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역대 최대 영업손실에 고강도 구조조정안 발표
8월부터 조기 퇴직 패키지 등 감원 절차에 돌입
퀄컴·IBM 등 반도체 업계에 대규모 인력 감축
반도체 업계에 정리해고 바람이 불고 있다. 퀄컴, IBM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인력 감축에 돌입한 가운데, 미국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전 직원의 15%에 달하는 인원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인텔은 올해 2분기 창사 이래 사상 최대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는데 지난달 이미 조기 퇴직 패키지를 가동해 자발적 퇴직자들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 글로벌 임직원 상대로 구조조정 대상 통지
15일 인텔은 한국 지사를 포함해 글로벌 상대로 구조조정 대상을 전격 통지했다. 감원 규모는 전 직원의 15%에 달하는 총 1만5,000명이다. 이는 사상 최대 영업손실에 따른 조치로, 인텔은 올해 2분기 16억1,000만 달러(약 2조2,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인텔은 지난 8월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100억 달러(약 13조7,000억원)의 비용 절감을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팻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감축 인원은 약 1만5,000명으로 주로 연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감원 대상은 주로 연봉이 높은 시니어 직원으로, 아일랜드에서는 자발적 퇴직자에게 최대 50만 유로(약 7억5,000만원)를 지급하는 조기 퇴직 패키지를 제공했다. 조기 퇴직한 직원들은 지난달까지 모두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은 조기 퇴직 실시에도 채워지지 않은 인원에 대해 연말까지 추가 해고를 단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인텔의 핵심 생산 거점 중 하나인 오리건주 힐스버러 사업장에서는 근로자 1,300명에 대한 해고 계획을 주 정부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의 자구안은 감원뿐 아니라 시설 투자에 대한 구조조정과도 병행해 이뤄지고 있다. 먼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진행 중이던 300억 유로(약 44조5,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지난해 인텔은 1.5나노급 공정을 도입해 독일을 인텔의 유럽 첨단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내놨는데 1년 만에 이 같은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진행 중이던 공장 건설도 2년간 중단하고, 말레이시아 공장 설립 계획도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보유 부동산의 3분의 2 매각, 사무실 축소, 배당 중단 등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단행했다.
업계에서는 계열사의 분사에 이어 사업부 매각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력 사업부로는 올해 초 분사한 알테라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사업부가 거론된다. 실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텔은 완전 매각 또는 상장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인텔은 167억 달러(약 18조6,000억원)에 알테라를 인수했다. 한때 블룸버그통신 등이 매각 가능성을 제기했던 파운드리 사업부는 이미 올해 2월 사업 조직 분할을 마쳤다.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를 '인텔 파운드리 그룹'으로 격상하는 한편 제품 개발과 설계를 담당하는 조직을 '인텔 프로덕트 그룹'으로 통합했다.
WSJ "수익 내지 못한 프로젝트와 일자리 줄여"
반도체 업계 내 해고 바람이 부는 기업은 인텔만이 아니다. 퀄컴, 인피니언, 온세미, IBM 등 글로벌 상위 반도체 기업에서 수백 명에서 만 명 규모의 정리해고를 결정함에 따라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스마트폰 칩셋 점유율 1위인 미국 퀄컴은 지난해 이어 올해 또다시 인력 감축에 나섰다. 샌디에이고 유니온-트리뷴의 보도에 따르면 퀄컴은 올해 말까지 샌디에이고 본사에서 226명의 직원을 해고할 예정이다. 지난달 해고 통지를 한 데 이어 오는 11월 12일부터 본격적인 해고를 단행할 예정이다. 퀄컴의 이번 대규모 해고 결정은 지난해 10월 1,250명 이상의 직원을 감축한 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뤄졌다. 당시 퀄컴은 전체 직원의 2.5% 수준을 해고했는데 대부분은 엔지니어 인력이었다.
미국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 온세미는 연내 1,0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할 계획이다. 또 전 세계 사업장 9곳을 통합한 뒤 300명의 직원을 다른 사업장으로 재배치하기로 했다. 온세미는 전기자동차에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를 공급하며 높은 점유율을 확보했지만, 최근 전기차 시장 침체와 고객사의 과잉 재고로 인해 반도체 수요의 회복이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온세미는 이번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절감된 금액을 신규 사업에 재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독일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은 지난 5월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인피니언은 비용 절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독일 레겐스부르크 팹에 수백 명의 인원을 감축했으며, 한국 천안의 파워세미텍 팹과 필리핀 카비테 팹을 대만 후공정 업체 ASE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인력을 줄였다. 인피니언의 천안 팹과 필리핀 카비테 공장에는 각각 300명, 900명의 직원이 근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피니언은 감원을 통해 절감한 인건비를 오는 2026년부터 가동을 시작하는 신규 드레스덴 팹에 투입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때 반도체 기업들이 기술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앞다퉈 경쟁했지만, 이제는 직원들은 희소한 직책을 놓고 씨름하고 있다"며 "기업은 수익을 창출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집중하기 위해 신입사원 채용을 철회하고 인사팀을 감축하고 있으며, 큰 수익을 내지 못하는 분야의 프로젝트와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빅테크 업계도 해고 칼바람
이 같은 해고 삭풍은 반도체 업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빅테크들 역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록적인 감원 행렬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WSJ 등 외신에 따르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애플, 아마존, IBM, 시스코 등에서 잇달아 대규모 해고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만 명을 감원한 MS는 올해 6월에도 클라우드 사업 부문인 애저(Azure)를 비롯한 다수 사업부에서 1,000여 개의 일자리를 줄인 데 이어 7월 1일에도 일부 직원을 정리해고했다. 전자전문매체 긱와이어는 "MS가 AI 학습과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면서도 마진율을 유지하고자 한 달에 한 번꼴로 감원을 단행했다"고 분석했다.
아마존은 202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음성 비서 알렉사, 프라임 비디오 및 음악 부문, 인터넷 비디오 스트리밍 자회사인 트위치 등에서 약 2만7,000명을 감원했다. 올해 4월에는 클라우드 사업부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비용 절감을 위해 영업, 마케팅, 오프라인 매장 기술팀 부서를 대상으로 인원을 감축했다. 2023년 한 해 동안 1만1,000명을 넘는 인원을 해고한 메타는 올해 초 인스타그램에서 최소 6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해고된 다수의 직원은 메타의 기술 직원들과 고위급 제품 매니저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한 기술 프로그램 매니저들이었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도 지난해 온라인 광고시장의 침체로 전체 인력의 6%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핵심 기술 영역으로 꼽히는 코어팀에서 2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알파벳은 코어팀의 일부 기능을 인도와 멕시코로 이전해 현지에서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애플은 '애플카 프로젝트'를 중단하면서 600명의 엔지니어를 감축했고 IBM은 8월 중국에서 연구소를 폐쇄하며 1,000명을 해고했다. 모바일 메신저 플랫폼 스냅챗의 모회사 스냅은 직원의 10%가량을 줄였고 전자서명 업체 도큐사인도 전체 인력의 약 6%를 감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