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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만 소수 지분 4.8조원어치 매입 AI 활용한 증강현실(AR) 기능 안경에 접목 스마트글라스 시장 선점 노린 선제적 대응

최근 막대한 조건을 제시하며 인공지능(AI) 인재들을 쓸어 담고 있는 메타플랫폼이 세계 최대 안경 제조업체이자 레이밴(Ray-Ban) 모회사인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의 지분 일부를 인수했다. 이는 단순한 협업을 넘어 유통망·기술력·브랜드를 포괄하는 전방위적 결합으로 해석된다. 차세대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빠르게 성장 중인 AI 스마트글라스 사업을 강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가다.
메타, 협업에서 지분 인수로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메타는 최근 에실로룩소티카 지분 약 3%를 35억 달러(약 4조8,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다. 메타는 향후 지분 투자 규모를 5%까지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의 지분 투자 소식에 에실로룩소티카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가격은 주당 148달러(약 20만원)로 6.9% 상승했다. 지난 4월 9일 이후 장중 최대 상승폭이다.
메타가 안경업체에 거액을 투자한 건 AI를 활용한 증강현실(AR) 기능을 안경에 접목해 정보단말화 하는 AI 스마트글라스 시장을 주도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번 거래는 메타가 AI 사업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중에 이뤄졌다. 메타는 최근 AI 부문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AI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스마트글라스는 이러한 전략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메타는 에실로룩소티카와 협력해 2021년부터 카메라와 스피커가 장착된 레이밴 스마트글라스를 선보였으며, 지난달에는 오클리 브랜드로 AI 스마트글라스를 출시하며 기술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메타는 지난해 9월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마이크로 렌즈가 장착돼 3차원(3D) 이미지 투사를 통해 홀로그램의 AR 기능이 구현되는 AR 스마트글라스 ‘오라이언(Orion)’ 시제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에실로룩소티카, 글로벌 브랜드·정밀 기술력 모두 보유
그간 메타는 경쟁 기업들이 만든 스마트폰 등의 기기를 통해 자사 앱과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스마트글라스를 통해 메타가 직접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유통망까지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왔다. 이번 투자를 통해 메타는 하드웨어 제조 기술력을 강화하고 전 세계 유통 네트워크를 확보해 스마트글라스 상용화에 한 걸음 다가설 것으로 기대된다. 에실로룩소티카의 경우 메타의 스마트글라스 투자가 성과를 내면 테크 업계에서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메타가 에실로룩소티카에 주목한 건 패션과 카메라 기술을 아우르는 확장 가능성으로 요약된다. 에실로룩소티카는 세계적인 선글라스 브랜드인 레이밴과 오클리(Oakley) 등을 보유한 기업으로, 지난 2017년 프랑스 렌즈 제조업체인 에실로(Essilor)와 이탈리아 안경 제조업체 룩소티카(Luxottica)의 합병을 통해 탄생했다.
합병 이후 에실로룩소티카는 2022년 이스라엘 청각 기술 스타트업 누앙스 히어링(Nuance Hearing)을 인수해 음향 빔포밍 기술이 장착된 안경을 개발했다. 이듬해에는 의료 기술 분야 진출의 일환으로 안과 수술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독일 회사인 하이델베르그 엔지니어링(Heidelberg Engineering) 지분 80%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광학기기 전문기업 니콘(Nikon)의 지분도 5.1% 보유하고 있다. 에실로룩소티카는 니콘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영상 장비 시장에서의 전략적 성장을 지원·도모한다는 포부다.
슈프림 인수로 패션 영역까지 확장
나아가 에실로룩소티카는 아이웨어를 패션 아이템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유명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는 것을 넘어 지난해 미국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슈프림(Supreme)을 VF코퍼레이션(VF Corporation)으로부터 15억 달러(약 2조원)에 인수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그간 에실로룩소티카는 아르마니, 프라다와 같은 명품 브랜드의 오랜 아이웨어 파트너사로 수십 년 간 함께 해 왔지만, 아이웨어 외 패션 브랜드를 소유한 적은 없다.
이 때문에 에실로룩소티카는 아이웨어 분야에서 브랜드 확장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몽클레르와 디젤과 같은 회사와 새로운 라이선스 계약은 계속 체결하고 있었으나, 핵심 브랜드인 오클리나 레이밴을 뛰어넘을 만큼의 파괴력 있는 브랜드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에실로룩소티카는 슈프림이라는 브랜드와 로고가 주는 매력에 주목했다. 선글라스 같은 아이템에서 성공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에실로룩소티카는 국내에서는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를 운영하는 아이아이컴바인드의 2대 주주기도 하다.
이처럼 메타가 에실로룩소티카 지분을 인수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상존한다. 먼저 에실로룩소티카가 보유한 자체 브랜드 및 라이선스는 메타가 추구하는 ‘웨어러블의 일상화’를 위해 필수적인 패션 경쟁력을 내재화하는 경로다. 메타의 하드웨어가 기술적 진보를 이루더라도, 소비자의 일상에 스며들지 않는다면 시장 확장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술 측면에서도 에실로룩소티카는 정밀한 렌즈 기술력과 안광학 센서 개발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다. 특히 스마트글라스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초소형 카메라, AR 디스플레이, 시선 추적 시스템 등에 필요한 정밀 광학 요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파트너를 메타가 탐색해 온 점을 감안하면, 에실로룩소티카의 존재는 단순한 제조 파트너 그 이상이라는 평가다.
실제 에실로룩소티카의 최대 강점은 렌즈, 안경테 제조부터 판매, 유통까지 거의 모든 아이웨어 부분을 수직계열화한 것이다. 에실로 등 렌즈 기업을 포함해 렌즈크래프터, 펄비전, 선글라스헛 등의 유통 체인, 아이메드라는 눈 건강보험사까지 보유하고 있다. 클리어리, 아이바이다이렉트, 프레임스다이렉트닷컴 등 아이웨어 전문 온라인 쇼핑몰도 있다. 이런 에실로룩소티카에 러브콜을 보내는 기업은 메타 만이 아니다. 구글 역시 에실로룩소티카 경영진에게 향후 스마트 안경에 자사의 AI 어시스턴트인 제미나이를 탑재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