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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된 투자심리에 높은 이자율 감수
곳곳에서 드러난 유동성 위기 여파
상장 기대감에 단기자금 구조 유지

SK에코플랜트가 올해만 두 번째 회사채 발행에 나서면서 단기 자금 조달에 의존하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발행된 채권 대부분이 2년 이하 단기물이라는 점에서 높은 금리를 감수하면서도 장기물은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조달 방식은 건설업 불황과 SK그룹의 전반적인 유동성 부족, 계열사 간 느슨한 연결 구조 등 복합적 요인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시장은 SK에코플랜트가 기업공개(IPO)를 유일한 출구로 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이 같은 노력이 실제 재무 정상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 시각이 주를 이룬다.
신용등급 하락 우려에 우발채무 증가세까지
1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에코플랜트는 이날 1,300억원 규모 공모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만기 구조는 △1년물 300억원 △1.5년물 400억원 △2년물 600억원이다. 최종 발행일은 이달 25일이며, 발행 주관사는 SK증권과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대신증권,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등 6곳이 맡았다. SK에코플랜트는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2,600억원까지 증액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금리 밴드는 개별 민간채권평가사 평가금리와 비교해 –30bp(1bp=0.01%P)~150bp로 넓게 잡았다. 앞서 SK에코플랜트는 지난 2월에도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하면서 동일한 금리 밴드를 제시한 바 있다. 당시 SK에코플랜트는 9,88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목표치를 채웠다. 비우량 건설채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있었지만, HL디앤아이한라 등 같은 등급(A-)의 건설사들이 잇따라 완판에 성공하며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덕분이다.
그러나 최근 시장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우량등급과 비우량등급 간 수요 차별화가 커지는 가운데 이달 동일한 등급의 CJ CGV가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매각되는 등 투자자들은 보수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나아가 시장에서는 SK에코플랜트의 등급 하락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는 분위기다. 등급이 한단계만 더 떨어지면, SK에코플랜트는 BBB로 분류돼 하이일드 채권이 된다. 원리금 상환에 대한 불이행 위험이 높은 만큼 이자율도 높은 하이일드 채권은 정상채권과 부실채권의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이 SK에코플랜트의 등급 하향을 점치는 배경에는 수익성 악화와 차입 부담 확대라는 악재가 자리하고 있다. 올해 1분기 SK에코플랜트의 연결기준 영업이익률은 2.2%로 전년 동기 대비 0.5%p 하락했다. 폐기물 처리 단가 회복이 지연된 데다 공사 원가 상승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상황에서 1분기 말 연결기준 순차입금 규모는 약 5조5,000억원으로, 지난 2020년 말(4,000억원)과 비교해 무려 1,275% 급증했다.
여기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가 증가세를 타고 있는 것도 부담 요인이다. 김웅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SK에코플랜트는 최근 자금보충의 형태로 민간개발사업 관련 신용공여규모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짚으며 “책임준공의무가 제공된 일부 현장에서 낮은 분양률을 기록하면서 공사채권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 및 자체자금 투입과 관련한 리스크가 공존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SK에코플랜트가 2년 이하 단기물 위주로 만기 구조를 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래 수익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채권 시장에서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이에 따라 높은 금리를 감수하더라도 만기가 짧은 단기채 중심으로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회사에 대한 시장 불신과 신용등급 하락 우려가 겹치는 가운데, 투자자들이 일종의 ‘프리미엄’ 없이 회사채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점에서 SK에코플랜트의 자금 조달 환경은 녹록지 않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일관된 평가다.
“수익구조 개선 없는 돌려막기” 비판도
SK에코플랜트는 이번 자금 조달을 통해 2022년 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업 테스(現 SK테스)를 인수할 당시 메리츠증권이 투자한 자금을 상환한다는 계획이다. 당시 회사는 메리츠증권을 재무적투자자(FI)로 확보하며 약 4,000억원을 투자받았고, 이를 통해 브릿지론 일부를 상환했다. 메리츠증권은 이자를 현금이 아닌 향후 채권이나 주식 등으로 받기로 했으며, 이를 모두 포함한 SK에코플랜트의 상환 금액은 약 5,000억원에 달한다. 만기는 오는 10월로, 금리 부담이 큰 만큼 연장보다 상환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SK에코플랜트는 일차적으로 고금리 부채를 상환해 재무비용 부담을 덜고, 이를 통해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최소화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번 회사채 발행도 결국 새로운 차입으로 이전 부채를 갚는 방식인 만큼 실질적인 재무구조 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최근 발행한 채권 대부분이 단기물이라는 점에서 “단기 생존을 위한 돌려막기 수단에 가깝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높은 금리와 짧은 만기의 조달 구조는 기업의 내실 회복보다 재무 불안 해소를 단기적으로 지연시키는 데 불과하다는 게 이들 비판론자의 지적이다.
실제 SK에코플랜트의 재무 상황 악화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일례로 회사는 지난해 말 대대적인 권고사직을 단행했다. 같은 해 10월 전체 임원 가운데 23%를 감축한 데 이어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도 구조조정을 진행한 것이다. 재무 상황이 압박받는 가운데 인건비를 포함한 고정비 절감을 위해 선택된 조치로, 시장에선 이를 유동성 위기가 표면화된 결과로 해석했다. 다만 이 같은 조치가 중장기적으로는 조직 안정성과 사업 지속 가능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뚜렷한 해법으로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IPO 성사 여부가 생존 분기점
여러 비판의 목소리 속에서 SK에코플랜트가 단기채 중심의 조달 구조를 이어가고 있는 배경에는 기업공개(IPO)에 대한 강한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IPO를 통해 대규모 자본을 끌어오고, 이를 기반으로 재무구조를 정상화하겠다는 시나리오다. 건설업 불황과 그룹의 지원 여력 부족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출구가 IPO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SK에코플랜트는 자금 조달은 물론 조직 정비, 비상장 자회사 정리 등 일련의 작업을 모두 상장을 전제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SK머티리얼즈 산하 자회사 △SK트리켐 △SK레조낙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 등 4개 소재 기업을 연내 편입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과 반도체 인프라 설계·조달·시공(EPC) 구축 노하우를 기반으로 SK에어플러스(산업용 가스), 에센코어(반도체 모듈), SK테스(리사이클링) 등 기존 포트폴리오에 더해 반도체 소재 부문까지 확장해 반도체 종합 서비스 밸류체인을 갖춘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IPO를 둘러싼 외부 여건이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SK에코플랜트의 수주잔고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익률 역시 낮아 흥행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건설업 전반의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단순히 성장 스토리만으로 기관투자자의 주목을 받기는 어렵다는 게 시장 전반의 시각이다. 게다가 ESG 사업 중심으로의 체질 개선 역시 실적 회복과는 연결되지 않고 있어 상장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짙게 만든다.
환경사업 자회사 매각을 통한 포트폴리오 슬림화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재 매각 대상은 리뉴원(폐기물 소각·매립)과 리뉴어스(종합 폐기물 처리) 두 곳으로, SK에코플랜트 측은 두 회사를 패키지 형태로 2조원 내외에 매각하길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예비입찰에 참여한 KKR은 1조5,000억원 수준의 가격을 고수하면서 매각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환경 하자에 대한 책임을 SK 측이 부담해야 한다는 조항을 요구 중이다. 사실상 유일한 인수 후보로 꼽히는 KKR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SK에코플랜트는 매각 지연에 따른 부담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