울러 앞서 지난 14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기존 4.25%에서 4.5%로 끌어올린 것도 유럽 경제 침체 및 외국인의 중·동부 유럽 지역 기업 바이아웃 위축세에 일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ECB는 유로존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우려에도 불구, 러시아의 공급망 옥죄기가 초래한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인해 이달까지 10차례 연속 금리를 인상했다. 이에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4분기 -0.1%, 올해 1분기 0%를 기록해 기술적 침체에 빠진 모습이다. 특히 사실상 유럽 경제를 떠받치는 독일은 작년 4분기 -0.4%, 올해 1분기 -0.1%, 2분기 0% 등 경기 침체의 늪에서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 사회 압박으로 러시아 관련 자산 매각하는 중·동부 유럽 기업도 적지 않아
올해 가장 큰 규모로 성사된 외국인의 중·동부 유럽 지역 바이아웃은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 그룹(Carlyle)이 체코 광학 제조업체 메옵타(Meopta)를 7억 유로(약 9,972억원)에 인수한 건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중·동부 유럽 기업의 러시아 관련 사업부 매각 추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국제 사회로부터 러시아에서의 사업을 축소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중·동부 유럽 기업 바이아웃은 독일의 화학제품 및 소비재 기업인 헨켈(Henkel)의 러시아 사업부 매각 건으로, 6억 유로(약 8,553억원)에 매각 합의됐다. 헨켈의 러시아 사업 부문을 인수한 컨소시엄에는 어그먼트 인베스트먼트(Augment Investment), 키스멧 캐피털 그룹(Kismet Capital), 엘브루스 서비스(Elbrus Service)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해 한 전직 IB 업계 관계자는 "최근 북미와 관계가 악화된 러시아를 향해 각종 규제가 거세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해당 여파로 유럽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러시아 관련 자산을 향후에도 더 많이 매각할 것"이라며 "심지어 몇몇 경우엔 러시아 투자자들이 기회를 틈타 이들 자산을 값싸게 취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