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저출산 해결의 열쇠, 평범한 부모가 될 수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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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저하의 원인은 부모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주거·보육·경력 부담 비교와 경쟁이 교육비를 키우며 전 세계적으로 출산 기피 확산 보육비 완화, 공교육 신뢰 회복, 아빠 육아휴직 확대가 지속 가능한 해법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3년 유럽의 합계출산율은 1.38명으로, 전쟁이나 대공황이 아닌 평시 기준으로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2023년 0.72명에서 2024년 0.75명으로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혼인 증가와 가족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녀를 낳고자 하는 의지는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첫 출산 시기는 늦어지고 추가 출산은 더 미뤄지고 있다. 바람과 실제 출산 사이의 격차가 정책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 간극에는 주거비 부담, 보육 비용, 여성에게 집중된 경력 단절 위험, 그리고 부모 간 비교가 교육 경쟁으로 번지는 구조가 함께 작용한다. 부모 간 경쟁 압박은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부모 커뮤니티와 학교 제도는 이 압박을 과도한 경쟁으로 만들 수도, 공동 학습의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비교가 가족 규모를 제약하는 장치가 아니라 협력의 기반이 되도록 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부모 간 경쟁 압박의 재해석
육아 경험을 SNS에서 공유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맘플루언서(Momfluencer)’ 현상은 부모들 사이의 비교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치원 영어교육부터 고등학교 성적까지 이어지는 비교는 자녀 1인당 교육비 부담을 높여 출산율 하락의 요인이 된다. 그러나 단순한 비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교에서 비롯된 압박은 세 가지 조건이 맞물릴 때 행동으로 이어진다. 인기 학교 주변의 집값 상승, 가계 소득을 잠식하는 보육비, 여성에게 집중된 경력 단절 위험이 그것이다. 이 조건들이 동시에 작동하면 단순한 비교는 곧바로 고비용 경쟁으로 바뀐다.
또한 시점도 중요하다. 학업 경쟁이 본격화되는 것은 청소년기이지만, 부모들의 고민은 영유아기부터 시작된다. 보육비와 조기교육, 출산휴가 이후의 경력 문제를 일찍부터 계산하며 미래 경쟁을 미리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각국 통계 역시 생활 여건이 출산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결국 자녀를 원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지만, 현실적 제약이 커질수록 출산율은 낮아진다.
저출산 흐름과 교육정책
선진국 전반의 추세도 이를 뒷받침한다. EU 출산율은 2023년 1.38명으로 떨어졌고, 출생아 수는 단 1년 만에 5.4% 감소해 1961년 이후 최대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이는 일시적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OECD 통계에서도 평균 출산율은 1.5명 안팎에 머물며, 결혼과 출산 시기 지연, 주택비 상승, 불안정한 초년 경력, 보육과 부모 휴직 제도의 한계가 누적된 결과로 나타났다.

주: 그룹 1-칠레, 한국,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미국(파란색), 그룹 2-호주,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빨간색), 그룹 3-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체코, 독일, 헝가리, 루마니아, 러시아, 슬로바키아, 스위스(초록색), 그룹 4-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그리스, 홍콩, 일본(회색)
복지 선진국인 북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넉넉한 부모 휴직 제도와 저렴한 보육 지원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의 출산율은 2023년 1.40 명으로 떨어졌다.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라는 사회적 압박이 제도적 혜택마저 압도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은 과도한 양육 경쟁의 대표적 사례다. 2023년 출산율은 0.72명까지 추락했고 2024년에도 소폭 반등에 그쳤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6세 이하 아동의 절반이 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학생 수는 줄었지만, 사교육비는 2023~2024년 195억~210억 달러(약 26조~28조원)에 달했다. 정부가 학원 영업시간 제한이나 입시 개편을 시도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공교육이 불안을 덜어주지 못하고 노동시장이 승자독식 구조로 남아 있는 한, 부모들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녀 수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같은 압박은 한국이나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과 북미에서도 과잉 양육 문화가 확산되고 있으며, 부모 중심의 SNS 비교가 불안을 키운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 보고서 역시 부모의 불안이 아동의 생활 만족도와 건강 지표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주: 연도(X축), 자녀 수/출산율(왼쪽 Y축), 국가 비중(오른쪽 Y축)
경쟁에서 협력으로
경쟁을 협력으로 전환하려면 무엇보다 부모들이 겪는 현실적 제약을 줄여야 한다. 보육 시설 이용이 쉽고 순 보육비 부담이 낮을수록 출산을 미루지 않는다. 유럽 연구에서도 보육 환경을 개선하면 첫 출산율이 오르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체 출산율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빠에게 보장된 육아휴직 역시 여성의 경력 불이익을 줄이고 가족계획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런 제도들이 비교와 경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비용을 줄이고 협력을 넓히는 데 기여한다. 모든 아동이 만 4세부터 질 높은 유치원 교육을 받고, 인기 학교 입학이 집값과 무관하게 공정하게 이루어지며, 학교에서 보충학습을 무료로 제공한다면 부모들은 ‘아이를 더 낳으면 뒤처진다’라는 불안을 크게 덜 수 있다.
저출산 대응 교육정책
출산율을 높이려면 부모들이 체감하는 비용과 불안을 줄여야 한다. 생후 18개월부터 누구나 질 높은 보육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소득 수준에 따라 보육비 상한을 정해 중산층 가정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담을 OECD 최고 수준인 5% 안팎으로 낮추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단순히 보육 자리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교사 배치와 교육 내용, 운영시간을 일·가정 양립에 맞게 설계해야 한다.
학교와 주거의 연계도 끊어야 한다. 인기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특정 지역 집값이 치솟으면 다자녀 가정일수록 불리하다. 이를 막으려면 학군을 넓히고 정원을 늘리거나, 과밀 지역에는 추첨제를 도입해야 한다. 단순 성적이 아니라 아동의 발달과 성장 지표를 공개해 비교 압박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거정책 역시 장기 임대나 지분 공유 같은 제도를 통해 중산층 가정이 밀려나지 않도록 보완해야 한다.
사교육 문제를 줄이려면 보충학습을 공교육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 팬데믹 때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학교 기반 튜터링을 정규 프로그램으로 전환해, 교과와 연계된 수업을 무상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 간 격차도 줄일 수 있다.
육아휴직 제도 개편도 시급하다. 많은 나라에서 아빠 휴직 기간이 짧고 급여 보전율이 낮아 실제 사용률이 저조하다. 아빠에게 12~16주의 유급 휴직을 의무적으로 배정하고, 복귀권을 보장해야 한다. 기업별 사용 현황을 공개하는 것도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이 된다.
마지막으로 비교 중심의 교육 문화를 바꿔야 한다. 초등 단계에서는 시험 성적과 반 석차를 없애고, 성장 중심 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의 성취를 서열이 아닌 진전으로 설명해야 한다. 공공 메시지는 상위 10%가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하고, 학부모 정신건강 지원을 강화해 SNS 비교에서 비롯되는 불안을 줄여야 한다.
저출산 해법의 핵심 과제
출산율 하락은 단순히 가족 규모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부모들이 원하지만 실현하지 못하는 간극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다. 이 간극을 줄이려면 높은 보육비, 주거와 학군의 결합, 불평등한 휴직 제도 같은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정책이 부모에게 열정을 낮추라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좋은 부모가 되려는 노력이 곧 추가 출산 포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부모가 평범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가정은 실제 바람대로 움직인다. 비교와 경쟁은 더 이상 분열을 낳지 않고, 공동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저출산 시대에 필요한 지속 가능한 해법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nd the Parenting Arms Race: Low Fertility Education Polic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