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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클라우드 분야에만 3만여 명 부족
R&D 예산 축소에 인력 이탈 가속 우려
양적 확대만큼 질적 성장도 중요
국내 과학기술계가 심각한 인력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2020년대 이후 꾸준히 대두된 과학기술계 인력난이 가시화하고 있는 만큼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도 양적 확대에 집중하느라 질적 성장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가는 인력은 다수, 들어오는 인력은 한정적
8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과학기술 연구 인력은 향후 5년간(2024년~2028년) 약 4만7,000명 부족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직전 5개년 800명 부족 수준에서 8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로, 전체 부족 인력 중 3만여 명이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분야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이처럼 심각한 인력 부족의 원인으로 석·박사 이상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을 들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우리나라 고급 두뇌 유출 지수는 조사 대상 63개국 중 33위에 달한다. 반면 해외 고급 인력 유인 지수는 49위에 불과했다. 연구 인력 배출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되는 이공계 박사 학위 취득 인원에서도 우리나라는 인구 1만 명당 39.0명에 그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인 49.2명을 한참 밑돌았다.
과학기술계 인력 부족 심화는 2020년대 들어 꾸준히 제기된 문제로, 가장 최근의 발표로는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의 ‘신기술 인력수급 전망’을 꼽을 수 있다. 당시 고용부의 조사에서는 2027년까지 AI(1만2,800명), 클라우드(1만8,000명), 빅데이터(1만9,600명), 나노(8,400명) 등 4대 미래기술 분야에서 약 6만 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 바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저출산 문제가 심화하면서 과학기술계의 인력 수요와 공급간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러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신산업 부문 고급 인력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중장기 인력 수급에 대한 대응책은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인력난에 겹쳐 예산 부족까지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올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21조5,000억원(약 163억 달러)으로 전년 대비 13.9% 줄었다. R&D 예산 삭감은 8년 만의 일로, 학계 및 업계에는 고급 인력 이탈과 신규 인력 감소가 한층 속도를 높일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정부는 R&D 예산 감소와 인력수급 추이는 연관성이 매우 낮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인재 양성 사업은 부처에서 별도로 운영되는 만큼 인력 수급에 미치는 악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매우 낮은 수준의 국제 R&D 협력 수치로 반박할 수 있다는 게 학계의 주장이다. 지난 2020년 기준 국제 R&D 협력 수치를 나타내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 국외 협력 논문은 총 2만7,281건이다. 이는 미국과 비교하면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며, 중국과 비교해도 6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또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비는 1,196억달러(명목PPP 기준, 약 159조원)로 미국 7분의 1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빠져나가는 인력을 막을 뚜렷한 방도가 없는 만큼, 해외 우수 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대안이 주를 이룬다. 양지원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원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간 신뢰 기반을 형성하고, 정책적 일관성을 통해 글로벌 기술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기술협력이 가능한 분야에서는 과감하게 문턱을 낮춰 협력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생산성 극대화’에 중점 둔 학업 지원 강조
전문가들의 경우 국내 과학기술 인력의 양적 축소만큼이나 질적 저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급 불균형에 대한 업계의 우려는 기술 인력의 양적·절대적 부족이 아닌, 양성된 기술 인력이 기업이나 현장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질적 불일치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는 우수한 학생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이공계 인력의 학업 및 취업 전주기를 아우르는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양적 확대도 중요하지만, 한 명 한 명의 인재가 생산성을 극대화해야 업계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양적 확대에만 집중하느라 이공계 졸업생들의 일자리와 임금 수준을 등한시한다면, 지금과 같은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은 그 속도를 높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엄미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과학기술계는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극단의 불확실성 시대를 지나고 있다”며 “과학기술 인재 양성은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시작으로 기초역량 강화, 문제해결 역량 및 소통 역량 등 전이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제 우리가 양성하는 미래 인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걸으며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경로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