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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급증세에 정책대출 금리 최대 0.4%p 인상, 대출 죄기 본격화 수순
대출 억제책 두고 부화뇌동한 정부, '2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 시기 미루기도
기준금리 인하에 유보적 입장 확산, 가계대출 및 집값 상승 등 리스크 여전
가계대출 급증세가 거듭 이어지자 정부가 대출 죄기에 나섰다. 서민들의 주택 구입과 전세 대출을 돕는 '디딤돌(구입)·버팀목(전세) 대출' 금리를 최대 0.4%p까지 올린 것이다. 정책성 대출이 가계대출 증가에 '불쏘시개' 역할을 해온 만큼 이를 정상화하겠단 취지다.
정책대출 금리 인상, 가계대출 증가 흐름 막는다
16일 국토교통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주택도시기금의 대출금리와 시중금리 간 적정한 차이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디딤돌·버팀목 대출금리를 0.2∼0.4%p 인상하는 안을 시행키로 했다. 기존 금리 2.15∼3.55%에서 2.35∼3.95%까지 올리겠단 것이다. 주택 구입자금 대출인 디딤돌 대출은 부부 합산 연 소득 8,500만원 이하인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지원되는 상품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적용되는 금리도 높아진다. 이외 부부 합산 연 소득 5,000만원 이하(2자녀 가구인 경우 6,000만원 이하, 신혼부부인 경우는 7,500만원 이하 등) 무주택자에게 연 1.5∼2.9% 금리로 전세자금을 빌려주는 버팀목 대출금리도 연 1.7∼3.3%로 인상하기로 했다.
정부가 두 정책대출 상품의 금리를 인상한 건 부동산 공급 대책만으로 최근 서울 중심 집값 상승세를 가라앉히기 어렵고 가계부채 관리도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3개월 새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중 정책대출 상품이 차지한 비중은 60%에 달했고, 디딤돌 대출은 올해 상반기 집행 실적이 15조원으로 지난해 상반기(8조2,000억원)의 두 배에 이르렀다. 이번 대출금리 인상을 통해 최근 급증한 가계대출 흐름을 잡겠단 게 정부의 최종 목표로 풀이된다.
다만 지난 1월 도입된 신생아특례대출과 전세사기 피해자 등에 대한 대출금리는 유지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국가적 위기인 저출생 목적으로 신설된 데다 2년 이내 출산이라는 제한적인 조건으로, 상반기 공급액 중 신생아 특례 비중은 약 14% 수준”이라고 금리 조정을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방향성은 뚜렷한데, "시기가 너무 늦었다"
정부의 대출금리 인상 방책에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책의 목적과 방향성을 드디어 뚜렷하게 정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문제는 정부 정책이 발표된 시기가 다소 늦었단 점이다. 그간 정부는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지속 노출해 왔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월 대출 한도를 더 줄이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시행을 타진한 바 있다. 스트레스 DSR은 향후 금리가 급등할 위험을 미리 반영해 실제 대출 금리에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산정하는 제도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는 대출자가 변동금리를 선택하면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대출 한도를 줄이는 것이다.
가산 금리를 적용하면 대출자가 갚아야 하는 연간 이자가 늘어난다. 이에 따라 DSR 비율을 맞추려면 대출 한도를 줄여야 한다. 매월 갚는 원금 규모를 축소해야 늘어난 이자 폭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스트레스 DSR을 단번에 적용할 경우 강한 충격이 예상돼 적용 업권과 대출 종류에 따라 도입 시기를 단계적으로 구분했다. 지난 2월 26일부터 은행권 주담대에 먼저 적용했고, 가산 금리 적용 비율은 올해 상반기 25%, 하반기 50%를 적용하겠단 계획이다. 이는 정책 시행만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대출 한도를 줄여 주택 매수세를 잡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6월께 정부는 2단계 스트레스 DSR에 대한 갑작스러운 시행 연기 소식을 알렸다. 본격적인 규제 시행을 단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대출이 줄어드는 차주가 약 15% 정도로 분석돼 이분들의 어려움을 고려했다"며 나름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시장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규제 시행 연기가 '더 늦기 전에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라'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단 이유에서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의지가 사실상 없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가계대출은 또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장의 우려대로 '집을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이 확산한 영향이다. 당시 가계대출의 월별 증가 폭을 보면 △4월 5조원 △5월 6조원 △6월 5조9,000억원 △7월 5조5,000억원 수준이다. 사실상 정부가 가계대출 조장을 방치한 것을 넘어 조장까지 한 셈이다. 이번 대출금리 인상 방안 역시 '늦었다'는 평가를 받는 원인이다.
가계부채가 피벗에 '족쇄' 됐다
이렇다 보니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하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모양새다. 당장 오는 22일 기준금리 결정 기한이 다가오는 가운데, 여전히 가계부채와 집값 상승이 피벗(통화정책 기조 전환)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한은이 지난달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며 '인하 검토'를 공식화하면서도 시기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인 이유다.
한은은 가계부채와 집값 상승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서 물가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미 연방준비위원회가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공식화한 뒤 열린 시장 상황 점검회의에서도 이 총재는 "미 연준이 피벗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그 시기와 폭은 불확실하다"며 "(우리는) 금융안정 리스크가 상존하고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 대선 관련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어 이에 대해 면밀히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전문가들도 "8.8 부동산 대책 등으로 기준금리 인하의 명분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것이 실제 금리 인하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결국 정부의 늑장 대출금리 인상이 내주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란 분석이다. 가계부채와 집값, 환율 등 금융·외환시장 불안이 여전한 상황에서 한은이 미국에 앞서 선제적으로 피벗을 결정하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바로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엔 리스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단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