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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분담기준 따른 자율배상 실시 “제외 대상·과실여부 따지면 극소수만 혜택” 사후 처리에 집중된 제도, 선제적 대응책 필요
새해부터 시행된 비대면 금융사기 피해자 구제책이 다수의 제외 조항으로 금융기관의 책임 범위를 최소화하는 등 소비자들의 피해 보전에는 뒷전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의 강압적인 주도 아래 추진된 제도인 만큼 허점이 많다는 비판과 함께 각종 사기 피해의 선제적 예방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소비자 예방 노력 따라 배상비율 결정
이달 1일부터 시행된 비대면 금융사기 피해자 구제책은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과 19개 은행이 체결한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기준 이행 협약’에 따른 조처다. 해당 협약에 따르면 올해부터 은행도 고객이 피해를 입은 비대면 금융사고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해까지 발생한 금융사고는 배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며, 이달 1일 이후 발생한 비대면 금융사고에 한해 책임분담기준에 따른 자율배상을 실시한다.
손해배상 대상은 제3자가 이용자의 동의 없이 전자금융거래를 실행해 이용자에게 금전적 손해를 일으킨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 비대면 금융사고다. 피해자는 본인 계좌가 있는 은행에 배상을 신청할 수 있으며, 은행이 피해 사실 및 피해 규모 등을 확인한 후 책임분담기준에 따른 배상비율을 결정한다.
배상비율 결정 요소에는 소비자 예방 노력 등이 포함됐다. 피해자가 은행이 제공하는 사고예방 시스템을 이용했거나, 사고 발생 사실을 인지한 후 즉각 은행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등의 피해예방·복구 노력을 한 경우 배상 비율을 일정 수준 높일 수 있다. 반대로 은행이 사고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보안 시스템을 적극 도입 및 운영한 경우에는 배상비율이 낮아진다.
최종 피해배상금은 통신사기 피해환급금을 지급한 후 비대면 금융사고 총 피해액에서 해당 환급금을 제외한 범위 내에서 산정된다. 가족이나 지인 간 공모 등 이용자의 사기에 의한 비대면 금융사고는 피해가 발생해도 배상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관련 법령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이번 비대면 금융사기 피해자 구제책 시행을 전후로 은행들은 이상금융거래탐지시스템(FDS) 고도화에 나서는 등 금융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금감원은 저축은행, 여신전문금융회사, 금융투자회사, 보험사 등 2금융권도 비대면 금융사고 예방 노력 강화와 자율배상에 단계적으로 동참하도록 유도해 나갈 방침이다.
피해자 대다수는 여전히 구제 방안 전무
문제가 된 부분은 ‘비대면 금융사고 책임분담기준’ 내 신청 제외 대상이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이용자 본인이 직접 지급을 지시한 금융거래의 경우 은행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비대면 금융사고의 상당수가 가해자에게 속은 피해자가 직접 이체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만큼 사실상 제도의 취지에 어긋나는 내용인 셈이다.
또 그동안 이용자 중과실로 간주했던 신분증 노출, 악성 애플리케이션(앱) 설치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도록 하면서도 이용자가 개인정보를 휴대전화에 저장하는 등의 경우 피해배상에 제한을 뒀다. 이처럼 피해 신고 제외 대상이나 이용자의 과실 여부 등을 면밀히 따지면 피해자 대다수가 책임분담금을 받지 못하거나 최소한(20%)만 받도록 설계돼 있어 제도의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보보호 업계에서는 정부와 은행권이 마련한 사후 보상 대책에 한계가 명백하다는 점을 꼬집으며 소비자와 은행 간 다툼의 소지만 커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대면 금융사기 가해자들의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지만, 제도는 과거의 사기 형태를 구분하고 개별 대응하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정보보호 전문가들은 갈수록 세분화하는 비대면 금융사기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와 달리 피싱 등에 의한 이용자 직접 송금 및 결제 비중은 갈수록 축소되는 반면, 악성코드 앱이나 신용카드 피싱 등 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비대면 금융피해 중 메신저 피싱 비중은 2020년 15.9%에서 2021년에는 58.9%로, 2022년에는 63.9%로 해마다 가파른 증가세를 그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과 은행들이 내놓은 비대면 금융사기 피해자 구제책을 “금융권이 고객 확보 및 이탈 방지를 위해 경쟁적으로 면피 정책을 준비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며 “스마트폰 탈취를 통한 사기 범죄가 급증하는 만큼 스마트폰만으로는 금융거래에 제한을 두는 시스템 등 다양한 솔루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