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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본격화, 합병 비율 1:1.19 수준
SK E&S 기업가치 곤두박질, RCPS 투자자 KKR 움직임은?
양사 경영진은 "KKR과 기존 투자 관계 유지하겠다"
SK그룹의 양대 에너지 중간지주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합병을 단행한다. 양 사의 합병 비율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1 대 1.19 수준에서 책정된 가운데, 시장의 이목은 SK E&S의 RCPS(상환전환우선주) 투자자인 사모펀드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움직임에 집중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안건 의결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지난 17일 서울 서린동 SK서린빌딩에서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합병 안건을 의결했다. 통합법인은 다음 달 27일로 예정된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오는 11월 1일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양 사 합병 비율은 SK이노베이션 1 대 SK E&S 1.1917417로 산출됐다.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은 합병 신주를 발행해 SK E&S 지분을 사실상 100% 보유한 SK㈜에 4,976만9,267주를 교부한다. SK이노베이션 최대주주인 SK㈜의 지분율은 기존 36.22%에서 합병 후 55.9%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 사는 이날 공시를 통해 합병 목적에 대해 "양 사 에너지 사업과 인적·물적 역량 통합을 통해 현재와 미래 에너지 산업 밸류체인 전반을 아우르는 사업 구조를 구축하고,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익 구조 구축과 미래 에너지 사업의 성장 동력을 확보해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제고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과 자회사 SK온이 진행해 온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열관리 시스템 등의 사업을 SK E&S의 △분산전원 △수소 △에너지 솔루션 사업 등과 결합, 신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양 사의 합병은 에너지 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한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혁신”이라면서 “이번 합병을 통해 현재부터 미래까지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을 선도하는 ‘토탈 에너지&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추형욱 SK E&S 사장은 "양 사 모두 기존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미래 에너지 핵심 사업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합병을 통한 시너지를 바탕으로 기존 4대 핵심 사업 중심 그린 포트폴리오를 고도화, 미래 에너지 시장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자금 유출 걱정이네" KKR의 상환권 행사 가능성
양 사의 합병 작업에 속도가 붙은 가운데, 업계는 SK E&S의 RCPS 투자자인 KKR의 '선택'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SK E&S는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RCPS를 발행, KKR로부터 총 3조1,350억원 규모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RCPS는 만기 시 투자금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환권과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을 포함한 개념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양 사가 1 대 2 수준의 합병 비율 설정 등을 통해 KKR 측에 유리한 조건을 부여, 보통주 전환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은 1 대 1.19로 결정됐다. SK이노베이션 소액주주를 설득하기 위해 시장 예상보다 SK E&S의 가치를 저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17일 합병 공시를 통해 "합병 완료 전까지 RCPS를 SK E&S의 발행 주식에서 소멸시킬 예정이며, 합병 비율 역시 RCPS의 소멸을 전제로 산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전환가액 하락에 불만을 가진 KKR이 상환 청구에 나서며 SK E&S에서 대규모 현금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왔다. 실제 KKR이 SK E&S RCPS에 투자할 당시 13조6,000억원 수준이었던 SK E&S 기업가치는 이번 합병 과정에서 6조2,000억원까지 고꾸라졌다. 만약 KKR이 합병 기일 전 상환권을 행사할 경우, SK E&S는 연내로 약 3조9,000억원 내외의 상환 의무를 짊어져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합병에 대한 시장 전망
이에 일각에서는 이들 기업이 SK E&S 산하의 도시가스 자회사를 KKR에 현물 상환하는 방식으로 RCPS 소멸에 나설 수 있다는 예측도 제기된다. SK E&S가 발행한 RCPS의 기초자산은 강원도시가스, 영남에너지서비스, 코원에너지서비스, 전북에너지서비스, 전남도시가스, 충청도시가스, 부산도시가스 등 SK E&S가 지분 100%를 보유한 도시가스사업 관련 자회사 7곳이다. SK E&S는 현금 또는 해당 기초자산으로 RCPS를 상환할 수 있다.
KKR 입장에서도 이 같은 상환 방식은 득이 될 수 있다. SK E&S는 도시가스 시장 점유율이 22.7%에 달하는 1위 사업자로, 지난해 도시가스사업으로 5조1,892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 평가기관인 한영회계법인이 산출한 7개 도시가스 회사의 장부상 가치는 1조4,600억원 수준이고, 현금흐름할인법으로 추산한 지분가치는 3조6,457억원이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애초 KKR은 단기 차익보다는 안정적인 도시가스 사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SK E&S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KKR 입장에서는) 투자금을 현금으로 상환받는 대신 SK E&S의 수익성을 책임지는 '알짜 사업'을 넘겨받는 게 오히려 이득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SK E&S는 이런 의혹을 일축하는 모습이다. 18일 진행된 양 사 경영진의 합병 관련 간담회에서 추형욱 SK E&S 사장은 "(KKR과의 투자 관계는)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건기 SK E&S 재무본부장도 "기존 발행 취지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KKR과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협의 중"이라며 "(RCPS는) 합병 법인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경영진이 직접 나서 KKR과 투자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SK E&S가 KKR과 협의해 RCPS를 소멸시킨 뒤, 합병 법인 출범 이후 RCPS를 재발행해 기존과 동일한 조건으로 투자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 이 경우 기존에 SK E&S가 온전히 책임지던 RCPS의 재무적 부담이 SK이노베이션에 전가된다. 기존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의 합병에 대한 불만이 한층 가중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