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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말 국제유가 가격 저점 이후 달러화와 ‘동조화’ 두드러져 셰일혁명으로 에너지 순수출국 된 미국, 달러화가 '원자재 통화'로 자리매김 FT “세계 최대 석유 순수입국 중 하나인 한국에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
최근 미국 달러와 국제유가가 이례적으로 동반 강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원유 거래 대부분이 미국 달러로 체결되는 탓에 달러화 가치와 국제유가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둘의 동조화는 지난해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처음 시작한 시점부터 나타났으며, 최근 고금리 장기화와 중동 분쟁에 따른 글로벌 원유 수급 불균형이 악화하면서 그 추세가 강화됐다. 일각에선 달러화와 유가의 동조화가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과 같은 신흥경제국에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며 정부와 당국의 기민한 대응을 요구했다.
‘달러화-유가’ 디커플링 공식 깨져
18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날 거래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전일 대비 변동 없이 86.66달러에 마감했다. 반면 브렌트유는 전일 대비 배럴당 0.25달러 상승한 89.9달러, 중동의 두바이유는 전일 대비 배럴당 0.35달러 하락한 90.78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최근 국제유가가 90달러 수준을 넘보는 가운데 주요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지수(DXY)도 상승 중이다. 지난해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시점부터 상승을 이어온 달러화 지수는 이날 기준 106선을 넘어섰다. 통상 역의 상관관계를 보여왔던 달러화 가치와 국제유가의 관계가 더 이상 맞지 않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달러화가 원자재의 국제 가격과 연동해 가치가 달라지는 ‘원자재 통화’로 부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 시간) 칼럼을 통해 “달러화가 '원자재 통화'로 자리매김했다”면서 “이는 미국이 2000년대 '셰일혁명'에 의해 에너지 순수출국이 됐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2011년부터 본격화한 셰일혁명에 힘입어 2018년에 일일 1,099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며 세계 1위 산유국이 됐다. 이후 2019년부터는 전체 에너지 수출국이 됐고,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으로도 자리매김했다.
‘중동 분쟁’ 등으로 악화된 글로벌 원유 수급 상황이 동조화의 배경
이같은 달러화와 유가의 동조화는 상당히 특이한 현상이다. 대부분의 원유 거래가 미국 달러로 체결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유가는 내리고, 달러 가치가 내리면 유가는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달러화 지수가 2014년 6월 말 80 수준에서 2016년 초 100까지 오를 때 두바이유는 배럴당 110달러 수준에서 20달러대 초반까지 급락했다.
그러나 둘이 역의 상관관계를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 6월 말부터다. 당시 저점을 찍고 반등 추세로 돌아선 유가가 현재까지 20% 넘게 상승하는 동안 달러화 지수도 7% 가까이 상승했다. 지금처럼 4주 이상 달러와 유가가 동반 상승한 경우는 1983년 이후 지금까지 12차례에 불과했다.
원자재 통화 외에 현재 글로벌 원유 수급 상황이 동조화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연장 발표 등으로 글로벌 원유 공급이 제한적인 가운데 미국과 글로벌 원유 수급 상황이 초과 수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에 따른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까지 고조되면서 국제유가가 더욱 요동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주변국까지 분쟁에 가세해 제5차 중동전쟁으로 사태가 확산될 경우 원유 공급이 더욱 제한되면서 글로벌 수급 균형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주요 산유국인 이란이 이번 전쟁에 참전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서는 오일 쇼크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란이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를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글로벌 원유 공급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원유 공급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신흥국'엔 더 큰 타격
달러화와 유가의 동조화는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신흥경제국에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원화보다 가치가 높아진 달러로 가격이 오른 원유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수입물가 상승에 따라 생산자물가가 오른 만큼 소비자물가 상승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동시에 소비자물가 상승은 중앙은행의 긴축 기조와 시장의 고금리 여건을 장기화하고, 이는 결국 실물경제 악화와 금융 불안을 고조시킬 위험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
월가에서도 현 상황에서 가장 고통을 겪을 대표적인 국가로 우리나라를 꼽고 있다. FT는 “현재 세계 최대 석유 순수입국 중 하나인 한국이 가장 난처한 상황에 부닥쳤다”면서 “한국의 중앙은행이 수입 물가 상승과 원화 약세 등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기까지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고 진단했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선 달러화와 유가의 상관관계가 달라진 상황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송민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15일 ‘국제유가와 미 달러화의 동반 강세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과거처럼 강달러 시 국제유가가 하락해 우리나라의 교역조건,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건 이제 기대하기 어렵다”며 “대외건전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으로 과도한 환율 변동성을 막는 등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