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해외 원조의 ‘빛과 그늘’
입력
수정
해외 원조가 ‘정치 폭력’ 촉발 원조 물자 놓고 ‘폭력과 살인’까지 갈등 최소화 방안 강구해야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구하고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해외 원조가 수혜국 정치인들을 테러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90~2020년 기간 121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해외 원조가 도착하면 지역 정치인에 대한 살해가 15~20% 늘어났다고 한다. 정치가 불안정한 지역을 대상으로 선거 기간에 지급되는 원조는 목숨을 걸고 싸울만한 전리품이 되기 때문이다.

해외 원조 및 수혜국 정치인 살해 ‘상관관계’
해당 사실은 해외 원조의 기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학교와 병원을 짓는 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정치 투쟁을 악화시키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지역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지원이 적절치 못한 시기에 도착하면 고통을 줄이기는커녕 폭력 사태를 심화할 뿐이다. 또한 작년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이하 ODA)가 최근 6년 내 처음으로 실질 가치 기준 감소를 기록하면서 위험을 고려한 보다 현명한 원조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주: 원조 비제공(좌측), 원조 제공(우측)
‘원조 탈취’ 위한 정치 싸움 격화
실제로 보안 및 정치가 취약한 지역에 선거 전 원조가 제공되면, 원조를 움직일 수 있는 공직 자체가 폭력을 동원해 차지할 만한 전리품이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지원된 자금은 물론 지역 서비스와 조달 물품까지 정치권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현금 흐름으로 바뀐다.
원조국 내에서도 사정이 복잡한 것은 마찬가지다. 작년의 경우 인도주의적 해외 원조가 9.6% 하락한 반면, 국경 내에 거주하는 난민 지원 비용이 총 ODA의 13.1%를 차지했다. 만약 국내 지원금의 일부인 3%만 떼어낼 수 있다면 64억 달러(약 8조9천억원)의 규모에 이르는 지원을 해외로 되돌릴 수 있다.

주: *색이 진할수록 발생 햇수가 많음
선거 기간 피해 지원 형태 조절
전문가들은 해외 원조로 인한 정치적 갈등을 줄일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데 가장 먼저 시점이 중요하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선거 직전 대규모 원조 집행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피할 수 없다면 중립적인 경로와 안전한 인도 방법이 고민돼야 한다. 또 지역 관료들이 측근들에게 지원을 몰아주고자 할 때 반대파에 대한 폭력이 일어나기 쉽다. 빈곤 수준 및 거주지 이동을 포함한 명확한 지표에 기반해 투명하고 규칙에 기반한 배분이 이뤄져야 부패와 폭력을 줄일 수 있다. 공개적 접근이 가능한 기록과 현황판도 도움이 된다.
시장이 작동한다면 디지털 송금이 수혜 가구들이 부당한 몰수 없이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접근이 제한된 분쟁 지역이라면 현물 지원이 필수적일 때도 있다. 처음에는 소량으로 시작해 상황을 지켜보며 지원을 늘려가되 필요에 따라 제공 수단을 바꿔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인도적 자금 지원은 원조국 내에서도 논쟁에 휘말리기 쉽다. 위기 시 자동 조정 장치와 국내 사용 한도를 장착한 장기 예산이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자(Gaza) 지구 사태는 해외 원조와 관련한 위험과 어려움을 한눈에 보여준다. 정치적 갈등과 접근 제한, 유용 혐의 등이 복잡성을 키우고 있다. 작년 초 ‘UN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기구’(UNRWA) 직원이 공격에 가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몇 개국이 원조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을 예로 든다면 수혜자 등록을 디지털화하고, 전자 바우처를 지급하며, 생체 인식 장치를 사용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원조 제공 상황과 이용 현황을 공개 현황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상황에 따라 현금 및 현물 지원 비율을 조정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원조 경로를 다양화하고 에스크로(escrow, 조건 성립 시까지 제3자 계좌에 보관)를 이용한 자금 지원도 한시적인 지원 중단 상황을 극복할 방법이다.
관대함과 실용주의 결합해야
가자 지구 사례는 특히 현금의 한계를 보여준다. 현지에 물품이 충분하다면 디지털 송금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국경이 닫히거나 현지 공급망이 와해된 경우에는 현물 지원이 필수적일 때가 많다. 또한 인도 경로와 물류를 먼저 확보하고 현금과 바우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의 단계 설정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자 지구에 적용된 원칙은 사헬(Sahel, 북중부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취약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선거 기간을 피한 원조 집행, 지역 기관의 재량권 제한, 투명성 제고, 현금 지원 비중의 조절, 원조국 내 장기 예산 확보 등이 모두 정치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들이다.
위험은 실제적이다. 원조 기간 내 수혜국 정치인에 대한 살해가 15~20% 늘어난다는 사실이 위험의 정도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외 원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세심한 설계를 통해 폭력 위험을 낮추면서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관대함과 실용주의는 함께 갈 수 있는 덕목들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Good Intentions Become High-Value Targets: Rewiring Aid for Political Risk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 Previous 佛부터 美·日까지, 정치적 혼란에 몸살 앓는 주요국들
- Next [딥폴리시] ‘푸른 영토’ 시대의 권력과 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