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과녁 빗나가는 ‘미국 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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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러시아 원유 수입한 인도에 ‘50% 관세’ 인도, 원유 수입 유지한 채 무역 다각화 조짐 한국, 일본, 영국도 중국 수출 ‘유지’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미국이 인도산 수입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한 것은 값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지속한 것에 대한 응징 차원으로 여겨졌다. 관세가 부과되며 루피화(Rupee)가 폭락하고, 120억 달러(약 17조원)의 해외 투자가 인도를 떠나자 경제성장률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중단되기는커녕 증가할 조짐마저 보인다.

미국, 인도에 ‘50% 보복 관세’
미국 무역 정책의 모순을 보여주는 사례다. 관세가 국가 안보와 협상 카드로 동시에 사용되면 동맹국들을 동요시켜 위험 회피 수단을 찾게 만들며, 이는 중국의 영향력 확장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올해 시행된 미국 관세는 이중 구조가 특징이다. 비상 권한(emergency powers)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에 부과되는 10%의 기본 관세와 함께, 일부 국가에는 보복적 성격을 띤 추가 관세가 매겨진다. 인도에 부과한 50%가 후자에 해당한다.
불확실성 대응 차원 ‘무역 다각화’
문제는 이것이 관세 본연의 목적을 흐린다는 것이다. 관세가 국가 안보와 관련된 것이라면 예측 가능하고 장기적 관점에 입각해야 하며, 협상 목적이라면 한시적이고 번복이 가능하다는 여지를 두는 게 맞다. 하지만 둘 사이를 오가는 미국의 관세는 그 자체로도 무역 상대국들을 불안하게 하는데, 여기에 더해 내부에서도 대통령 권한에 대한 사법부의 반박이 이어지며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각국은 중국 및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개발도상국 그룹)로 무역을 다각화해 이에 맞서고 있다.
인도의 사례를 더 들여다보자. 미국과 인도의 무역 규모는 연간 1,290억 달러(약 180조원)로 이를 통한 미국의 무역 적자는 458억 달러(약 64조원)에 이른다. 이에 대한 50%의 관세는 인도 섬유 사업부터 경공업에 걸쳐 미국 수출액의 1/3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 하지만 저렴한 러시아 원유가 충격을 상당 부분 줄여준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인도가 러시아 원유 수입을 통해 절약한 비용은 170억 달러(약 2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의 관세 조치가 막고자 했던 원유 흐름이 멈추지 않고 있는 이유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870억 달러(약 121조원)의 인도 수입품에 50%의 관세를 물린다면 해당 상품의 미국 소비가 52% 줄어 최대 230억 달러(약 32조원)의 수출 차질을 발생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인도가 그 절반만 미국 이외의 시장에 다소의 할인율을 적용해 수출하면 손실은 100억 달러(약 14조원)선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으로 인한 비용 절감이 더해진다. 미국이 자신하는 협상력은 상대국들이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주: 전체 수출액, 50% 관세 대상액, 수출 다각화, 러시아 원유 수입 효과(좌측부터) / 2024년(좌측 막대그래프), 2025년(우측 막대그래프)
주요 선진국 대중국 수출 ‘굳건’
인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반도체 부문에서도 미국은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한국에 적용했던 예외 조치까지 중단했다가 연간 라이선스 조건을 추가해 정상화한 바 있다. 이는 중국에 지은 수십조 원 규모의 생산 시설에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의 40%를 생산하는 삼성과 SK하이닉스에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 결과 작년 삼성의 중국 수출은 450억 달러(약 62조원)에 근접해 미국을 앞질렀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정부의 ‘리스크 경감’(derisking) 선언에도 불구하고 EU의 작년 대중국 무역 적자는 3,000억 달러(약 416조원)로 불어났고 현재 관세 전쟁이 진행 중이다. EU는 중국산 전기차를 겨냥했고, 중국은 유럽산 돼지고기에 60%의 관세를 매겼다. 이 와중에 영국은 대중국 무역으로 기울어 현재의 무역 규제마저 거두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국과 일본도 연간 1,200억 달러(약 167조원) 이상의 대중국 수출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주: 영국, 일본, 한국, 유럽연합(위부터)
‘충격요법’ 말고 ‘명확성’이 답
미국 내 사정도 만만치 않다. 관세가 소비세처럼 작용해 미국 국민 1인당 1,300달러(약 180만원)의 추가 부담을 안기고 있으며 중소 수출업체들의 규제 준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범위가 한정되고 투명한 관세 정책만이 피해를 줄이고 동맹국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관세가 ‘충격요법’으로 작용하려면 예측 불가능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충격은 금세 사라진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통해 미국의 관세 효과를 상쇄했고, 한국의 반도체 기업은 중국 수출을 늘리고 있다. 유럽은 관세와 ‘리스크 경감’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중국 적자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전략적 영향력을 견제하고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압박하려면 안보 목적의 무역 정책을 입법화하고, 관세 협상 시한을 명확히 하는 한편, 동맹국들에 피해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명확성이 전제돼야 동맹국들을 움직일 수 있고 미국이 원하는 결과도 나올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wo Tariffs, One Strategy Problem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