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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이익률 1.19%, 中 저가 공세도 악재
높은 매각 대금에 중국 자본 참전 불가피
무역환경 변화·환율·관세 등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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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제일제당의 바이오사업부 일부 매각이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유력 원매자로는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거론 중이며, 국내 PEF 운용사 역시 중국계 펀드를 활용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매각이 5조원대에 달하는 ‘초대형 딜’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무역환경 변화, 환율 등 외부적 요소는 물론 내부 직원들의 동요 또한 거세지고 있어 난항이 예상되는 분위기다.
시장 양분한 중국 기업에 가격 경쟁력↓
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과 매각 자문사 모건스탠리는 이르면 내주 바이오사업부 내 그린바이오 부문 매각 본입찰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현재 MBK파트너스와 중국 광신그룹, 매화그룹 등 세 곳이 입찰 참여를 전제로 막바지 실사 및 내부 논의를 진행 중이며, CJ제일제당은 매각 자금을 활용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한다는 계획이다.
CJ제일제당 그린바이오 사업부는 사료용 아미노산을 주로 생산한다. 아미노산은 닭·돼지 등 가축이 체내에 동물성 단백질을 넉넉히 축적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지만, 가축 사료의 주요 성분인 곡물은 필수 아미노산을 충분히 함유하지 못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1988년 MSG(글루탐산나트륨)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사료용 아미노산 제조 시장에 진출했고, 장기간 사업을 영위하며 그린바이오 사업부를 해당 부문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로 키워냈다.
그러나 중국과의 저가 경쟁에서 밀리면서 수익성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 2023년 CJ제일제당 바이오부문 영업이익은 689억원으로 전년 대비 89% 감소했다. CJ제일제당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그린바이오 매각을 추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장한계에 직면한 과거 사업을 정리하고, 주력 사업에 집중해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다지겠단 구상이다.
CJ제일제당은 그린바이오 매각 대금으로 최대 6조원대를 예상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5조원 안팎에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사료 사업의 특성상 영업이익률이 낮고, 후발주자인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가 거센 탓이다. 2023년 CJ제일제당 바이오부문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조8,040억원, 689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1.19%에 불과했다. 중국에서 자체 생산한 저가 라이신 등이 실적 하락에 직격탄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매각을 기점으로 CJ제일제당의 ‘선택과 집중’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중국 식품 자회사 지상쥐(吉香居)와 브라질 자회사 CJ셀렉타 지분을 정리하는 등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린바이오와 함께 CJ피드앤케어 또한 매각이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대형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확고한 매각 의지에 직원들은 좌불안석
애초 CJ제일제당은 중국 자본에 그린바이오를 매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중국 PEF 운용사들이 기술 유출만을 목적으로 접근할 경우, 자칫 사업체가 와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지난해 11월 매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린바이오 인수를 타진했던 칼라일, 블랙스톤, 베인캐피털 등 다수의 중국계 PEF 운용사가 이 과정에서 떨어져 나갔다.
문제는 이들 원매자가 줄줄이 떠나면서 매각전의 흥행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중국 사업 비중이 높은 그린바이오 특성상 중국 전략적투자자(SI)들의 문의는 필연적인 부분인 데다, 국내에선 5조원대에 달하는 인수대금을 동원할 수 있는 SI가 드물기 때문이다. 현재 유력한 인수 후보인 MBK파트너스도 투자 성과가 필요한 중국팀 펀드와 협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결국 CJ제일제당은 중국 자본에 그린바이오를 넘기지 않겠다던 의사를 거둬들였다.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매각 작업이 단계적으로 진행되면서 내부 직원 사이에선 동요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기업 계열사가 PEF 운용사로 적을 옮길 때 고용 불안정을 호소하는 사례는 많지만, 그간 CJ그룹이 특정 사업부를 분리해 매각한 전례가 드문 만큼 이번 매각이 더 큰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익명의 CJ제일제당 관계자는 “CJ가 특정 계열사나 사업부를 잘 매각하지 않는 일종의 ‘불문율’은 직원 등 내부 문제와 연관이 깊다”며 “바이오 사업부 매각 추진이 본격화하면서 내부 직원들이 크게 동요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룹 전체의 역사를 되짚어봐도 PEF 운용사에 경영권을 매각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 협상에 있어 직원들의 거취 문제도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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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덤핑 관세-높은 환율, ‘양날의 검’
또 다른 변수로는 반덤핑관세 등 주요 소비처인 유럽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올해 초 중국산 라이신에 58.3~84.8%의 임시 반덤핑관세를 적용했다. 이는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제동을 거는 효과로 이어졌고, 라이신의 가격도 뛰었다. 중국 업체들과 전 세계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로선 호재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CJ제일제당 또한 악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U의 이번 조처가 자국 산업 지원 정책의 일환인 만큼 지금과 같은 수혜는 단기간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미 축산업 강국인 스페인, 영국 등은 유럽 시장 내 사료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전통적 농업 강국인 유럽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로부터 사료 생산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의도”라고 짚으면서 “CJ제일제당 그린바이오 인수전에 유럽 자본이 등장하지 않은 것도 제조 시설 등 자산이 유럽에 없기 때문에 관세 정책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환율과 불안정한 국내 시장 상황도 이번 매각전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요소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수록 해외 PEF 운용사들 입장에서 가격 매력도는 높아지지만, 변동성을 이유로 투자 심리가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원화 약세 국면에서 국내 기업에 투자를 검토 중인 해외 운용사들은 매수 전략을 더 공격적으로 추진할 동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리더십 부재 등 정국 불안 상황에서는 인수전 참여 자체를 부정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