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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양산' 사송신도시, 쿠팡 들어오자 '상황 반전' 오지까지 겨냥한 쿠팡, '지방 살리기'에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했다 '민관 협업' 중요성 확대,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최대한 활용해야"
경남 양산시가 계획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1만4,893가구 입주를 목표로 조성 중인 사송신도시(양산시 동면 사소리·내송리)엔 대형마트가 없다. 지난해부터 7,000여 가구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지만, 지난 6월 이전까진 30분 이상 차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야 쇼핑을 할 수 있었다. 이곳이 '무늬만 양산'이란 비아냥을 들었던 이유다. 그러나 6월부터 쿠팡이 사송신도시에 로켓배송을 시작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주문 후 이르면 당일 물건이 배송되다 보니 사송에서만 매일 1,000건~1,500건가량의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배송 서비스가 지방의 유통 인프라 형성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쿠세권' 확대하는 쿠팡, 매출 30조 고지도 넘는다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26조5,917억원이던 쿠팡 매출은 올해 30조원 고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20조원 고지를 밟은 지 불과 2년 만이다. 이는 오프라인 유통 1위인 이마트 매출을 가뿐히 넘어서는 규모다. 이마트는 올해 1~3분기 22조1,161억원(할인점·트레이더스·노브랜드 합산)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쿠팡의 성공 원동력으로 '결집력'을 꼽았다. 실제 김범석 쿠팡Inc 대표의 창업 모토는 ‘대체 불가능한 쇼핑의 최종 종착지’다. 한 번 발을 디디면 쿠팡에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밖에 없도록 최고의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목표 의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이 돼 가고 있다. 쿠팡의 고객 한 명당 소비금액은 2021년 3분기 31만2,000원가량이었으나, 올 3분기 39만7,040원으로 27.2%나 불어났다.
소비자의 일상을 점유하기 위한 쿠팡의 전략은 롯데쇼핑, 이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 강자들과 완전히 달랐다. 쿠팡이 대세가 되기 전까지 유통업체들은 소비자와의 접점인 매장을 부동산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에 점포를 지어 매출 증대와 부동산 가치 상승을 동시에 누린 것이다. 차가 없는 1020세대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고객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공급자 우선주의였다. 반면 쿠팡은 실핏줄처럼 전국에 깔아놓은 배송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존 유통의 한계를 극복했다. 지난달부터는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도 배송에 2~3일은 걸리는 강원 삼척 도계읍에 로켓배송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다. 쿠팡의 배송 시스템이 지방 소멸을 막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쿠팡은 초고령화 지역인 도서·산간 오지까지 이른바 '쿠세권'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쿠팡 앱에 접속하는 이들 중 장년층과 고령층 비중도 커졌다. 지난달 기준으로 쿠팡을 이용한 55세 이상 비중은 17.6%에 달했는데, 이는 18~24세(19.5%)와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의 아마존과 같이 쿠팡이 '생활 인프라'로 굳어졌단 의미다. 쿠팡의 국내 소매시장 점유율이 8~9%(증권업계 올해 추정치)로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한 데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앞선 사송신도시 사례처럼 도시계획 측면에서 쿠팡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 더 많아질 것이란 기대감도 높아진다. 이와 관련해 김찬호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고령화로 인한 지방 소멸 문제는 당장 해법을 찾아야 할 시급한 과제”라며 “필수라고 여기던 기존 인프라 없이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시설계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데, 쿠팡이 지방 구석구석까지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면서 이게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소외지역 아직 많아, '민관 협업' 필요성 증대
다만 아직 쿠팡의 일부 서비스는 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돼 있다. 소멸위기 지방의 유통 인프라를 완전히 책임지기엔 아직 덩치가 그리 크진 못하단 의미다. 쿠팡에 따르면 쿠팡 서비스 지역 229개 지방자치단체 중 새벽배송이 가능한 지역은 106개로 전체 대비 46.3%에 그쳤다. 서울의 경우 모든 지역에서 새벽배송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경기는 지자체 31개 중 21개에서만 서비스 중이었다. 경기의 동부권과 남부권은 새벽배송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의 경우 강화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새벽배송을 받을 수 있었다. 수도권 전체 지자체 66개 중 55개(83.3%)에서 새벽배송이 가능한 셈인데, 이는 전국 평균의 약 2배다. 광역시도 대체로 새벽배송이 가능했다. 대전과 대구, 광주, 울산, 부산에서 새벽배송이 가능했으며, 특별자치시인 세종도 서비스 가능 지역에 포함됐다. 세종과 제주를 포함해 광역단체만 기준으로 따지면 제주시와 서귀포시, 인천 강화군 등 3곳을 빼고 74개 지자체에서 새벽배송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소외지역으로 분류됐다. 강원과 전남은 새벽배송이 가능한 지역이 한 곳도 없었으며, 충북(청주)과 전북(전주)은 새벽배송 가능 지역이 한 곳밖에 없었다. 충남에선 아산과 천안에서만 부분적으로 새벽배송을 받을 수 있었으며, 경북에선 경산·구미·김천·칠곡, 경남에선 김해·양산·창원 정도가 가능했다. 그나마 이들 지역 중 배송이 가능한 지역은 광역시와 인접한 곳, 경부고속도로 라인과 겹치는 곳 정도였다. 새벽배송 가능 지역이 수도권역에 집중돼 있는 건 기업으로서 합리적인 결정이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인구통계를 보면 쿠팡 새벽배송 가능 지역의 인구는 3,810만2,233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73.8%에 달한다. 그만큼 효율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나마 쿠팡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서비스 지역을 확대하고 있는 편이다. 쿠팡 이외 마켓컬리의 새벽배송인 샛별배송은 수도권과 충청권 일부, 대구, 부산, 울산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샛별배송 서비스 지역을 확대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신세계그룹 온라인 통합몰 브랜드인 SSG닷컴의 새벽배송도 수도권과 충청권 일부 지역에서만 받을 수 있다. 반면 쿠팡은 지속적으로 서비스 지역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그런 만큼 생활서비스의 지역 간 격차는 쿠팡을 기점으로 점차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취약지역에 대한 서비스 전달을 위해 민관이 협업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차미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불편이 곧 불행하다는 사회인식에 따라 생활서비스가 열악한 지방에 사는 걸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새벽배송 등 새로운 생활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민간기업과 협업·지원을 통해 취약지역에 대한 서비스 전달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쿠팡의 성장을 단순히 막아야 할 독점적 행위로 보기보단 정부 차원에서 지방 인프라 확대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