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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호조에 美 국채 수익률 쑥 외국인들 신흥국 증시서 발 빼 아시아 증시 관망세 이어질 듯
시장의 예상을 깬 미국 비농업고용자수 발표에 미 장기채 수익률이 급증하면서 아시아 신흥국 증시가 동반 하락세를 나타냈다. 특히 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기대감으로 올랐던 아시아 기술주들이 일제히 하락하면서 증시 하락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외국인들, 아시아 증시 외면
1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04% 하락한 2,489.56에 장을 마감해 4거래일 만에 2,500선을 다시 내줬다. 코스피가 1% 이상 하락한 것은 새해 들어 처음이다. 같은 날 대만 자취엔도 2.28% 하락했다. TSMC가 2.27% 떨어지면서다.
홍콩 항셍지수도 1.12% 내렸다. 금융주에 비해 기술주의 하락폭이 컸다. 중국의 지난해 12월 수출이 모두 컨센서스보다 양호하게 나오고 수입도 3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돼 상하이종합지수는 약보합세로 마무리됐지만 항셍지수는 1만9,000선이 깨졌다.
이날 하락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 10년물 국채금리가 4.77%로 오르고 달러인덱스가 109.7까지 오르면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2023년 11월 이후 최고치이자, 지난해 9월 16일 3.621%보다 115bp(1bp=0.01%)나 상승한 수치다. 신흥국 자금 유입과 달러인덱스는 반비례 관계를 가지는데, 올 들어 신흥국 주식·채권 펀드 모두에서 패시브 자금 유출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블룸버그통신이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추가 규제까지 보도하면서 아시아 기술주의 하락폭은 더욱 커졌다. 삼성전자는 2.17%, SK하이닉스는 4.52% 하락했는데, 이는 올 들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CES 2025 기조연설을 앞두고 기대감에 올랐다가 미국발 악재에 주가가 조정받은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지속 하락세
신흥국 주식은 지난해 10월 초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 완화 기조에도 지난해 10월과 11월 물가 지표가 강한 모습을 보이자 향후 금리인하 기대감이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일이 다가오자 투자자들은 더 신중해졌다. 코엑스파트너스의 헨릭 걸버그 거시전략가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이 어떻게 나올지 아직 불확실하기 때문에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확신을 갖기 어렵다"며 "취임식까지 시장은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며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과 소셜미디어(SNS) 게시글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브라질의 주가 약세도 신흥국 지수를 끌어내렸다. 뉴욕 델텍 자산운용사의 그렉 레스코 이사는 "한국의 계엄 사태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 브라질의 재정 우려가 이들 국가의 주가 약세를 불러왔다"며 "조만간 상황이 분명해질 때까지 시장은 신중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인도 증시서 발 빼는 투자자들
신흥국 지수는 특히 중국 주식 비중이 큰데, 중국 경기부양책이 투자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중국 주식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인플레이션이 4개월 연속 둔화하는 등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 머물러 있다는 지표도 하방 압력을 가했다.
이에 최근 국내에서도 중국 펀드에 자금을 빼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금융 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중국 펀드 185개에서 최근 6개월 사이 1조613억원가량의 투자금이 빠졌다. 최근 한 달간은 2,102억원가량이 펀드에서 빠져나갔다.
이 같은 자금 유출은 지난해 상반기 부진했던 중국 증시가 9월 이후 중국의 경기 부양 기대로 반등하면서 보유하던 펀드를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강했기 때문이지만, 더 큰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와 중국의 무역 마찰에 대한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앞서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고,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중국은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도 미국과 관세전쟁을 치르며 대미 수출 감소, 성장률 둔화 등을 겪었다. 즉 투자자들이 이에 대한 학습 효과로 미리 투자금을 빼고 있는 것이다.
인도 증시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도 활발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해외 투자자들은 인도 채권 시장에서 지난 8일 7억550만 달러(약 1조원)의 채권을 순매도했다. 이는 2020년 5월 이후 최대치다. 지난해만 해도 인도 채권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인기 있는 투자처로 각인됐었다. 특히 인도 국채는 지난해 6월 말 JP모건체이스의 신흥시장 국채지수에 정식 편입되면서 투자자금을 대거 끌어모았다. 하지만 미국과 인도의 채권 수익률 격차가 좁혀지고 인도 루피화가 달러 대비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인도 채권에 대한 매력이 꺾이고 있다. 실제 인도 루피화는 10일 미국의 고용 지표 호조에 따른 달러의 전방위적 강세로 사상 최저치를 다시 경신했으며, 루피화는 10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달러 대비 85.9650루피까지 추락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