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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국내 반도체 시장의 미래는? 낙관적 청사진 쏟아지지만, "경기 회복 단언하긴 힘들어" 中 경기 회복 '지지부진', 불황 터널 못 지나간 韓
SK하이닉스가 올 3분기에도 2조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4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갔음에도 점차 경영실적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 수요가 증가하면서 실적이 함께 반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업계에선 국내 반도체 산업이 불황 터널을 지나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올라왔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시선이 우세하다. 반도체 공급 업체들의 감산이 순간적인 효력을 발휘해 수요가 증가한 것처럼 '환각'이 일어난 것일 뿐, 실질적인 경기 회복은 아직 이뤄지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SK하이닉스 "실적 개선 가시화, D램은 흑자전환"
SK하이닉스의 26일 연결 기준 올 3분기 잠정 매출과 영업손실은 각각 9조662억원, 1조7,818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7.5% 줄었고 영업손익은 적자전환했다. 다만 SK하이닉스는 경영실적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며 긍정적인 청사진을 그렸다. SK하이닉스 측은 "고성능 메모리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 수요가 증가하면서 회사 경영실적은 지난 1분기를 저점으로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며 “특히 대표적인 AI용 메모리인 HBM3, 고용량 DDR5와 함께 고성능 모바일 D램 등 주력제품들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며 전 분기 대비 매출은 24% 증가하고 영업손실은 38% 감소했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올해 1분기 적자로 돌아섰던 D램이 2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한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적자 규모가 크긴 하지만, 2분기에 이어 3분기에 실적 개선 흐름이 나타난 건 사실이다. 실제 SK하이닉스의 직전 분기(7조3,059억원) 대비 매출은 24% 증가했다. 직전 분기(2조8,821억원) 대비 영업손실은 38% 감소했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의 매출 증가 추세는 D램 및 낸드 판매량 증가, D램 평균판매가격(ASP, Average Selling Price) 상승 등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제품별로 보면 SK하이닉스의 D램은 AI 등 고성능 서버용 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2분기 대비 출하량이 약 20% 늘어났고 ASP 또한 약 10% 상승했다. 낸드도 고용량 모바일 제품과 SSD(Solid State Drive) 중심으로 출하량이 늘었다.
흑자로 돌아선 D램은 생성형 AI 붐과 함께 시황이 지속해서 호전될 전망이다.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낸드도 시황이 나아지는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는 추세다. 이에 SK하이닉스는 내년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설비투자(CAPEX)를 확대함으로써 부활의 신호탄을 쏘겠단 계획이다. 김우현 SK하이닉스 부사장(CFO)은 “당사는 고성능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면서 미래 AI 인프라의 핵심이 될 회사로 탄탄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앞으로 HBM, DDR5 등 당사가 글로벌 수위(首位)를 점한 제품들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낼 것이며, 고성능 프리미엄 메모리 1등 공급자로서의 입지를 지속 강화해 나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반도체 생산 '재반등'? "경기 회복 조짐 보여"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주동력인 반도체 생산이 반등할 수 있을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실제로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경기 반등 조짐이 확대되고 있다는 낙관적인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4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8월 당시 반도체 생산지수는 142.9(원지수·2020년=100)로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했다. 통계청은 "반도체 생산이 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 증가한 건 지난해 7월(14.9%) 이후 13개월 만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반도체 생산은 고물가·고금리 등에 따른 전 세계 경기 둔화로 부진한 모습을 이어왔다. 지난 2월엔 전년 동월 대비 기준 41.7% 감소하며 2008년 12월(-47.2%) 이후 최대 폭의 감소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 반도체 생산이 반등의 조짐을 보이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생산은 전월 대비로 13.4% 상승했고, 이에 힘입어 광공업 생산(5.5%)과 전산업 생산(2.2%)도 모두 큰 폭으로 반등했다. 게다가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99억 달러(약 13조4,492억원)로 작년 10월(92억 달러)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했고,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 4.4% 줄어 작년 10월(-5.8%) 이후 가장 낮은 감소율을 보였다. 반도체 산업의 기틀이 다시금 잡혀가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광공업 생산의 증가와 최근 수출 흐름은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회복세를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최근 경기 반등 조짐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회복 글쎄, 판단은 시기상조"
다만 일각에선 최근의 흐름만을 놓고 경기 회복을 논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급량을 줄이고 과잉공급을 해결함으로써 가격을 끌어올린 게 잠시나마 효과를 본 것일 뿐 실질적인 반도체 경기 회복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감산을 공식화한 이래 몇 차례 추가 감산을 진행한 바 있다. 과잉공급 문제가 해소되면서 자체 재고 및 유통재고가 줄었고, 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수요가 오르면서 '반짝' 성장이 가시화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그간 반도체 생산의 감소 폭이 컸기 때문에 기저효과가 크게 발생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이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큰 폭의 반등을 이룰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수요 회복세가 지지부진하다는 건 업계 사이에선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메모리의 주요 응용처인 서버 투자가 위축되면서 수요가 크게 쪼그라든 탓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도 D램과 낸드플래시의 전년 대비 수요 빗그로스(비트 단위로 환산한 출하량 증가율)를 각각 13%와 16%로 전망했다. 반도체 혹한기로 여겨지는 올해보다는 상황이 좋아질 것이란 예상이지만,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부터 비교하면 어느 해보다도 낮은 수치다.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경기 침체로 인해 테크기업들의 투자가 보수적으로 돌변했고, 이는 반도체 시장의 수축을 불러일으켰다.
더군다나 최근엔 개별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도 위축됐다. 트렌드포스는 소비자들이 가장 자주 구매하고 또 교체하는 대표 IT 제품인 스마트폰의 내년도 생산 증가율이 2.2%에 불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체감 경기를 보여주는 미국의 소비자 신뢰지수의 경우도 8월 106.1을 기록하며 전달(114)보다 크게 떨어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소비자들마저 지갑을 닫으면서 업황 불안이 더욱 심해진 모양새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 회복이 더딘 점이 향후 반도체와 수출 회복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금리 인상 요인, 물가 상승 압력, 가계대출 확대에 따른 불안정 등이 남아 있어서 여전히 어려운 국면"이라며 "중국 경기가 회복되면 좋아질 수 있으나, 현재까지 뚜렷한 신호가 나타나지 않아 경기 회복을 논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불황 터널을 지나치지 못한 상태다. 그나마 지난달 하락세가 잠시 주춤하면서 다시금 반등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이마저도 단기간의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분간은 반도체 업체의 감산 능력에 수급 회복 여부가 크게 좌우되는 현상만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