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관세로 힘 잃은 달러, 미국 경제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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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규모 관세 이후 달러 약세 전환 제조업 기반 부족 및 자본재·중간재 비용 상승 부담 보복 관세와 시장 신뢰 하락으로 자본 유출과 환율 불안 심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5년 미국 경제를 가장 명확히 보여준 지표는 관세율이 아니라 환율이었다. 4월 2일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 발표 직후 달러는 주요 통화 대비 수개월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6월 말 파이낸셜타임스는 달러가 1973년 이후 최악의 상반기 성적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전통적으로는 관세가 수입을 줄이고 무역수지를 개선해 통화를 끌어올린다고 설명되지만, 이번 달러 약세는 일시적 반응이 아니라 정책 효과에 대한 평가였다.

고전적 설명의 한계
경제학의 전통적 설명에 따르면 관세는 수입 축소와 무역수지 개선으로 이어지고, 이는 자국 통화에 대한 수요를 높여 통화 가치를 강세로 만든다. 그러나 2025년 미국은 이와 달랐다. 제조업 부가가치는 1분기 GDP의 9.7%에 불과했고, 공장 가동률도 여름 기준 77~78%로 장기 평균보다 낮았다. 산업 기반이 작고 여유 생산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관세는 무역 조건 개선책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으로 작용했다.
실증 결과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2018~2019년 무역 갈등 당시 미국이 부과한 관세는 거의 전부 소비자 가격에 전가됐다. 2025년에도 국경에서 부과된 비용은 수입업체를 거쳐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됐다. 단기적으로는 해외가 아니라 미국 내 기업과 가계가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반복됐다.

주: 날짜(X축), 유로/달러 환율(Y축)/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위협(파란색 점선), EU의 보복 계획 발표(빨간색 실선)
보복과 우회 효과
관세 효과를 단순화한 설명이 놓치는 또 다른 변수는 보복과 우회 효과이다. 교역 상대국이 보복 조치를 취하거나 그럴 가능성을 내비치면 자국 통화에 대한 강세 압력은 약해지고, 오히려 약세로 전환될 수 있다. 실제로 4월 2일 발표 직후 단기 데이터는 달러 가치 하락과 해외 자금의 미국 이탈을 보여줬다.
공급망 재편도 빠르게 나타났다. 멕시코가 미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지만, 동시에 중국의 대멕시코 수출은 2024년 기준 멕시코 전체 수입의 약 21%를 차지했다.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중국산 제품이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된 것이다. 공급망의 실제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주: 날짜(X축), 유로/달러 환율(Y축)/미국의 상호주의 관세 발표 및 이후 +50% 보복 관세(파란색 점선), 중국 34% 보복 및 중국·EU 추가 보복(빨간색 점선)
자본시장 반응
관세 효과를 설명하는 전통적 모델은 자본시장의 반응을 충분히 담지 못한다. 4월 이후 달러는 약세를 보였지만 장기 미국 국채 금리는 상승했다. 이는 미국 국채가 지닌 안전자산 프리미엄, 즉 안정성과 유동성 가치가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관세 정책이 경기 둔화 우려와 재정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국채의 ‘보험 역할’이 흔들린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 분석도 같은 시기 외환시장과 채권시장에서의 급격한 변동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거나 달러 자산을 줄였다. 실제로 4월 2일 이후 외국인 주식 자금이 미국에서 이탈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금융 안정 보고서’는 성장 전망 악화와 시장 변동성 확대를 지적했다. 달러 약세, 장기 차입 비용 상승, 불확실성 증가는 산업정책의 성과가 아니라 시장의 경고였다.
단기적으로 수출업체가 관세 부담을 흡수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일본 자동차 산업 사례를 보면 초기에는 판매 가격을 동결했지만 결국 마진 압박으로 가격 인상과 미국 내 생산 확대 계획으로 이어졌다. 한국 자동차·배터리 공급망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정책적 교훈
관세와 환율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달러 흐름은 정책의 신뢰도, 과세 대상, 그리고 보복 가능성에 의해 좌우된다. 산업 기반을 강화하면서 달러의 안전자산 프리미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관세는 범위를 좁히고 안보 목적에 근거해야 하며, 적용 기간도 명확히 해야 한다. 보호조치는 무제한적 관세 대신 성과 기준이 붙은 보조금과 결합돼야 하고, 이를 통해 생산능력이 신속히 확충돼야 한다. 외교적으로는 안정적이고 낮은 수준의 관세를 조건으로 미국 내 투자를 유치하는 협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최근 일본과 한국과의 협상에서는 자동차 관세를 15% 수준에서 제한하는 대신 대규모 투자 패키지가 논의되고 있다.
관세 수입만으로 재산업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4월 이후 실효 관세율은 급증했지만 가계 구매력은 하락했고, 공장 가동률은 여전히 평균 이하에 머물렀다. 전면적 관세 부과 뒤에 투자 계획을 뒤늦게 제시하는 방식은 시장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을 이번 사례가 보여준다.
신뢰를 잃은 미국
2025년 미국의 관세 정책은 달러 약세와 자본 이탈을 불러오며 산업정책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보복 가능성과 제조업 기반 부족, 국채 시장의 신뢰 상실이 겹치면서 관세는 국내 부담으로 작용했다. 향후 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범위를 좁히고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하며, 보호조치는 생산능력 확충과 연결돼야 한다. 무엇보다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 설계를 통해서만 달러의 안정성과 산업 기반을 동시에 지켜낼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Tariffs Don’t Buy Strength: Why the Dollar Fell, and What the Models Missed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