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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리스크 혼란에 부각된 AI 신사업 부진, 카카오 주가도 하락세
자회사 실적도 악화, 영업이익 기대치도 1,563억원→1,359억원
차세대 AI 모델 공개한 네이버, 반면 카카오 'Ko-GPT 2.0' 공개는 불투명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하면서 카카오의 미래 전략에 먹구름이 꼈다. 사법 리스크에 따른 혼란으로 AI 등 신사업 부진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업계에선 카카오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던 네이버가 카카오를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가 AI 모델 공개를 미룬 반면 네이버는 이미 자체 AI를 활용한 B2B(기업간거래) 솔루션까지 공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카카오 사법 리스크 장기화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 장대규)는 지난 9일 김 위원장을 소환해 20시간이 넘는 고강도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은 카카오가 지난 2월 총 2,400억원을 동원해 SM엔터테인먼트 주식을 장내 매집, 총 553회에 걸쳐 고가 매수하는 등 시세조종을 자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이브는 당시 주당 12만원에 SM엔터 주식을 공개 매수하려 했지만 주가가 급증하자 매수에 실패했고, 이 직후 카카오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 주식을 대량 확보해 최대 주주에 올랐다.
시세조종 혐의와 관련한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다. 최근 카카오 임원(배재현 전 투자총괄대표)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은 "지난해 2월10일(하이브의 공개매수 첫날) 배재현 대표가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회장과의 통화에서 SM 주식 1,000억원어치를 사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아시아가 SM 주식을 사들인 뒤 주가가 하락하자 지 회장이 불만을 토로했는데, 이때 배 대표가 브라이언(김 위원장이 영어 이름)의 컨펌이 났으니 걱정 말라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아직 무엇을 '컨펌'했는지 명확하지 않아 증언에 법적 효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검찰은 이 증언을 바탕으로 암묵적 동의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이 외에도 더 있다. 가맹택시사업을 하는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 분식회계 의혹, 카카오엔터의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시장에선 해당 사법 리스크가 온전히 해소되려면 최소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에 대법원까지 이어지면 기간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더군다나 재판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나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의 혐의가 최종 확정될 경우 카카오의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은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사법 리스크가 전방위를 감싸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카카오의 주가도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카카오는 16일 기준 전 거래일 대비 2.39%(-1,000원) 내린 4만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 고점 대비 31%가량 내리며 지난해 10월 52주 신저가(3만7,300원)까지 약 13% 정도만 남겨둔 상태다. 증권가 역시 카카오의 목표 주가를 일제히 낮췄다. 대신증권이 6만8,000원에서 6만원으로 낮춘 데 이어 한화투자증권도 6만500원에서 6만원으로 내렸다. KB증권(6만9,000원→5만8,000원), 메리츠증권(5만6,000원→5만1,000원), NH투자증권(6만5,000원→5만6,000원), 한국투자증권(6만8,000원→5만원) 등 또한 조정에 나섰다.
자회사 실적 부진, AI 신사업도 '부재'
사법 리스크 해소에 성공하더라도 카카오의 미래 전망은 밝지 않다. 자회사의 실적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탓이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엔가이드에 의하면 카카오의 2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 전망치(최근 3개월간 증권사에서 발표한 전망치의 평균값)는 각각 2조551억원, 1,359억원으로 예측됐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0.62%, 19.78% 늘어난 수치지만, 3개월 전 영업이익 전망치인 1,563억원은 하회하는 수준이다. 카카오에 대한 이익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단 의미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 관계자는 "페이와 모빌리티를 제외하면 전 사업부가 성장 둔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며 "게임즈 매출도 감소했고 SM 인수효과 제거로 뮤직 부문 성장률도 3% 둔화했다. 매출액이 크게 늘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I 산업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도 카카오의 아킬레스건이다. 물론 카카오가 AI 사업에 투자하지 않은 건 아니다.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지난 2017년 AI 연구·개발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을 설립한 뒤 유상증자로만 총 2,214억원의 자금을 해당 자회사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카카오브레인은 일정한 수익을 내지 못했고, 결국 2022년, 2023년 각각 301억원, 75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각각 53억원, 86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카카오는 결국 카카오브레인의 △언어모델 △칼로(Karlo) △톡채널 △멀티모달(MM)사업부와 사업부의 자산·부채 등을 마이너스(-) 8억원에 양수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브레인 내 AI 인력은 모두 본사 AI 전담 조직인 카나나로 이동했고, 카카오브레인은 생성형 AI로 흉부 엑스레이 사진의 판독문 초안을 작성하는 '카라CXR' 사업 하나만을 남기게 됐다. AI 자회사로서의 카카오브레인은 공중 분해된 셈이다.
카카오의 AI 미래 전략도 생명력이 다한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처음 선보인 '칼로 AI 프로필' 서비스는 내년 7월께 종료될 예정이고, 대규모언어모델(LLM) '코(Ko)-GPT 2.0' 공개도 거듭 미뤄지고 있다. 지난해 자체 생성형 AI를 발표하겠다고 한 지 1년이 흘렀음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코-GPT" 개발을 이끈 김일두 카카오브레인 대표는 지난달 이미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의 AI 신사업 전략은 사실상 실패했단 의미다.
하이퍼클로바X 공개한 네이버, 카카오와의 경쟁에서 우위 점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카카오가 네이버에 밀리기 시작했다는 언급이 쏟아진다. 카카오가 제 길을 찾지 못하는 사이 네이버는 자체 모델을 기반으로 AI 생태계를 꾸릴 준비를 마친 상태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작점은 거의 같았다. 두 기업은 모두 지난해 연초 다양한 채널을 통해 초대규모 AI 모델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생성형 AI를 구동하는 LLM을 한국 시장에 맞는 형태로 개발해 챗GPT와의 기술 경쟁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겠단 취지였다.
이후 네이버는 지난해 2월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데뷰(DEVIEW) 2023'에서 네이버클라우드가 개발 중인 차세대 초대규모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HyperCLOVE X)'의 전반적인 구상을 공개했고, 같은 해 8월 24일 '단(DAN) 23' 콘퍼런스에서 실제 AI 모델의 모습을 공개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의 공개와 동시에 ‘클로바X’(CLOVA X)의 베타(시험)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지난해 9월엔 생성형 AI 검색 '큐:(Cue:)'의 베타 서비스도 시작했다. 카카오가 Ko-GPT 2.0 공개를 지속해서 미룬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네이버는 AI 반도체 확보를 위한 협력사 모색에도 적극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최수연 대표는 AI 반도체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엔비디아를 만나 '소버린 AI' 등에 대해 논의를 나눴다. 소버린 AI란 자주, 주권을 뜻하는 '소버린(sovereign)'과 AI를 합친 말로, 자국 데이터와 인프라로 역량을 갖춰 지역 언어 및 문화, 가치관 등을 반영한 LLM을 기반으로 만든 AI 서비스를 뜻한다. 자사의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할 당시 '한국 특화형 AI'를 강조한 만큼 소버린 AI 구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협력을 타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네이버가 IT 기술력을 기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단 점도 눈에 띈다. 앞서 지난해 10월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활용한 B2B 사업 솔루션을 공개했다. 고객사가 AI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도록 컴퓨팅 자원·기술·플랫폼 등 모든 영역을 제공하는 ‘풀 스택’ 상품을 꾸린 것이다. 이외 기존의 '뉴로클라우드'에 하이퍼클로바X를 결합해 클라우드 서비스의 보안성을 강화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서비스'를 공개하기도 했다. AI를 활용한 미래 사업 구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 네이버와 카카오 간 라이벌 구도가 사실상 깨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