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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낮은 실업률에도 ‘높지 않은’ 임금 상승률
임시직 고용 증가가 정규직 임금 상승 둔화 요인
‘노조, 최저 임금법’ 등 약할수록 ‘임시직 대체 효과’ 뚜렷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최근 유럽에서는 실업률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임금이 그다지 상승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해, 실업률이 떨어지면 임금이 오른다는 전통적인 임금 필립스 곡선(wage Phillips curve)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비자발적 임시직 고용의 역할이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해당 연구는 정규직 일자리를 원하는 임시직 노동자들의 증가가 ‘구직자 위주 시장’에서도 임금 상승률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이 현상은 특히 ‘임금 책정 장치’(wage-setting institutions, 노조, 최저 임금법 등 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 및 법규)가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노동 시장 분석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로 판단된다.
유럽, 낮은 실업률에도 임금 “빠르게 안 올라”
지난 세기, 실업률이 줄어들면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한다는 필립스 곡선이 현실과 맞지 않을 때가 많아 경제학자들과 정책 결정자들을 의문에 빠뜨려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노동 시장 주체들의 역할이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유럽 노동 시장은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실업률은 최근 수년간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내려갔고 임금은 가파르게 올랐다 여기까지는 한동안 현실과 맞지 않았던 필립스 곡선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재 유럽은 낮은 실업률에도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는 상황으로 반전했다. 여기에는 경기 침체 초기를 맞아 공식적인 실업률 감소와 다르게 임시직 노동자들의 해고가 활발히 일어나는 또 다른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실업률과 임금 상승률 간 설명되지 않는 상관관계에도 임시직 노동자들의 존재가 있다.
임시직 늘면 정규직과 경쟁 심화로 임금 상승 억제 효과
루카스 레너(Lukas Lehner) 에든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 조교수, 폴 램스코글러(Paul Ramskogler) 오에스터라이체 국립은행(Oesterreichische Nationalbank) 이코노미스트, 알렉산드라 리델(Aleksandra Riedl) 동 은행 이코노미스트로 구성된 연구진은 2004~17년 기간 유럽 30개국을 대상으로 한 분석을 통해 비자발적 임시직 고용자들이 실업률과 비슷하게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정규적 노동자들과의 경쟁을 유발한다는 것인데 이 현상은 특히 강력한 ‘임금 책정 장치’가 없는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등의 국가에서 눈에 띄게 나타났다.
임시직 고용은 전통적으로 정규직 고용으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 들어 많은 임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진출이 불가능함을 깨닫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서 임시직이 사실상 정규직의 대체재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정규직 임금 상승을 막고 있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내부자-외부자 고용 이론(insider–outsider model)을 정면으로 반박하는데, 해당 이론은 내부자인 정규직이 노조의 역할에 힘입어 외부자인 비정규직과의 임금 경쟁에서 보호된다고 주장해 왔다. 노조가 없는 임시직 노동자가 노동 시장 변화의 충격을 먼저 흡수해 정규직 보호는 물론 높은 임금까지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편에 서 있는 경쟁 효과(competition effect) 이론은 임시직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정규직 진출을 시도해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고 정규직 임금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연구진은 임금 필립스 곡선에 임시직 고용자 데이터를 추가하면 현재 노동 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정확히 규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노조 존재감 없을수록 비정규직 ‘경쟁 효과’ 더 커
여기서 ‘임금 책정 장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북유럽, 오스트리아와 같이 포괄적 임금 협상 제도와 강력한 노조가 있는 국가들에서는 경쟁 효과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노조-기업 간 단체 협상으로 임시직 노동자들의 임금 영향력이 배제되는 것이다. 반대로 ‘임금 책정 장치’가 발달하지 못한 국가들에서는 임시직과의 경쟁이 정규직 임금에 높은 영향을 미치는 불안정한 노동 환경이 조성된다.
연구진은 이제 임시직 노동자들이 축구의 ‘벤치 멤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 정규직 임금에 사실상의 실업률과 비슷한 작용을 한다고 설명한다. 임시직 노동자들은 적극적 고용 시장 참여자가 아니라 노동 수요가 증가하거나 정규직의 임금 상승 요구가 거셀 때 그 자리를 채우는 대체재로 기능함으로써 정규직의 협상력을 약화해 실업률 감소 상황에서도 임금 상승률을 낮춘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기 변동 시 정확한 임금 상승률 예측을 위해서는 임시직 고용 시장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불경기가 오면 임시직 노동자들이 먼저 해고되고 이후 실업자 집계에서 제외됨으로써 실업률 자료를 왜곡하고 부정확한 임금 예측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필립스 곡선에 따른 임금 상승률과 실업률 간 상관관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루카스 레너(Lukas Lehner) 에든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 조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emporary employment puts a drag on wage growth with macroeconomic consequence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