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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다국적 기업 '세금 회피' 행태 조사 돌입
넷플릭스·구글·나이키 등 수천억 벌고도 법인세 '쥐꼬리'
외무감사·공시의무 없는 유한책임회사로 바꿔 조세 포탈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의 세금 회피 행태를 조사하기 위해 세무 당국이 칼을 빼 들었다. 넷플릭스,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서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도 ‘쥐꼬리’ 법인세를 낸다는 비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국세청, 넷플릭스코리아 본사 세무조사 진행
26일 세무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최근 서울 공평동 소재 넷플릭스코리아 본사에 직원들을 파견해 세무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넷플릭스는 한국 내 매출원가를 부풀려 법인세를 적게 납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는 감사보고서에서 지난해 매출 8,233억원, 영업이익 121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는데, 국세청은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올린 매출 중 상당액을 미국 본사로 보내는 방식으로 이익을 축소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구독 멤버십 구매 대가로 미국 본사로 보낸 돈은 6,644억원으로 작년 전체 매출의 81%에 달했다.
그 결과 넷플릭스가 지난해 한국에 납부한 법인세는 13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매출 대비 0.16% 수준으로, 같은 기간 네이버가 납부한 법인세 4,963억원이 매출의 5.1%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교화 넷플릭스코리아 정책 법무 총괄 전무는 “넷플릭스코리아는 (본사의) 구독 멤버십을 한국에서 재판매하는 회사여서 이익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법인세는) 관련 세법과 국제조세원칙에 입각해서 납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세청이 이 같은 회계방식을 사실상 세금을 회피하는 것으로 간주해 추징금을 부과했는데도 넷플릭스가 이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지난 2021년 국세청으로부터 조세회피 혐의로 800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으나 이에 불복, 이 중 780억원을 되돌려 달라며 지난해 조세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익 낮춰 법인세 축소 ‘꼼수’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다국적기업의 탈세 논란은 넷플릭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글코리아 역시 지난해 3,654억원 매출에 법인세 155억원을 납부했다. 매출의 3.1%에 불과하다. 구글코리아는 한국에서 발생한 앱마켓 수익을 싱가포르에 있는 구글아시아퍼시픽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줄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 단위 매출을 올리면서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2조49억원 매출을 올린 나이키코리아는 법인세를 불과 86억원 납부했고, 한국맥도날드는 무려 1조1,18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음에도 법인세는 0원이었다.
대규모 법인세를 피하려고 세무조사를 거부하며 버티다가 소액의 과태료만 내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A사는 국세청의 자료 제출 요구를 92차례나 거부했지만 2,0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연매출 수조원을 올리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 B사도 국내에서 번 돈 대부분을 해외 본사에 로열티 명목으로 송금했지만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이 역시 처벌은 과태료 수천만원에 불과했다.
최근 3년간 국세청이 자료 제출을 거부한 기업에 부과한 과태료는 44건, 평균 614만원에 그친다. 과세 당국이 처벌을 강하게 하려 해도 현행법상 자료 제출 기피에 대한 과태료가 매출 규모와 상관없이 최대 5,000만원까지인 데다 한 건의 세무조사에는 과태료를 중복 부과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탓이다. 이렇다 보니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한국 과세 당국에 협조하지 않는 게 세금 덜 내는 비법이라는 말까지 나돈다.
회사형태 바꿔 감사 피하고 본사에 거액 송금
전문가들은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 회피가 가능했던 배경 중 하나로 유한책임회사를 지목한다. 외부감사와 공시의무가 없는 유한책임회사로 바꾸고 소득을 해외 본사로 이전하는 등 매출을 축소해 법인세 납부를 피해 왔다는 것이다. 지난 2021년 이 같은 방식으로 탈세를 자행한 외국계 기업이 세무조사를 통해 대거 적발되기도 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외국계 대기업 C사는 외부감사와 공시의무가 없는 유한회사로 설립돼 운영 중이었으나, 2019년 관련 법 개정으로 감사가 의무화되자 외부감사가 필요 없는 유한책임회사로 형태를 변경했다. 당시 법이 개정되면서 매출액 500억원 이상의 유한회사는 외부 감사 대상이 됐지만 유한책임회사는 제외됐기 때문이다. C사는 해외 본사와 경영자문료 계약을 맺고 거액을 지급해 국내 회사를 적자 상태로 만들었으며, 해외 관계사에서 받아야 할 돈을 받지 않고도 뚜렷한 이유 없이 지원을 계속하는 등 부당한 내부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D사는 탈세를 목적으로 조세 회피처에 인적·물적 시설이 없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국내 오픈마켓 판매 매출액을 국외에 있는 페이퍼컴퍼니가 판매한 것처럼 허위 계약서를 작성하고 매출 신고를 누락했다. 뿐만 아니라 서비스 판권을 페이퍼컴퍼니에 이전한 후 국외 사용자들이 지불한 요금을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받아 은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당시 국세청은 D사에 법인세 등 수백억원을 추징하고 관련 법에 따라 조세 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