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티메프 사태에 리스크 확산, 큐익스프레스 PEF 연합 보통주 전환 논의 시작
큐텐 사례에 힘 입어 RCPS·CB 등 보호 장치 마련된 투자 방식 선호도 높아지나
CB 발행 이후 회사 매각 실패한 왓챠, "CB 상환에 투입할 자금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
티몬·위메프(티메프)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가 확산하는 가운데 큐텐그룹 핵심 계열사 큐익스프레스의 사모펀드(PEF) 연합이 '구영배 대표 지우기'에 나섰다. 티메프 리스크가 큐익스프레스까지 뻗치기 전 전환사채(CB)와 교환사채(EB)를 보통주로 전환해 최대 주주로 올라서겠다는 게 PEF 연합의 계획이다. 이 같은 추세에 시장에선 당분간 투자자 사이에서 안전장치가 마련된 투자 방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련의 사태를 거치며 투자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어서다.
큐익스프레스 FI, 전환권 행사 여부 논의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큐익스프레스의 일부 재무적 투자자(FI)들은 전환권 행사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 현재 큐익스프레스의 주주 및 채권단 구성은 상당히 복잡하다. 우선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이하 크레센도)가 2019년 큐익스프레스의 한국 자회사 우선주 600억원어치를 샀고, 2021년엔 크레센도와 캑터스PE-산은PE가 각각 500억원을 투자해 큐익스프레스 CB를 인수했다. 당시 큐익스프레스는 CB를 판 돈으로 코차이나로지스틱스 인수 대금을 치렀다.
또 2021년 스톤아시아와 메티스톤PE도 500억원 규모의 큐텐 EB를 샀고, 이 과정에서 EB를 큐익스프레스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다. 상환 순위는 크레센도와 캑터스PE-산은PE가 보유한 CB가 가장 앞서고 그다음이 크레센도의 우선주며, 코스톤아시아와 메티스톤PE가 보유하게 될 보통주가 가장 후순위다.
현재로서 큐익스프레스의 최대 주주는 큐텐(65.8%)과 구 대표(29.3%)다. 여기서 FI들이 모두 전환권을 행사하면, 대주주는 이들 연합으로 바뀔 전망이다. 먼저 크레센도의 경우 우선주를 보통주로 바꾸면 지분율이 34.2%에 육박하게 된다. 크레센도의 CB, 캑터스PE-산은PE의 CB를 전환하면 지분을 각각 7%씩 보유하게 되고, 코스톤아시아·메티스톤이 보유한 큐텐 EB를 큐익스프레스 보통주로 바꾸면 약 20%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FI의 지분율이 60%를 넘게 되는 셈이다.
티메프 사태로 리스크 부각, '보호 장치' 선호도 높아질 듯
이처럼 큐익스프레스 FI들이 구 대표 영향력 지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구 대표의 큐텐그룹과 큐익스프레스의 기업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여기에 티몬과 위메프 등 e커머스업체와 달리 물류회사인 큐익스프레스는 독자적인 물류사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큐텐그룹 일감에서 비롯된 매출이 전체의 30% 수준인 만큼 사실상 독립해 빠져나가도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선 큐익스프레스 사례를 두고 '구 대표와 FI가 체결한 투자 계약상 트리거가 발동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통상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계열사 회생이나 대표이사의 중대한 과실, 긴급한 경영상 위기 상황 시 전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며 "티메프 사태가 발생하면서 계약 조건이 발동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벤처캐피탈(VC) 등이 보통주보다 상환전환우선주(RCPS)나 CB 등 보호 장치가 마련된 투자 방식을 더 선호하는 이유가 이번 사태를 통해 가시화했단 의견도 있다. 티메프 사태로 투자에 대한 리스크가 더욱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에 앞으로도 투자자 차원의 안전장치 요청이 이어질 여지가 커졌다는 업계의 평가가 나온다.
왓챠에 큐익스프레스 사례까지, 고민 깊어진 투자자·기업들
통상 VC의 투자 방식은 크게 보통주와 우선주로 나뉜다. 보통주는 주식시장에서 거래되고 주식 1주당 1표의 의결권을 갖는, 말 그대로의 일반적인 보통 주식이다. 반면 우선주는 보통주보다 우선순위를 갖는 주식이다. 이익 배당이나 잔여재산을 분배할 때 보통주보다 먼저 가져갈 수 있단 것이다.
우선주에 상환권과 전환권 옵션을 추가한 것이 바로 RCPS다. 전환권은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 VC가 스타트업에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며, 전환권은 다른 종류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다. 상환권이 있으면 투자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주식 보유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전환권이 있으면 보통주 전환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CB는 사채권자에게 전환 기간 내 약속한 전환 조건에 따라 사채 발행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다. 전환권 행사 이전엔 확정이자를 받을 수 있는 사채로 존재하고 행사 이후엔 사채 소멸시킨 뒤 회사의 영업실적에 따른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주식으로 전환하는 식이다. CB의 경우 이자수익을 보장받으면서도 큰 배당이익과 주식 매각차익까지 노릴 수 있어 VC들이 선호한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보통주 투자를 받는 게 더 유리하지만, 상대적으로 갑의 관계에 있는 VC는 투자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RCPS와 CB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실례로 국내 OTT 플랫폼 왓챠의 경우 지난 2021년 CB를 발행해 약 490억원을 조달한 바 있다. 당시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와 VC 인라이트벤처스 등이 자금을 댄 것으로 확인됐으며, CB 발행 과정에서 몸값 3,380억원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왓챠는 전략의 일환이던 CB 발행으로 인해 향후 기업 전략에 한계를 맞았다. 지난 2022년 왓챠는 LG유플러스에 회사를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400억원 규모의 왓챠 신주를 인수해 최대 주주에 오르는 방안이 주로 논의됐다. 그러나 여기서 CB가 걸림돌이 됐다. 일반적으로 CB 보유사들은 대주주가 바뀌면 상환 요청에 나서게 마련이다. 왓챠가 LG유플러스의 투자를 받는다고 해도 CB 상환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인데, 이는 LG유플러스 입장에서 직접적인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왓챠와 큐익스프레스 사례가 연달아 이어진 만큼, 투자 유형에 대한 투자자와 기업의 고민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