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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AI 시대, 집단행동이 흔드는 금융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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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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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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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행동이 금융 불안의 핵심 요인으로 부상
SNS와 AI가 불안을 증폭시켜 위기 속도 가속
정보 시스템 댐퍼 구축이 금융 안정의 관건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Research Memo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대 금융시스템은 단순한 재무 건전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는 순간, 안정적이라 보였던 구조도 한순간에 흔들린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몇 시간 만에 예금의 25%가 빠져나가며 은행은 무너졌고, 금융 불안은 정보 확산과 집단행동의 문제임이 드러났다. 특히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AI)의 결합은 위기의 속도를 더 앞당기고 있다.

사진=ChatGPT

집단행동의 파급력

현대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은 개별 은행의 재무 상태보다 집단행동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비슷한 결정을 내릴 때, 작은 충격도 순식간에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런던 밀레니엄 브리지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엔지니어들은 세계적 수준의 설계와 계산을 거쳐 새로운 현수교를 완공했다. 개통식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렸고, 다리는 하중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다리는 곧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보행자들이 미세한 흔들림에 발을 맞추자 움직임이 서로 겹쳐지며 진동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은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결국 당국은 다리를 긴급 폐쇄했다. 대대적인 재건축까지 검토됐으나, 근본적 해결책은 단순했다. 구조물을 다시 세우는 대신 진동을 흡수하는 댐퍼를 설치하자 다리는 안정성을 회복했다.

이 사례는 금융시장에도 똑같은 교훈을 준다. 개별 참여자의 행동은 합리적일 수 있지만, 동시다발적으로 맞물릴 경우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위기 대응의 핵심은 개인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행동이 만드는 충격을 흡수할 장치를 갖추는 데 있다.

금융 시스템의 임계점

위기는 표면적으로 건전해 보이는 은행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일정한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불안정성이 급격히 확대되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디빅 모형 또한 예금자들이 동시에 같은 판단을 내릴 경우 실제 상황과 관계없이 대규모 인출이 발생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그 사례다. 당시 불안은 빠른 속도로 퍼진 정보에 의해 예금자들의 판단이 동시에 맞춰지면서 증폭됐다. 특히 전체 예금의 88~94%가 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대규모 자금이었고, 이 자금은 단기간에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미 연준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3월 9일 하루 동안 400억 달러(약 53조원)가 유출됐고, 다음 날에는 1,000억 달러(약 133조원)가 추가로 빠져나갈 예정이었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도 같은 해 1분기 동안 1,000억 달러(약 133조원) 이상이 줄었으며, 하루 기준으로 250억~400억달러(약 33조원~53조원)가 이동했다. 집중된 예금자 네트워크와 집단적 메시지 전파가 이런 흐름을 가속시켰고, 결과적으로 개별 은행의 대응을 넘어 금융시스템 전체가 충격에 노출됐다.

2023년 은행 자금 유출의 속도와 규모(단위: 십억 달러)
주: 사건- SVB 실제 인출 (3월 9일), SVB 예상 인출 (3월 10일),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예금 감소 (1분기)(X축), 유출액(Y축)

위기 증폭의 통로

최근 연구들은 금융 불안이 정보 확산과 자금 이동의 상호작용 속에서 증폭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트위터(X)에서 언급 빈도가 높았던 은행일수록 위기 시 손실 규모가 컸으며, 특정 은행 관련 게시물이 급증한 시점에 주가 하락이 동반됐다. 단순한 관심 집중만으로도 취약성이 확대된 셈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확산은 이러한 흐름을 더 강화한다. 인공지능은 짧은 시간 안에 방대한 양의 그럴듯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확산시킨다. 루머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2025년 2월 영국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AI가 제작한 허위 콘텐츠가 은행 건전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경우 응답자의 자금 이체 의도가 크게 높아졌다. 일부 사례에서는 10파운드(약 1만7,000원)의 광고비만으로 최대 100만 파운드(약 17억원)에 해당하는 예금 이동 의사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특히 기업 고객이 집중된 지역은행의 경우 위험은 더 크다. 예를 들어 총예금 120억 달러(약 16조원) 중 절반이 보험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라면, 그 가운데 2%만 이동해도 1억2,000만 달러(약 1조6,000억원)가 빠져나간다. 이는 부정적 보도, 담보 가치 하락, 추가 인출로 이어져 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다.

감독 당국의 경고

국제결제은행(BIS)은 2024년 연차 보고서에서 인공지능이 금융시장 감시 능력을 높일 수 있지만, 동일한 모델들이 잘못된 신호를 낼 경우 그 영향이 시장 전체로 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안정위원회(FSB) 역시 특정 AI 기술과 데이터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허위 정보 확산과 시스템 전반의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하며 감독 역량 보강을 요구했다.

영국중앙은행은 연례 스트레스 테스트에 AI 관련 위험을 반영하는 방안을 논의했고, 여러 모델이 동시에 작동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호작용을 관리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개별 은행 차원을 넘어 금융 시스템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발생하는 ‘동질화 위험’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모든 상황에서 디지털화가 예금 변동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모바일 앱이나 온라인 서비스 이용만으로는 평상시 예금 유출이 불안정해지지 않았다. 문제는 위기 상황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한 불안 증폭이 결합될 때다. 기술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예금 구조의 편중·불확실한 정보·짧아진 대응 시간이 겹칠 때 위험으로 이어진다.

정보 시스템의 댐퍼

감독기관과 중앙은행의 과제는 단순한 자본 규제 강화에 그치지 않는다. 정보가 확산되는 속도와 방식을 완화할 장치가 필요하다. 유럽통화금융학회(SUERF)는 감독 당국이 AI 전문성을 확보하고, ‘AI 대 AI’ 연계를 통해 시장 활동을 실시간 분석·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정 지표가 임계치를 넘으면 자동으로 가동되는 긴급 유동성 공급 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안정위원회(FSB)는 금융회사의 AI 활용 현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특정 업체 의존도를 추적하며, 허위 정보 확산을 안정성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구체적으로는 루머 충격 모듈을 스트레스 테스트에 포함해 예금 유출과 정보 확산의 상호작용을 평가해야 한다. 은행은 유동성 비율, 중앙은행 담보, 예금 구조를 실시간 대시보드 형태로 공개하고, 단시간 내 배포할 수 있는 사전 승인 메시지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불안 심리를 완화하는 댐퍼 역할을 한다.

2024년 4월 미국 은행의 긴급 유동성 대비 현황(단위: %)
주: 연준에 담보를 맡긴 은행 (41%), 계정은 있지만 담보는 없는 은행 (40%), 계정이 없는 은행 (19%)

민간의 대응 과제

민간 금융기관도 대비가 필요하다. 은행의 재무와 홍보 부서는 공공 데이터에서 조기 경보 신호를 감지해야 한다. 은행 이름과 부정적 키워드의 급격한 연관 증가, 단기간 리트윗 네트워크의 확산, 검색 패턴의 급변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위기 상황에서 소셜미디어 활동은 시간 단위로도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콘텐츠의 진위를 가려내는 능력도 요구된다. 워터마킹이나 암호 기반 인증이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신속한 사실 확인과 근거 제시가 필수다. 은행은 소셜미디어 주목도가 급등했을 때 예금 유출 규모가 얼마나 될 수 있는지 자체적으로 추정하고, 언제 공개 대응에 나설지 기준을 세워야 한다. 대응 시에는 중앙은행 차입 여력, 보유 현금, 보험 적용 예금 비율 등 검증 가능한 수치를 신속히 공개하고, 가능하다면 제3자 검증 자료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위기 대응의 핵심 과제

현대 금융시스템의 가장 큰 위험은 개별 행위가 아니라 동시다발적인 집단행동이다. 인공지능은 이러한 동조 현상을 더 쉽게, 더 빠르게, 그리고 되돌리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앞으로의 안전장치는 단순한 자본 확충이나 담보 확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공개, 루머를 반영한 스트레스 테스트, 위기 대응 훈련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금융 당국과 은행 모두가 이를 제도와 운영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

무엇보다 비판을 수용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시장과 대중을 안심시킬 수 있는 즉각적이고 검증 가능한 대응이 요구된다. 이런 준비가 뒷받침된다면, 금융 시스템은 위기 상황에서도 더 빠르게 안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Algorithms Wobble: AI, Information Cascades, and the New Bank-Run Curriculum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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