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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커머스 업계 소집한 정부, '규제 일변도' 버리고 대응책 마련 나선다 초저가 전략에 국내 업체 '속수무책', "배송 인프라까지 갖추면 답 없다" 정부 대책은 시간 끌기, 실질적인 대책은 업계 차원에서 마련해야
정부가 국내 e커머스 업계를 소집해 알리, 테무 등 중국 플랫폼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중국 e커머스가 초저가를 앞세워 국내 e커머스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자 국내 유통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의 e커머스 대책은 어디까지나 '시간 끌기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초저가 전략을 앞세운 중국 업체에 대항하기 위해선 새로운 셀링 포인트를 찾아 나서는 등 업계 차원의 노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고사 직전의 유통산업, 정부가 발 벗고 나선다지만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14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중견기업정책관 주재 회의를 열 계획이다. 참석자는 한국유통학회와 네이버, 쿠팡, 11번가, 지마켓, SSG닷컴 등 국내 e커머스 관계자들이다. 산업부는 이날 회의에서 국내 온라인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하고 해외 플랫폼 사업자들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 유통산업이 살아남으려면 e커머스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생각”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업계와의 논의를 토대로 향후 법 개정까지 나아가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및 온라인 새벽배송 규제 완화 외에도 국내 유통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조항을 추가 개정해 우회적으로 중국 e커머스에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가 e커머스 업계 보호에 눈을 돌린 건 중국 e커머스의 국내 잠식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탓이다. 이와 관련해 산업부 관계자는 "중국 e커머스의 국내 시장 잠식을 방치할 경우 국내 e커머스 등 유통산업 기반 붕괴는 물론 플랫폼에 입점해 장사하는 중소 상공인에게도 직간접적인 타격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국내 유통업계는 초긴장 상태다. 앱 시장조사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알리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작년 초 300만 명대에서 지난달 약 717만 명으로 두 배 넘게 급증했다. 벌써부터 국내 e커머스 2위 자리(11번가·759만 명)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알리 급성장의 비결은 '오픈마켓 수수료 제로' 등 파격적인 혜택을 앞세운 공격적인 마케팅에 있다. 앞서 알리는 오픈마켓 수수료 제로를 내세우며 LG생활건강, 애경, 유한킴벌리 등 한국 브랜드를 대거 끌어들였다. 수수료 매출을 포기하면서까지 세를 불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알리의 최대 강점인 '초저가'가 불공정행위와 맞닿은 부분이 있단 점이다. 알리에선 삼성전자, F&F 등 국내 기업 브랜드들의 ‘짝퉁’이 아무런 제재 없이 팔리고 있다. 한국 소비자가 제품 상태, 배송 등에 민원을 제기하려고 해도 제대로 된 고객센터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거듭 논란이 일자 알리 측은 "자체적인 정화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중국 e커머스의 영향력이 높아진 만큼 국내 플랫폼과 공평하게 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모양새다.
흔들리는 국내 e커머스, "중국이 한국 먹는다"
알리의 행태를 방관하다간 국내 유통산업의 뿌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국회 등 입법기관의 규제 칼날에 위축된 국내 e커머스 업계를 알리 등 중국 업체가 모조리 먹어버릴 수 있단 것이다. 이전까지 정부는 e커머스 등 플랫폼 업계에 대해 규제책으로 일관해 왔다. 지난해 1월 제정된 공정거래위원회 '온라인플랫폼 독과점 심사 지침'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한 유통업계 전문가는 "엄밀히 따지면 국내 e커머스 플랫폼 사업자 중 독과점 위치에 있는 기업은 아직 없다"며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네이버와 쿠팡도 각각 점유율이 10%대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심사 지침에 담긴 ▲멀티호밍 ▲자사 우대 ▲끼워팔기 등 금지 행위들은 해석에 따라 언제든 e커머스 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위협이 된다"며 "정부가 산업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 없이 규제를 남발하고 있단 방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e커머스 업계가 규제에 허덕일 때, 알리와 테무 등 중국 플랫폼의 침투력은 높아져만 갔다. 국내 e커머스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던 '빠른 배송 인프라'마저 중국 업체에 잠식당할 수 있단 우려가 적지 않다. 올해 초 알리바바그룹은 한국에 물류센터를 들이겠단 계획을 밝혔다. 레이 장(Ray Zhang) 알리 한국 대표는 지난해 "고객 만족도 향상을 위한 모든 가능성을 열고 있다"며 "내년(올해) 중 한국에 물류센터 개설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알리의 물류센터 확보가 무난히 이뤄질 경우 5일에서 많으면 한 달까지 소요되는 알리의 배송 시간은 대폭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알리의 한국 배송 절차는 크게 △중국 집화 △중국 물류센터 입고 △중국 출발 통관 △선박/비행기 선적 △한국 도착 △한국통관 △한국 물류센터 입고 △배송 과정을 거치는데, 한국에 물류센터가 들어서면 구매 과정에서 통관 절차 이전 단계는 간소화할 수 있다. 이 경우 익일 배송까지 가능해져 국내 e커머스 업계의 추락은 더욱 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저가' 1688닷컴도 한국 상륙 초읽기
더 큰 문제는 알리를 넘어선 '초저가' 전략을 내세운 도매 플랫폼인 1688닷컴도 한국 서비스 시작을 타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쿠팡과 G마켓, 11번가 등 국내 오픈마켓 판매자들 상당수가 중국 내 배송 대행업체를 통해 1688닷컴에서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 중국 내 플랫폼임에도 타 플랫폼과 비교가 불가능한 초저가 경쟁력이 있는 데다 온라인으로 주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직 알리바바 차원에서 1688닷컴의 한국 진출 계획을 공식화한 적은 없지만, 향후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면 오픈마켓부터 오프라인 업체까지 광범위한 사업 분야에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1688닷컴을 통해 물건을 구입해 판매하던 오픈마켓 셀러들에게도 여파가 미치면 오픈마켓의 전체 매출에도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알리바바의 도·소매 사이트가 모두 활성화되면 1688닷컴에서 최저가에 구매한 제품을 알리에서 판매하는, 이른바 '알리바바 생태계'가 구축될 수도 있다"며 "저가의 중국 물품 도매가 늘어나면 국내에서 물건을 공급하는 오프라인 도매업체, 제조업체의 생태계 기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업계 일각에선 1688닷컴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를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688닷컴의 경우 국내 도매 전용 플랫폼과 달리 개인 회원으로도 가입이 가능하다. 일반 소비자가 공동구매 등 방식으로 도매가에 상품을 구매하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판매 품목 중엔 최소 주문 수량이 정해져 있지 않은 품목도 많은 만큼 소매 거래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다. 유통업계의 위기는 이미 눈앞으로 다가왔다. 정부가 대책 마련을 타진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시간 끌기일 뿐 본질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국내 업계가 침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중국의 초저가 전략을 이겨낼 만한 셀링 포인트를 발굴하는 등 업계 차원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