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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가부채 제동장치 대대적 개편 준비 중 작년 말 예산 대란·경제 성장 둔화 등으로 의구심 커져 주요 기관·전문가들도 재정 정책 개선 방안 제시
독일이 '국가부채 제동장치(Schuldenbremse)' 제도 개편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말 벌어진 '예산 대란' 이후 국가부채 제동장치의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며 제도 개선 압박이 가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부각된 독일의 경기 침체 기조 역시 재정 정책 전환 논의에 기름을 붓고 있다.
獨, 국가부채 제동장치 개편 검토
10일(현지시각) 미국 경제 전문지 배런스에 따르면 최근 독일은 국가부채 제동장치 제도의 대대적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국가부채 제동장치는 국가의 적정 부채 한도를 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부채 발행을 제한하는 재정 정책이다. 앞서 독일은 헌법에 2009년 한 해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않도록 하고, 국가부채 한도를 GDP의 0.35%로 제한하는 내용을 명문화했다. 다만 자연재해 등 특별한 위기 상황에서는 연방의회에서 적용을 제외하도록 결의할 수 있다.
국가부채 제동장치 제도의 개선 움직임이 본격화한 배경에는 지난해 말 벌어진 '예산 대란'이 있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연립정부는 지난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를 고려해 국가부채 제동장치 적용을 제외하기로 결의, 600억 유로(약 86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해당 예산은 코로나19 대응에 쓰이지 않은 채 불용 예산으로 남았다.
이후 지난해 독일 연립정부는 해당 불용 예산을 기후변환기금(KTF)으로 전용해 2024년 예산안을 편성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해당 예산안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며 연방정부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특정 연도에 특정 명목으로 조성한 예산을 다른 해에 다른 명목으로 쓰는 조치가 국가채무 제동장치를 우회하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이에 독일에서는 대규모 예산 공백으로 인한 혼란이 발생했고, 곳곳에서 국가채무 제동장치의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경제 위기
최근 불거진 독일의 경제 위기도 국가부채 제동장치 제도 존폐 논의에 기름을 붓고 있다. 지난 10월 독일 경제부는 올해 GDP가 0.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기존의 0.3% 증가 전망에서 급격하게 하향 조정된 수치다. 이 같은 예측이 현실화하면 독일 경제는 2023년 0.3% 역성장한 데에 이어 20년 만에 2년 연속 경기 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국가부채 제동장치가 독일의 성장 둔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부채 제동장치로 인해 첨단 기술 육성에 필요한 정부 투자가 줄어들며 시장 경쟁력이 약화했다는 것이다. 실제 독일의 GDP 대비 공공투자 비중(2018~2022년 기준)은 2.5%에 불과하다. 이는 공공투자가 열악한 것으로 꼽히는 영국(3%)을 밑도는 수치자, 유로존 주요 고소득 국가(스페인 제외)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주요 기관들은 독일 정부가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독일이 순차입 한도를 GDP의 1% 수준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독일 경제전문가위원회는 구조적 적자 한도 조정, 예외 조항 적용 기간 연장 등을 포함한 제도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재정 준칙(재정 적자 한도 GDP 대비 3%) 내에서 독일의 재정 운용 탄력성을 제고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전문가 "국가부채 제동장치는 구속복"
다수의 전문가들 역시 독일 재정 정책의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초 아힘 트루거 뒤스부르크대 경제학과 교수는 독일 언론 매체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을 통해 "국가부채 제동장치의 설계 오류 중 하나는 투자 지향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미래에 이득이 생기는 투자의 경우 빚을 내 차세대와 공동으로 감당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EU 관례에 따라 투자를 규정하고 GDP의 1~1.5%에 상한을 둔다면 지속 가능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 '바이드노믹스'를 설계한 브라이언 디즈 전 대통령 수석 경제보좌관은 독일의 언론 매체 디차이트 기고문에서 "국가부채 제동장치는 독일의 손발을 묶는 구속복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의 문제는 국가부채 제동장치 그 자체"라면서 "임의로 정해진 연간 부채 상한은 기업이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 결정을 하기 전 필요로 하는 장기적인 계획 안정성에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국가부채 제동장치 관련 규정으로 인해 독일이 성장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어 "국가부채 제동장치는 독일을 자멸로 이끌었다"며 "독일은 부채 제동장치 도입 후 오랫동안 기반 시설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주요 20개국(G20) 중 아르헨티나와 함께 유일하게 역성장하고, 향후 5년간 성장세가 주요국보다 뒤처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독일이 구속복을 벗어 던지고, 경제 성장 엔진을 다시 가동할 수 있다면 이는 유럽 전체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며 "독일 정부는 정부 투자에 따른 효용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정 정책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