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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은행 이자순이익 34조2,000억원 쓸어 담아
수익성 개선 견인한 기업대출, 차후 '독배' 될 가능성
전 세계서 급증하는 기업 파산, 은행 부실 리스크 커져
지난해 은행들의 이자순이익(수익-비용)이 13년 만에 최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기업대출이 급증하고, 예대금리차가 확대됨에 따라 수익성이 대폭 개선된 것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지금껏 이자 수익 확대를 견인해 온 기업대출이 금리 인하 이후에는 은행권 전반의 비용 부담을 가중하는 '족쇄'로 변모할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은행권 이자 수익 급증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의 이자순이익 규모는 34조2,000억원에 육박했다. 이는 2010년 이후 금리 상승기(2010~2011년, 2017~2018년, 2021~2024년) 중 최대 수준이다. 이에 따라 2021년 이후 은행권 총이익(이자이익+비이자이익) 내 이자이익 비중은 장기 평균치인 87.8%를 훌쩍 웃도는 93%까지 치솟았다.
은행들의 이자순이익이 증가한 것은 이번 금리 상승기(2021~2024년)에 기업대출이 눈에 띄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고금리로 채권시장 전반이 얼어붙은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한 기업들의 영업자금 확보 수요가 은행대출로 몰린 결과다. 실제 한은 분석에 따르면 통상 금리 상승기에는 기업대출(연평균 28조5,000억원)의 증가 폭이 가계대출(26조9,000억원)을 크게 웃도는 경향을 보인다.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예대금리차 확대 역시 은행의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 국내은행이 취급하는 대출은 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반면, 예금은 요구불예금 등 이자 비용이 적은 상품이 대부분이다. 기준금리가 상승하면 자연히 예대금리차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의미다. 실제 최근 은행권의 신규취급액 기준 예대금리차(2021년 2분기~2024년 1분기)는 38bp(1bp=0.01%포인트) 확대된 바 있다.
상승기 끝나면 '부실 리스크' 확대 우려
다만 한국은행은 이번 금리 상승기에 이자 수익 확대를 견인했던 기업대출이 향후 은행권의 비용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 금리 국면을 살펴보면 상승기의 기업대출 증가 폭이 클수록 상승기가 지난 후 수익성 악화 흐름이 뚜렷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더해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한 대출 부실 리스크 역시 은행권의 비용 증가 위험을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 등 22개 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건설업종 대출채권 규모는 42조4,755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39조1,989억원) 대비 8.4% 증가한 수준이다. 문제는 대출 규모가 늘어날수록 은행권의 부실 리스크 역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로 인해 건설사들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하면서 차입금 상환 여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1분기 말 기준 5대 은행이 건설업체에 내준 대출에서 발생한 고정이하여신은 총 4,8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4.5% 늘었다. 금융사들은 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분류하는데, 이 중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대출을 통틀어 고정이하여신이라 칭한다.
글로벌 시장 휩쓴 '파산 공포'
주목할 만한 부분은 글로벌 은행권 전반이 기업대출로 인한 부실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각국 산업계에서 경영 위기를 견디지 못해 파산을 택하는 기업들이 급증하면서다. 지난해 말 파이낸셜타임스(FT)가 각국 통계청과 법원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해 1~9월 미국의 기업 파산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0% 급증했다.
같은 기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에서도 파산한 기업 수가 전년 대비 13% 많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8년 만에 최고치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선 무려 25%의 증가율이 확인됐다. 독일 연방통계청(데스티타스)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매달 전년 대비 두 자릿수의 증가율이 지속해서 관찰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밖에도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등의 파산 기업 수 역시 30% 이상 증가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컨설팅 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닐 시어링(Neil Shearin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정부 지원금으로 회생할 수 있었던 '좀비 기업'들이 고금리 시대를 맞아 한계에 내몰린 영향”이라며 “에너지 집약 산업에선 비용 부담이 한층 커졌고, 교통‧서비스 등 노동 집약적 산업에서도 높은 파산율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