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던 시기는 끝났다" AKLNG 사업 이끄는 美 글렌판, 日 기업과 LNG 공급 계약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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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제라, AKLNG '핵심 축' 美 글렌판과 LNG 공급 계약 맺어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 국가들 참여 여부 불확실 臺·日, 사업 참여 리스크보다 '실익'에 초점 맞춰

알래스카 LNG 수출 프로젝트(AKLNG)를 주도하는 미국의 에너지 개발 업체 글렌판(Glenfarne)이 일본 최대의 발전 회사인 제라(JERA)와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AKLNG 참여에 난색을 표하던 일본이 태도를 바꿔 사업 전면에 뛰어든 것이다. 이는 추가 에너지 공급망 확보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전환점' 맞이한 AKLNG
10일(이하 현지시간) 글렌판은 보도자료를 통해 "제라가 글렌판과 연간 100만 톤(MTPA)의 알래스카 LNG를 20년간 수출자가 모든 위함과 통관을 책임지는 본선인도조건(Free-on-Board, FOB) 방식으로 수입하는 의향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글렌판은 올해 3월 AKLNG 지분 75%를 인수한 이후 주도적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이끌어 왔다.
AKLNG는 알래스카 북부 유전 지대에서 남부 니키스키까지 800마일(약 1,287km)에 이르는 천연가스 수송관을 설치하고, 알래스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아시아에 수출하는 프로젝트다. 글렌판은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에 대한 최종투자결정(FID) 시기를 2025년 말, LNG 수출인프라 구축에 대한 FID 시기를 2026년으로 각각 계획 중이다.
시장은 장기간 국제 사회의 외면을 받던 알래스카 LNG 사업이 순식간에 '순풍'을 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해당 사업에는 실질적인 외국 투자가 전무한 상태였다. 우선 핵심 고객사 후보로 꼽혔던 대만의 경우, 알래스카와의 협력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확답'을 내놓지도 않았다. 지난 4월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가 대만을 방문해 라이칭더 총통과 회담을 갖고 에너지 협력 관련 논의를 진행했을 당시, 양국은 ‘비공개·비구속적 의향서’ 교환 외에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시아, 왜 AKLNG 외면했나
일본 역시 AKLNG 투자 의사가 없었다. 지난 2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AKLNG 일본 공동 참여’ 구상을 발표했을 때 사업 주체인 알래스카가스개발공사(AGDC) 측은 미 상원 자원위원회에서 “일본과의 공식적인 공동 사업은 없다”고 밝히며 선을 그었다. 재팬타임스는 “일본 정부는 해당 파이프라인에 대한 참여를 결정한 바 없다”고 전했으며, 오사카가스 측도 “미국산 LNG를 당분간 추가 구매할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아시아 국가들이 AKLNG 투자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사업의 불확실성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AKLNG를 통해 동아시아 LNG 공급 가격이 MM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량)당 6.7달러(약 9,400원) 수준까지 내려갈 것으로 기대 중이다. 하지만 각종 변수를 고려하면 최종 공급가는 이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막대한 규모의 초기 자본을 투입하며 사업에 참여할 '메리트'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과거 엑손모빌 등 글로벌 기업들도 경제성 문제로 해당 사업에서 철수한 바 있다.
정치적 불안정성도 사업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알래스카 자원 개발에 관한 미국의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급변해 왔다. AKLNG의 상업 생산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인 2030년에나 본격화할 전망이다. 그 이전에 미국의 정권이 교체될 경우 계약국이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순식간에 가중될 수 있는 셈이다.

프로젝트 참여 실익 따라 상황 뒤집혀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아시아 국가들이 AKLNG의 리스크보다 '실익'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대만 현지 언론 타이베이시보는 마이크 던리비 미국 알래스카 주지사와 대만의 연간 544만 톤 규모 LNG 공급 계약이 최종 성사 단계에 근접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던리비 주지사는 “대만과의 계약은 사실상 확정적”이라며 “600만 톤 규모의 계약은 LNG 판매 역사상 가장 큰 오프테이크”라고 말했다.
대만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알래스카 LNG 수입을 통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줄여 무역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에너지 무역의 경제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해 대만 매체 대만중앙사는 “(알래스카산 LNG는) 파나마 운하를 거치지 않고 직접 수송이 가능해 운송 시간 단축과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고,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진행 중이던 지난 6월부터 AKLNG 관련 사업 타당성 검토를 진행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일본이 컨설팅 기업 우드맥킨지에 알래스카 LNG 사업 타당성 용역을 수주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최근의 일"이라며 "컨설팅 의뢰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적어도 6월쯤에는 타당성 검토를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일본이 태도를 뒤집은 것은 안정적 LNG 공급원을 확보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국가 역량을 결집한다는 의미의 ‘히노마루(日の丸, 일본 국기 일장기)’ 프로젝트를 앞세워 LNG 및 자원 개발을 추진해 왔다. 러시아 사할린 가스전 사업인 ‘사할린-2 프로젝트’에 일본 정부와 민간 기업이 공동으로 참여, 안정적 가스 공급망을 확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해외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서 일본은 단순히 자원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개발 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자원의 자주적 개발 비율을 높이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접근한다”며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 역시 이 같은 구상하에 뛰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