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스팸 메시지 뿌린 리딩방 운영팀장, 약 1,600억원 피해 발생
투자 리딩방 사기 횡행하는데, 금융 당국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생활 보호 원칙에 가로막힌 사전 대응,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
전 국민을 상대로 주식 스팸 문자 메시지 2,320만 건을 뿌린 리딩방 운영팀장이 구속됐다. 스팸 문자로 매수세가 유입된 해당 종목은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되면서 시가총액 기준 총 1,600억원가량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 스팸 메시지 유포한 피의자 구속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날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대량의 주식 스팸 문자 메시지를 유포한 피의자 A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리딩방 업체 운영팀장으로 B사 주식의 주가 부양을 위해 허위 또는 근거 없는 호재성 풍문이 담긴 주식 스팸 문자 메시지 약 2,320만 건을 대량 살포했다. 문자 메시지는 불법적으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통해 발송됐으며, A씨가 취득한 부당이익은 17억원에 달한다.
스팸 문제 메시지를 통해 호재성 풍문이 전달된 주식 종목은 대량의 매수세가 유입됐으나 직후 감사보고서 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에 시가총액상 약 1,600억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금감원은 파악하고 있다.
매년 불어나는 리딩방 피해액, '물타기'에 넘어가는 투자자들
고수익을 미끼로 한 리딩방 투자 사기 피해는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까지 경찰이 집계한 리딩방 투자 피해자 수만 9,360명에 달하며, 이들이 리딩방 투자 사기로 당한 피해 금액은 2,400억원이 넘는다. 금감원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유사투자사업자의 불법 행위도 최근 5년간 814건에 이르렀다. 여기에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투자 리딩방 사기가 활력을 잃지 않는 건, 투자 리딩방에 소위 '혹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서다. 리딩방 투자 사기는 허위 수익 인증을 통해 투자자들의 환심을 사는 데서 출발한다. 소액 투자로 얼마간 돈을 벌게 해 더 큰 돈을 투자하도록 유도한 뒤 유료 사이트와 채팅방을 없애고 잠적하는 식이다. 리딩방 운영자가 특정 종목을 먼저 매수한 뒤 회원들에게 따라 사도록 하고 허위사실 유포 등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린 후 매도해 수익을 챙기는 방법도 빈번하게 사용된다. 이른바 선행매매다. 일부 리당방에선 상장 예정이 없는 비상장 기업이 조만간 상장할 것처럼 거래소 문서를 위조해 큰 수익이 날 것이란 기대감을 투자자들에게 심어 주기도 한다.
리딩방 운영자의 이 같은 '물타기' 수법에 넘어간 투자자들은 이후 리딩방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 혹은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단 일말의 기대감에 자신의 자금을 의탁하게 된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의심은 '오랫동안 주식시장에 있었던 전문가인 만큼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비싼 회비로 회원을 모집했을 것이다' 등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애써 외면하려 한다. 결국 주식 시장에 대한 지식 함양이나 이해 없이 큰 수익만을 좇는 소극적 개미들의 허점이 투자 리딩방 운영자들에 의해 꿰뚫린 셈이다.
구멍 뚫린 규제책, 인력상 한계도 뚜렷
법률상 허점도 크다. 투자 리딩방 운영자들은 대부분 카카오 오픈 채팅이나 텔레그램을 비롯한 익명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비대면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한다. 이용자가 당국 등에 신고·제보할 경우 일명 '방폭(메시지 방을 폐쇄)'을 하고 계정명만 바꿔 새 방을 만들면 쉽게 처벌 위험을 피해 갈 수 있다.
반면 금융 당국은 현행 규정·구조상 '사후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투자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조사·처벌에 돌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리딩방을 비롯한 유사투자자문업 영업·운영이 개인 간 사적 대화를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생활 보호를 엄격히 해야만 하는 당국 입장에서 불법 행위 증거를 확보한 내부자의 제보 없이 조사나 제재에 나서는 건 사실상 어렵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인력상 한계 역시 뚜렷하다. 지금 당장 카카오톡 오픈 채팅에 '주식'을 검색하기만 해도 수많은 방이 나오는 형국이다. 금융 당국으로선 이 오픈 채팅방이 단순히 불특정 다수가 모여 섹터·종목 관련 정보를 나누고 토론하는 '스터디방'인지 종목 매수를 유도해 주가를 띄우려는 '리딩방'인지 알 방도가 없다. 이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이들 방에 전부 가입해 일정 기간 대화를 모니터링해야 하는데, 막상 금감원의 유사투자자문업자 모니터링 인원수는 5명이 채 안 되는 상황이다. 리딩방 투자 사기를 모두 관리하기엔 제도상으로도 인력상으로도 여력이 부족하단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