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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저축은행업계, 지난해에만 5,559억원 순손실
SBI저축은행은 일단 1위 유지, 대손충당금을 제외하면 수익도 유사한 수준
부동산 PF 충격에 업계 불안 높은데, 정작 금융당국은 "괜찮다"
저축은행업계 업황이 거듭 불안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 79개사는 총 5,559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9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저축은행업계 1위 'SBI저축은행'은 지난해 실적에서도 선두 자리를 이었다. 고금리에 따른 조달비용 상승 탓에 업계 전반의 영업 부담을 키웠지만 실질적인 적자의 원인이던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손충당금 폭탄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부진한 업황에 업계 1위 SBI저축은행도 '위태'
1일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SBI저축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891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3,284억원 대비 72.9%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업무이익(충당금적립전 이익)은 9,334억원으로 전년 대비 1.6% 축소되는 데 그쳤다. 다만 충당금이 1년 새 크게 늘면서 당기순이익 급감으로 이어졌다. SBI저축은행의 지난해 충당금 적립액은 8,201억원으로 이 중 8,140억원이 대손충당금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규모인 5,862억원 대비 약 28% 늘어난 수준이다.
주원인으로는 전반적인 업황 악화가 꼽힌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고정이하 일반대출 채권 비중이 증가한 것이다. 저축은행은 일반대출의 고정이하 채권에 대해 20%(기업 동일) 이상, 회수의문의 경우 55%(기업 50%) 이상을 대손충당금으로 쌓아야 하고, 추정손실의 경우 100% 이상으로 쌓아야 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OK·한국투자·웰컴·애큐온저축은행 등 자산 규모 상위 5개 저축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1,311억원으로 전년 동기 6,980억원 대비 81.2%나 급감했다. 저축은행별로 보면 OK저축은행은 711억원으로 48.7%, 웰컴저축은행은 302억원으로 67.7%, 한국투자저축은행은 40억원으로 95.0% 감소했으며, 애큐온저축은행의 경우 63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저축은행이 부진한 건 앞선 고금리 기조와 부동산 PF 대출 부실 등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확충 등이 원인이다. 실제 상위 5개 저축은행의 이자비용은 2조350억원으로 2022년 1조1,115억원 대비 83.1% 급증했다. 동기간 충당금은 총 1조7,140억원을 적립해 전년 대비 19% 급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저축은행의 영업수익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업무이익도 후퇴했다. 업무이익은 1조8,827억원으로 전년 대비 18.4% 줄었다.
은행의 총여신 중 회수에 문제가 생긴 여신 보유 수준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비율도 악화됐다. SBI저축은행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5.92%로 2022년 2.65% 대비 3.33%p 상승했고, 동기간 한국투자저축은행은 5.91%·3.36%p, 웰컴저축은행 7.77%·1.52%p, 애큐온저축은행 6.74%·2.79%p씩 올랐다. 연체대출비율도 악화됐다. 지난해 SBI저축은행의 연체채권비율은 4.91%로 2022년 2.03% 대비 2.88%p 상승했다. 이외 OK저축은행은 6.86%로 1.93%p, 한국투자저축은행 5.14%로 2.37%p, 웰컴저축은행은 5.75%로 2.23%p, 애큐온저축은행 5.09%로 2.23%p 각각 올랐다.
체면 지킨 SBI저축은행, "PF 폭탄 비껴나간 덕"
다만 SBI저축은행의 경우 여전히 선두 자리를 유지하면서 체면을 지켰다. 대손충당금 자체는 늘었지만 지난해 저축은행업계 적자의 핵심인 부동산 PF 충당금 부담은 거의 없었던 게 주효했단 평가다. 현재 SBI저축은행은 사실상 부동산 PF 대출을 취급하고 있지 않다. 금융권에 따르면 SBI저축은행의 지난해 부동산 PF 대출채권은 1,147억원으로 총자산 대비 약 0.7%에 불과하다.
저축은행감독규정에 따라 SBI저축은행이 지난해 실행할 수 있었던 부동산 PF 대출한도는 2조4,461억원이다. 한도 대비 4.6%만 대출을 실행했다는 의미다. 1,147억원 중 379억원은 정상, 765억원은 요주의로 분류됐다. 고정이하 대출채권도 3억원에 불과했고,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 역시 0.27%에 그쳤다.
SBI저축은행이 부동산 PF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이유는 과거의 행보에서 찾을 수 있다. 2011년 저축은행 당시 SBI홀딩스가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인수해 사명을 변경한 게 SBI저축은행이다. SBI홀딩스는 이후 기존의 현대스위스1·현대스위스2·현대스위스3저축은행 등 계열사도 모두 흡수해 하나로 통합했는데, 통합 후 부실화된 부동산 PF 대출이 정상화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1조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한 뒤에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수준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부침 아래 자연스럽게 부동산 PF 대출 확대 불가 기조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 SBI저축은행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SBI저축은행은 저축은행 사태 이후 신규 부동산 PF 대출을 전혀 늘리지 않았다. 현재 가지고 있는 대출채권은 과거 현대스위스저축은행 인수 때 함께 넘겨받은 것이다.
대손충당금을 제외하면 수익도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 SBI저축은행은 지난해 순수영업력을 나타내는 충당금적립전영업이익(충전이익)에서 9,334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9,495억원) 대비 1.69% 정도 감소한 수준이다. 사실상 유사한 수치를 유지한 셈이다. 충전이익은 이자이익과 비이자이익 합산 값에 일반관리비를 제외한 수치로, 일회성 매각익이나 충당금 환입 같은 요소를 제외해서 경상적인 수익 창출력을 대표하는 지표로 꼽힌다.
금융당국 "PF 부실 영향 크지 않다" vs 시장 "악화 일로"
한편 금융당국은 PF 사업장 부실의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한국은행은 "PF 연체율이 상승한 점 등에 비춰 PF 상버장 관련 리스크가 다소 증대된 건 사실이나, 사업장별 평가 결과 시공사를 통한 PF 사업장의 부실 확산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자체적으로 PF 사업장 부실이 크게 확산되는 예외적 상황을 가정해 시나리오별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에서도 금융기관의 자본 적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악화우려'로 분류된 사업장과 신규 평가에서 '고위험' 평가를 받은 사업장의 익스포저 전체가 부실화되면서 추정손실로 분류될 경우에도 모든 업권의 평균 자본비율은 규제 기준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위험 PF 사업장 부실로 시공사에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면서 여타 PF 사업장들의 익스포저까지 부실화되는 경우에도 업권별 평균자본비율은 모든 업권에서 규제비율 이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가라앉아 있다. 저축은행업계 업황이 거듭 악화하면서다. 조만간 '위기'가 닥칠 수 있단 비관론도 적지 않다. 실제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 79개사는 총 5,559억원의 순손실을 내면서 9년 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지주 계열 저축은행들의 순손실 합계는 2,717억원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는 규모다. 건전성 지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연체율이 10%를 넘는 저축은행이 14개사에 달했고,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이 30%를 넘어선 곳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시장 일각에선 저축은행업계, 나아가 새마을금고에까지 M&A가 몰아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순손실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존립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금융당국도 행동에 나서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은 올해에도 저축은행들의 연체율 상승세가 이어졌을 것으로 보고 이번 달 중순께 올해 1분기 말 연체율이 나오면 현장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금융감독원 차원에선 예금보험공사, 새마을금고중앙회 등과 함께 오는 8일부터 약 2주간 새마을금고에 대한 현장 검사를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