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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한 번에 647개 시스템 마비, 반복되는 먹통 사태에 “디지털 정부” 청사진 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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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months 1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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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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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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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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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불편 속출, 취약성 한계 드러나
여야 정쟁 매몰→후속 대책 점검은 소홀
IT 인프라 불신, 국가 안보 위협으로 비화
27일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범정부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주요 조치사항 및 복구 계획을 논의 중이다/사진=국무총리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 화재로 정부 전산망 647개가 동시에 멈춰 서며 ‘디지털 정부’의 취약한 민낯이 드러났다. 정부는 3년 전 카카오 데이터센터 사고 당시 “모든 공공 전산망은 3시간 내 복구가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현실은 나흘째 복구 지연으로 시민들의 불편을 키우고 있다. 클라우드 재해복구 체계를 소홀히 한 점이 핵심 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선 개선책 마련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여야 정쟁에만 몰두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시스템 관리 부실로 인한 구조적 위기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전면적인 재점검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모바일 신분증도 실상은  ‘무늬만 블록체인’

30일 정부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중단된 647개 정보시스템 가운데 이날 13시 기준 89개 시스템이 복구됐다. 이는 전체 복구율 13.7%에 그치는 수준으로, 중요도 1등급으로 분류된 36개 서비스 가운데 절반 이상인 20개 시스템이 여전히 멈춰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24, 모바일 신분증, 나라장터 등 일부 서비스가 재개됐으나, 국민생활과 직결된 행정 절차에는 여전히 지장이 큰 모습이다. 당국은 우선순위를 정해 복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피해 규모가 광범위해 단기간 해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태는 지난 26일 세종시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7-1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가 원인이 됐다. 당시 리튬이온 배터리 교체 과정에서 불이 번졌고, 전산실 주요 장비가 손상되면서 수백 개에 달하는 정부 시스템이 일제히 먹통이 됐다. 완전한 화재 진압까지는 꼬박 이틀 가까이 소요됐으며, 이후 경찰과 소방당국, 리튬전지 전담 수사팀까지 투입됐지만 정확한 발화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화재 직후 전국 공항과 병원 등에선 모바일 신분증 확인이 불가능해 혼란이 벌어졌고, 주민센터에 설치된 무인발급기 또한 멈추면서 업무가 수기로 전환되는 등 시민 불편이 속출했다.

정부는 1등급 시스템을 최우선으로 복구에 착수했다. 행정안전부는 중요 민원 시스템이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문·우편 접수를 병행하도록 지침을 내렸고, 일부 기관은 대체 사이트나 임시 서비스를 운영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 화재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96개 시스템은  대구센터로 이전해 새로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엔 통합보훈, 국민신문고, 국가법령정보센터 등 민원 핵심 서비스들이 다수 포함돼 복구 기간은 최소 4주가 걸린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대구센터 입주기업 협조를 얻어 일정을 단축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장기간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민원 현장에서는 시민들의 불편이 속출했다. 전국 주민센터에서는 수기 접수 혼선으로 신청 서류가 뒤섞이거나 양식 오류가 발생했고, 부동산 거래는 토지대장 발급 차질로 지연됐다. 또 장례 일정은 화장장 예약 시스템 마비로 유족들이 직접 전화를 돌려 빈자리를 확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체국의 경우, 일부 금융·우편 서비스는 재개됐으나 국제특급우편과 쇼핑 등은 여전히 정상화되지 않았다. 

여기에 정부가 “분산 저장으로 안전하다”고 홍보했던 모바일 신분증조차 실제로는 중앙 서버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블록체인 기술 도입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 또한 거세지는 양상이다. 본래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는 여러 노드에 정보를 분산시켜 단일 장애 지점을 제거하는 데 있지만, 실상은 국정자원 서버라는 특정 지점에 중요한 인터페이스를 집중시켜 ‘무늬만 블록체인’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이번 화재는 단일 장애 지점(SPOF)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확인시킨 사건이자, 블록체인의 장점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채 겉모습만 차용한 한국 전자정부 시스템의 취약한 민낯을 드러낸 사례인 셈이다. 

“자리 책임론”반복하며 시스템 보강은 방치

정치권에선 이번 사안을 둘러싼 책임 공방이 뜨겁게 번지는 모습이다. 특히 야당은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을 직접 겨냥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주장대로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을 경질하고 대국민 사과를 하라”고 촉구했으며, 송언석 원내대표 역시 “이번 사태는 전국 647개 시스템이 중단된 재난급 참사로, 2023년 당시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대통령과 장관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고 압박했다. 야당의 비판 논리는 불과 2년 전, 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이 당시 정부를 향해 같은 요구를 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2023년 11월에는 전국 지자체 행정망 ‘새올 시스템’을 비롯해 정부24, 경찰청 문자 발송망, 조달청 나라장터 등 핵심 서비스가 연쇄적으로 중단된 바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이 즉각 대국민 사과해야 하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민 불편이 일주일 이상 이어지고 있음에도 정부는 남 탓과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고 꼬집으며 “모든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지도부 차원에서 정부를 압박하며 행정망 마비를 ‘무능의 결과’로 규정했고, 장관 퇴진 요구 또한 점점 거세졌다. 

당시 행안부는 거센 여론에 밀려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은 국가전산망 마비를 재난 유형에 명시하고, 복구 과정을 매뉴얼화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장애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추진했으며, 네트워크 장비 점검과 로그 분석, 재연 테스트 등 기술적 보강을 검토했다. 아울러 범정부 위기 대응체계 구축, 이중화·백업 시스템 강화, 디지털 인력 확충 등의 중장기 계획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 같은 약속은 제도화·실행 단계에서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했고, 올해 화재 사고와 대규모 전산망 마비를 계기로 그 실패를 낱낱이 드러냈다. 

문제는 이번 사태에서도 정치권이 과거와 똑같은 패턴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야당은 과거 여당의 발언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식으로 공세를 펼치고, 여권은 당장 사태 수습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방어하는 식이다. 그러는 사이 국가 전산망의 구조적 취약성과 근본적 개선 여부를 추적하는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누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는가”라는 공방만이 전면에 부각되고, 시스템 보강과 재난 대응 체계 마련은 다시 뒤로 밀리는 형국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 불편만 심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디지털 정부 전략 재점검 국면

나아가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서비스 불편을 넘어 국가 기능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안보 리스크로 비화했다. 특히 2022년 10월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사고 직후 정부가 “공공 전산망은 실시간 백업으로 3시간 이내 복구 가능”하다고 공언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전산망 마비는 약속과 현실의 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국민들의 관심은 “왜 멈췄나”에서 “멈춰도 즉시 전환·대체가 가능한 구조인가”로 옮겨 갔고, 재해 복구 목표의 신현 가능성과 백업의 효율성, 대체 경로의 상시 준비 수준이 공공 신뢰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핵심 기술 논점은 재해복구 체계의 실제 구현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시스템 대부분이 스토리지 백업이나 서버 복제에 그쳐 물리 인프라가 피해를 입으면 즉시 전환이 곤란한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일반적으로 대체센터가 상시 가동되는 ‘액티브-액티브’ 체계는 응답 지연을 최소화하는 지역 간 네트워크 분산, 애플리케이션 계층의 무정지 페일오버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하지만, 공공 부문은 클라우드 재해복구(DR) 시스템이 취약한 데다 서비스별 전환 시나리오도 충분히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장애 발생 시 업무 처리를 지탱하는 실행 계층과 도메인 주소 변환 서비스, 그리고 인증 체계가 제때 전환되지 않아 전체 복귀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취약성은 단순한 행정 서비스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의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온다. 대규모 사이버 공격이나 전시 상황에서 행정·치안·조달·재정 결제 등 필수 업무망이 연쇄적으로 마비될 경우, 중앙관제와 지역 기능 간 동기화는 중단되고 정부의 지휘 및 통제 능력 또한 약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핵심 인증 모듈과 통합운영 플랫폼, 재난 통신 채널이 동시에 불능이 되면, 의사결정은 지연되고 자원 배분은 정체돼 소위 ‘골든타임’을 상실할 공산이 크다. 이번 사건이 대민 서비스의 단기 혼란을 넘어 전시·비상시 국가 기능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으로 비화한 배경이다. 

아울러 거듭되는 전산망 붕괴 사고는 한국이 오랫동안 내세워온 ‘디지털 정부’와 ‘IT 선진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에도 장기적 손상을 초래할 전망이다. 디지털 행정의 신뢰성은 해외 투자 유치를 비롯해 국제 협력, 기술 표준·솔루션의 수출과 직결되는 전략적 자산인데, 핵심 공공 인프라의 가용성과 재해복구 능력이 지속적으로 흔들리면 그 신뢰도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한다. 예컨대 정부 서비스가 일시 정지하면 전자정부 솔루션 수출 계약의 신뢰성 평가에 부정적 영향이 미치고, 국제 공조에서의 데이터 연동 신뢰성도 약화하는 식이다. 재해 복구 역량과 운영 신뢰성은 국내 경제와 외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인 만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법제적인 조치 또한 요구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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