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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급락한 두산그룹 3사,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줄었다.
두산에너빌리티 2대 주주 국민연금이 사업 재편에 '키' 될 듯
청구 규모 한도 초과 시 사업 재편 취소, 일각선 '강행할 것'이란 의견 나오기도
두산그룹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절차에 적신호가 켜졌다. 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이 도래할 때까지 주가가 반등하지 못하면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물량이 대거 나와 합병 성사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두산그룹은 우선 국민연금의 동향에 시선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사업 재편 계획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 3사 주가 하락세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떨어졌다. 6일 기준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는 1만6,870원이었는데, 이는 매수예정가 2만890원에 80% 수준이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는 각각 3만4,950원과 6만3,400원에 마감했다. 이는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의 69%와 78%에 불과한 정도다. 그나마 이날 국내 증시가 반등하며 주가가 일부 회복됐지만, 여전히 주식매수청구권 가격보단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모양새다.
이에 증권가에선 주가 급락 사태에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 계획이 무산될 수 있단 의견이 나온다. 주식매수청구권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단 것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이란 회사의 합병·영업양도 등 주주의 이익과 중대한 관계가 있는 법정 사항에 대해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는 경우 해당 결의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신 소유의 주식을 공정한 가격으로 매수할 것을 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현재 두산그룹 3사가 공시한 주식매수청구권 한도는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이 각각 6,000억원, 5,000억원, 1조5,000억원이다. 만일 주주들의 매수청구가 쏟아져 예정된 한도를 넘어서면 두산그룹은 합병 계약을 해제하거나 합병 조건을 변경해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사업 재편에 변수
증권가에선 두산그룹 주주의 다수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가가 급락하고 있는 데다, 애초 이번 합병 공시가 나올 때부터 포괄적 주식교환 과정에서의 기업가치 산정 기준을 두고 논란이 많았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을 둘러싼 리스크가 그만큼 커졌단 뜻이다.
이 중 특히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건 두산에너빌리티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 계획이 급격히 꼬일 수 있어서다. 현재 국민연금이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은 4,341만9,037주로 지분율이 6.78%에 달한다. 이 지분에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인 2만890원을 대입해 계산해 보면 국민연금이 청구할 수 있는 대금은 9,070억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는 것만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한도 6,000억원이 훌쩍 넘을 수 있단 것이다.
국민연금 측은 아직 두산그룹 사업 재편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증권가에선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기업 합병을 무산시킨 전례가 이미 있어서다. 앞서 지난 2014년 국민연금은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에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해당 기업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의 83%, 93%까지 떨어진 탓이다. 두산그룹 3사의 주가 하락세가 이어질 경우 두산그룹에도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여지가 충분히 있단 의미다.
리스크 가시화 수순, 두산그룹 합병 계획 철회할까
두산그룹 측은 우선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한도를 넘어설 경우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사업 재편 계획을 전면 취소하겠단 방침을 밝혔다. 주식매수청구권이 한도를 초과하면 그룹 재무 구조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두산그룹 3사의 현금성 자산은 주식매수청구권 한도에 못 미치는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별도 기준 두산에너빌리티의 현금성 자산은 4,852억원이며,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은 1분기 말 기준 각각 3,668억원, 244억원 수준이다. 과도한 매수 청구에 따라 현금 유출이 심화하면 재무 건전성에 악영향이 미쳐 기업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무리하게 사업 재편을 이루기엔 부담이 지나치게 큰 상황인 셈이다.
다만 일각에선 두산그룹이 매수 청구를 감안하고 사업 재편 강행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주식매수청구권 한도 도달에 따른 계약 해제는 의무 조항이 아닌 만큼,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의지에 따라 합병이 진행될 수도 있단 것이다.
함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 중이던 SK와 한화의 동향이 나쁘지 않단 점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는다. SK는 최근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추진 중이다. 이때 SK이노베이션의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은 11만1,943원, 주가는 8일 기준 9만6,300원으로 시세 차익이 약 11% 수준에 머물렀다. 시세 차익 규모가 20~30%대에 이르는 두산그룹 3사보다 양호한 정도다.
한화의 경우 주가가 하락하면서 오히려 개편 작업을 진행하기가 용이해졌단 평가를 받았다. 앞서 한화는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을 공개매수하는 방식으로 지배구조 재편을 진행했지만,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저조한 참여로 목표의 65%를 달성하는 데 그쳐서다. 그런데 최근 주가가 하락하면서 한화에너지와 한화가 지분을 매입하기 유리한 조건이 마련됐다. 주가가 낮을 때 지분을 매입하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증시의 급등락이 지배구조 재편 작업에 일정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사업 재편 강행 여부를 둘러싼 두산그룹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