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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사 종신보험 내놓은 KDB생명, 역마진 우려에도 '강행'
재무구조 개선 나섰지만, "조 단위 자본 확충 규모는 부담"
무심사 상품 판매에도 우려 쏟아져, "지나친 무리수 둔 셈"
KDB생명이 무심사 종신보험 상품의 판매를 재개하고 나섰다. 무심사 상품을 기반으로 영업 활성화를 이루고, 나아가 가치를 제고하겠단 취지다. 다만 문제는 무심사 종신보험 상품이 실질적인 기업 가치 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KDB생명은 당장의 역마진은 고려하지 않은 채 사업을 강행하고 있는데, 이것이 손실로 잡히기 시작하면 결국 M&A 시장에서 '자충수'로 작용할 거라는 게 업계의 주된 의견이다.
KDB생명, '무심사 종신보험' 판매 재개 나섰다
3일 업계에 따르면 KDB생명은 이달 들어 '무심사 우리모두 버팀목 종신보험'의 판매를 재개했다. 해당 상품은 지난 2월 출시했다 일주일도 안 돼 상품 재조정을 이유로 판매를 중단하며 구설에 오른 바 있다. 환급률 126%에 고령자, 유병자 등에 대해서도 인수심사(언더라이팅)를 생략했다는 점에서 역마진 우려도 나왔다. 이 같은 종신보험 재판매 행보는 신회계제도로 보험계약마진(CSM) 확보가 중요해지며 보장성보험 판매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KDB생명의 선택지가 많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신계약금액에 비해 효력상실 및 해약계약 금액이 2022년에 이어 지난해도 더 많아진 영향으로 보유계약이 점점 줄어들며 위기의식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에 KDB생명은 올해는 무심사 상품을 기반으로 영업 활성화에 앞장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소비자에게 보험 가입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다양한 고객 확보로 영업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보험업계에선 종신보험임에도 병력 여부와 병원 방문 이력을 따지지 않고 인수한다는 내용을 두고 고객의 역선택을 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5년납 상품의 경우 10년 시점 환급률이 126.2%로 높게 측정되며 종신보험을 가장한 저축성 보험이 아니냐는 말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 상품이 출시될 당시 대부분의 보험사가 금융감독원의 현장점검 직후 130%대에 이르던 환급률을 120%대로 낮춘 상황"이라며 "KDB생명이 환급률을 돋보이도록 설정해 영업현장에 절판 마케팅을 유도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매각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무리수를 둔 것 아닌가 하는 게 대체적인 시선"이라고 덧붙였다.
KDB생명 청산 방침 정한 산은, "재무구조 개선에 힘 쏟을 것"
그간 산업은행은 KDB생명 매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지난달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KDB생명 지분 95.7%를 보유한 사모펀드(PEF) KDB칸서스밸류사모투자전문회사를 청산하겠단 방침을 정했다. 이 펀드는 2010년 산은이 칸서스자산운용과 함께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호생명(현 KDB생명)을 인수할 때 조성된 것이다. 칸서스자산운용도 큰 틀에서 산은과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펀드 출자자(LP)인 국민연금과 코리안리 등도 당장 KDB생명을 매각하더라도 제값을 받고 팔기 쉽지 않고, 조성 15년 차를 맞은 펀드를 더 이상 연장하기 어려운 만큼 펀드 청산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KDB생명 매각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 산은은 지난 2010년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KDB생명을 인수한 뒤 2014년부터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해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나금융지주가 실사 후 인수를 포기했고, 올 초엔 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에 매각을 추진했으나 이 역시 무산됐다. 이처럼 매각에 번번이 실패한 데는 KDB생명의 지급여력비율(K-ICS)을 비롯해 총자산수익률(ROA) 등 수익성 측면에서 생명보험업계 평균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영향으 크다.
KDB생명이 발표한 2023년 결산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40억원으로 전년 대비 571억원 줄었다. ROA는 0.13%로 전년 대비 반토막 수준이고, K-ICS비율은 3분기 기준 경과조치를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134.05%를 기록하며 생보업계에서 유일하게 금융감독원 권고치인 150%를 넘지 못했다. 경과조치를 적용하지 않았을 때 K-ICS비율은 47.7%까지 떨어지며 자본적정성에 의구심을 품게 만들기도 했다. 4분기 수치는 이달 중으로 확정될 예정이지만 현재로서는 눈에 띌 정도로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산은은 KDB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한 뒤 우선 재무구조 개선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무심사 상품을 꺼내든 것도 이와 관련이 깊은 행보다.
그러나 무심사 상품이 KDB생명의 가치를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엔 업계의 의견이 갈린다. 애초 KDB생명이 무심사 상품을 이번에 처음 꺼내든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KDB생명의 전신인 금호생명 시절 이미 무심사 상품은 출시된 바 있다. 당시 금호생명은 1년 넘는 시간 동안 상품 개발에 힘써 손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막상 출시 이후엔 예상과 달리 보험금 청구가 많아지자 결국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판매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맞이하게 됐다. 이에 대해 한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금호생명이 판매했을 당시에는 부담보 기간이나 역선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던 것으로 안다"며 "상품 출시 후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설계사들이 대학병원 중환자실을 돌아다니며 영업했다는 얘기도 들렸다"고 전했다.
노력하곤 있지만, "무심사 상품은 가치 제고에 큰 도움 안 돼"
KDB생명은 이번엔 문제가 없을 거라는 입장이다. 금호생명 때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질병 사망의 경우 면책 기간을 3년으로 설정하고 연령 제한 및 가입 금액 조정으로 만약의 경우에도 회사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이내로 보험금 규모를 책정했기에 이변이 발생하기 힘들단 것이다.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판매 재개 전후 달라진 점이다.
KDB생명은 해당 상품에서 여성은 조건의 변화 없이 연령도 50~75세를 유지했으나 남성의 경우 최대 가입연령을 75세에서 68세로 낮췄다. 환급률도 126%에서 119%로 소폭 하향했고, 위험 등급 1등급에 해당하는 고객의 경우 가입 금액을 500만원까지로 제한하기도 했다. KDB생명 관계자는 "상품설명서 및 안내 자료 등에 무심사보험 특성을 반영한 주의사항을 필수적으로 기재하겠다"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언더라이팅 단계에서 보험 계약 무효조항 대상자의 선별을 강화하고 판매 후에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KDB생명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무심사 상품이 막상 가치 제고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보험사 M&A에서 원매자들이 가장 꺼리는 매물 중 하나가 적자가 나는 보험사다. 새로운 회계기준 하에선 미래에 들어올 이익을 가정하고 이를 분기에 반영하는 식으로 손익을 인식하는데, 적자가 난다는 건 이번 분기 영업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팔아놓은 보험 상품에서 적자가 나타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매자들이 수개월에 걸쳐 실사를 진행하고도 인수를 포기하는 사례가 나오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KDB생명의 무심사 종신보험 판매는 자충수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더군다나 KDB생명은 지금만 해도 정상화를 위해 최대 1조원의 추가적인 자본 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앞서 하나금융지주가 인수 의사를 접은 것도 조 단위의 추가 자금 투입이 필요하단 사실을 파악한 탓이 크다. 결국 KDB생명이 꿈꾸는 가치 제고 청사진은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