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손보 美 포테그라 품으며 글로벌 확장, 경영권 갈등 속 DB그룹 대외 전략 시험대
입력
수정
글로벌 손보시장 진출 강화 의지 드러내
그룹 내 부자 갈등 겹치며 인수 여력 불확실
알력 다툼 지속, 자원 배분·지배구조 이슈 부각

DB손해보험이 미국 특수보험사 포테그라를 약 2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보험업계 최대 규모의 해외 인수합병(M&A)이 성사됐다. DB그룹 내부 경영권 갈등과 자회사 매각 논란 등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단행된 이번 투자는 글로벌 손보시장 확대 전략의 일환이자, 금융 부문 중심으로 그룹 축을 재편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자본 건전성 지표 하락 가능성 등 일부 비관적 관측에도 불구하고 DB손보가 선택한 과감한 행보는 향후 그룹 지배구조 균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외 보험시장 확대 전략의 기대효과
3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DB손보는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고 포테그라그룹 지분 100%를 16억5,000만 달러(약 2조3,000억 원)에 매입하기로 확정했다. 지분 취득 예정일은 내년 5월 31일이며, 인수 대금 납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까지 완료해 포테그라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보험사 최초의 미국 보험사 인수이자, 역대 최대 규모의 해외 M&A인 이번 거래는 DB손보가 글로벌 손해보험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선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포테그라는 1978년 설립된 특수보험 전문사로, 신용·보증보험과 보험 연계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미국을 비롯해 유럽 8개국에 사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원수보험료는 30억7,000만 달러(약 4조4,000억원), 순이익은 1억4,000만 달러(약 2,000억 원)를 기록했다. 이 같은 순이익은 같은 기간 DB손보 순이익의 약 11%에 해당하는 규모로, DB손보가 단순한 외형 확대를 넘어 수익 구조 보강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DB손보는 인수 자금을 외부 차입 없이 보유 자산을 활용해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DB손보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1조4,197억원으로 인수 대금에는 부족하지만, 이 외에 62조7,285억원 규모의 금융자산을 운용 중인 만큼 일부 유동화를 통해 자금 충당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DB손보의 운용자산은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FVPL) 12조3,047억 원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 29조5,890억 원 △상각후원가측정금융자산 20조7,358억원 등 다양한데, 이 가운데 FVPL은 단기 매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금 마련의 유연성이 높은 자산으로 분류된다.
다만 이번 인수로 DB손보의 지급여력비율(K-ICS)은 최대 20%p가량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말 DB손보의 K-ICS 비율은 213.3%로 규제 기준(130%)을 크게 웃돌았으나, 인수 대금 집행 이후에는 190%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현상으로, 업계에서는 포테그라의 견조한 이익 창출력이 이어질 경우 매년 DB손보의 순이익 개선과 함께 K-ICS 비율에 2%p 이상의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포테그라가 보험총대리점 기반의 안정적 판매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DB손보의 해외 영업망 확장과 수익성 보강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란 평가다.

경영 불확실성에 인수 후 통합 과정 난항 예상
DB손보의 이번 대규모 M&A 추진은 단순 자금 문제를 넘어 DB그룹 내부의 복잡한 지배구조와 경영권 분쟁 변수와 맞물려 주목된다. 김준기 창업회장과 아들인 김남호 명예회장 간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향후 그룹 지배구조 균형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을 만들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인수 자금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단기 재무 부담은 물론 오너 일가 간 힘겨루기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김 창업회장은 지난 2017년 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가 2021년 미등기 임원으로 복귀했으며, 지난 6월에는 사실상 측근 인사를 그룹 회장으로 앉히며 아들과의 갈등을 노골화했다. 반대로 김 명예회장은 2020년 회장직에 올랐지만 5년 만에 명예회장으로 내려앉으며 입지가 축소됐다. 여기에 최근 수년간 인사권을 둘러싼 두 사람의 불화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포케그라 인수 추진은 경영권 구도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는 계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 창업회장은 최근 DB 지분을 11.61%에서 15.91%까지 늘리며 영향력을 키웠다. 김 명예회장이 보유한 16.83%와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지만, 오너 일가 내부에서 지분 이동이 발생할 경우엔 지배권 또한 급격히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특히 김 명예회장의 누나이자, 김 선대회장과의 사이가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 김주원 DB그룹 부회장의 지분이 9.87%에 달해 향후 지분 연합 구도에 따라 최대주주 지위는 얼마든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과정에서 인수 자금 부담이 맞물리면, 그룹 내 의사결정은 더욱 경직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근에는 계열사 인수로 불거진 순환출자 문제까지 더해지며 사안의 복잡성을 더했다. DB월드건설이 코메랜드(옛 삼동랜드)를 인수하면서 DB 지주사 지분 1.3%(262만 주)가 그룹 내부로 편입돼 순환출자 고리가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DB그룹은 현행 공정거래에 따라 반년 안에 해당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데, 누구에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부자 간 힘의 균형이 달라질 수 있다. DB월드건설은 표면적으로 “사업 시너지를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그룹 경영권 다툼에 직접적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회사 매각 여부 둘러싼 내부 갈등 심화
DB하이텍 매각을 둘러싼 논쟁은 부자 갈등과 맞물린 DB그룹의 의사결정 구조를 단면적으로 드러낸다. 한 축은 그룹의 현금창출원인 반도체 자산을 처분해 재원을 확보하고 금융 계열을 키우자는 구상이고, 다른 축은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더 수확하자며 존속·확대를 주장한다. 이는 곧 자원 배분을 둘러싼 전략 충돌이 단기 재무 지표를 넘어 지배구조 균형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결국 ‘반도체 캐시카우를 유지해 그룹 전반을 지탱할 것인가, 금융 포트폴리오 확대에 자본을 더 배분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는 형국이다.
DB하이텍의 존속·확대를 주장하는 쪽에선 실적 개선을 근거로 제시했다. 올해 2분기 기준 DB하이텍은 2분기 매출 3,374억원(전년비 +13%)을 기록했고, 영업이익 역시 739억원(+10%)으로 호조를 보였다. 8인치(200mm) 기반 전력반도체·DDI 등 레거시 수요를 중국 중심으로 흡수한 결과다. 그러나 처분을 주장하는 쪽에선 증설 지연을 약점으로 지목했다. 실제로 DB하이텍이 2023년 계획한 1,807억원 설비투자는 실제 1,253억원에 그쳤고, 지난해 역시 연간 2,715억 원 계획에서 상반기 집행액이 925억원에 머물렀다.
자회사 재편 역시 논란의 불씨다. DB하이텍이 81.76%를 보유한 DB월드는 올해 5월 부진한 합금철 업체 DB메탈과의 합병을 결정했다. DB메탈은 2022년 매출 6,436억원과 영업이익 1,494억원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공급 과잉 여파로 지난해 순손실 767억원으로 주저앉았고, 공장 가동률은 19.57%까지 떨어졌다. 합병으로 DB메탈의 부채비율은 1,395%→73.9%로 낮아지지만, 상반기 기준 DB하이텍이 DB월드에 890억 원을 수혈한 점과 맞물려 ‘건실한 회사가 그룹 구조조정을 뒷받침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DB그룹은 금융 축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DB그룹은 지난 5월 다올투자증권 2대주주 지분(프레스토 보유분 14.34% 중 9.73%)을 DB손해보험을 통해 확보했고, 한양증권 인수 가능성도 저울질 중이다.동시에 지주사 DB는 장내매수를 통해 DB손해보험 지분을 0.85%까지 늘렸고, DB하이텍도 0.03%를 취득하며 보폭을 넓혔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DB손보의 포테그라 인수는 2조 원대 해외 투자와 반도체·증권 양축 전략, 자본 재편 압력을 한꺼번에 떠안는 선택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