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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기간 경제 활동에 지장을 받아 제때 상환하지 못한 빚에 대해 민간 업체의 추심이 시작된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본 개인 채무자들의 연체채권 관리를 신용정보회사(CA) 위탁에 돌입하면서다. 아직 국내 경기가 완전한 회복세에 들어서지 못한 만큼 적지 않은 채무자들이 부담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캠코는 올해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를 통해 인수한 채권 중 426억원가량의 관리를 신용정보회사에 위탁했다. 캠코의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 채권 관리 위탁은 올해가 처음으로, 상환유예 기간이 만료한 채권을 순차적으로 위탁했다.
"불가피한 연체, 채무자들의 재기 도와야"
코로나19 확산으로 극심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민간 금융회사의 과잉 추심을 방지하려는 목적에서 2020년 6월 출범한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는 은행을 비롯한 모든 금융회사가 팬데믹 관련 개인연체채권을 캠코에만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불가피한 연체를 모두 채무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말하며 “과도한 상환 압박을 줄여 채무자들의 재기를 돕고자 한다”고 제도의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캠코 역시 금융위의 취지에 동의하며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하는 시점까지는 적극적인 추심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채무자의 소득 회복 정도에 따라 최대 2년간 빚을 갚지 않아도 되도록 상환유예 조치를 완료했다. 하지만 올해 이들 채무자에게 부여한 상환유예 기간이 만료함에 따라 상황이 급변했다.
캠코는 지난 8월 말까지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를 통해 매입한 채권 중 426억원가량의 채권의 관리 신용정보회사에 위탁했다. 이는 제도 시행 이후 캠코가 사들인 전체 개인연체채권 약 6,277억원 가운데 6.8%에 해당하는 규모다.
캠코 관계자는 “추심 절차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라며 “유예기간 끝난 채무자들의 신용거래 권한 회복을 위해 채무조정 안내 등을 시작한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캠코가 위탁한 채권 중 약 5억원에 가까운 금액이 이미 회수됐고, 캠코는 이에 대한 수수료로 해당 신용정보회사에 7,000만원가량의 수수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색내기용 금융 지원, 실제 혜택 받는 경우는 극소수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경제 환경에서 국민들의 빚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도입된 정부와 캠코의 각종 금융지원은 꾸준히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대상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이 대표적인 예다. 새출발기금은 대상자에 선정됨과 동시에 채무 독촉 및 원리금 상환 부담을 연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었지만, 지난해 10월 시행 이후 올해 1월까지 혜택을 받은 대상자는 두 자릿수에 그치며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 기간 채무조정을 신청해 심사 절차에 들어간 부실차주가 9,364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약 1%의 신청자만이 혜택을 받은 셈이다. 이에 대해 캠코는 “채권 매입을 위해 금융회사별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렇게 확정된 채권 정보를 표준화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며 “아직 제도 시행 초기인 만큼 곧 빠른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금융당국이 국회에 제출한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안」(개인채권법) 역시 1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해당 법률안은 개인채무자가 은행 등 금융사에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채무조정 요청권’을 도입하고 과도한 채권 추심을 막기 위해 논의, 진행됐다. 지난 7월에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관련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이후 구체적인 시행 논의는 전개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피해 관련 각종 금융지원이 종료되며 차주들의 상환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구제를 위한 법안마저 시행을 장담할 수 없게 되자, 국민들의 금융 구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남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은 “가계부채가 사상 최악의 상황이므로 채무자를 보호하는 해외의 선진 제도를 참고해야 한다”며 “관련 제도 도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을 막기 위해 현행 제도 내 행정력을 적극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체율 급상승하는 2금융권, 금융위는 "여러 방안 검토 중"
저축은행을 비롯한 2금융권의 연체율 급상승도 이같은 우려에 힘을 보탠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올해 1분기 평균 연체율은 5.1%를 기록했다. 이는 직전 분기(3.4%)보다 2%p 가까이 증가한 수치로, 2016년 이후 처음으로 5%대를 넘어선 결과다. 이같은 연체율 상승은 당분간 높아질 전망이다. 2020년부터 발생한 코로나19 관련 개인 연체채권은 캠코의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에만 매각할 수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거래돼 이를 꺼리는 저축은행들이 대부분인 탓이다.
금융당국은 연체율 상승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히며 “2금융권의 건전성 관리 측면에서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방법 가운데는 연체 채권 매각 채널을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경우 악성 추심이 급증할 우려가 있는 만큼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오는 12월에는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마저 신청 종료를 앞두고 있어 코로나19 피해로 빚을 갚지 못한 개인들을 향한 악성 추심을 막을 수단이 사라져 버린다. 당초 지난해 말 종료 예정이었던 해당 프로그램은 연체 채무자에 대한 적극적인 채무조정과 재기지원 필요성이 여전하다는 판단에서 한 차례 연장된 바 있다.
금융계에서는 캠코가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 위탁에 돌입한 만큼 더 이상의 연장은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지난달에야 캠코의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 관리 위탁 사실을 인지했다고 밝히며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 운용 기간 연장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며, 이를 위해 캠코에 추가 위탁을 하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캠코는 추심이 아닌 채무조정을 지원을 위해 관리를 위탁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70세 이상 고령자, 기초수급자 등 사회 취약계층은 이번 위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채무자에게 상환 압박이 가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신용정보회사는 공정채권추심법 등 관련 법에 따라 과잉 추심을 할 수 없으며, 관련 법규를 철저히 준수하도록 중간평가제도 등으로 철저히 감독하고 있다”면서도 금융위의 위탁 중단 요청에 대한 확답은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