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美 목재 시장, 주택 수요 침체·관세 리스크 '이중고'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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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25% 떨어졌다" 美 목재 가격 급락세 주택 시장 가라앉으며 비축 재고 갈 곳 잃어 트럼프發 관세 리스크도 시장 불확실성 가중

미국 목재 선물 가격이 급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목재 수요 전반을 떠받치는 주택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목재 생산 업체들이 과도한 재고 비축에 나서며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어긋난 결과다. 이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역시 시장 불확실성을 가중하며 가격 하락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美 목재 가격, 상승 동력 잃어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택 주요 자재인 목재 가격이 폭락하며 미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목재 선물은 1,000보드피트(BFT, 길이 1피트, 너비 1피트, 두께 1인치인 판자의 부피)당 약 522달러(약 72만4,014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달 초 3년 만에 기록한 최고치 대비 약 25% 급락한 수준이다.
목재 가격 하락의 원인으로는 목재 생산 업체들이 비축해 둔 과도한 재고가 지목된다. 이와 관련해 목재 관련 시장 분석가 겸 컨설턴트인 맷 레이맨은 "목재 생산 업체들은 너무 자신감에 차 있던 나머지 수요 부족 문제를 간과한 채 미국 내에 재고를 쌓아 올린 것으로 보인다"며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재 미국 내 수개월 치 충분한 재고가 쌓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주택 시장의 침체도 목재 가격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목조 주택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늘고 얇은 목재로 집의 뼈대를 만드는 '경량목 구조' 공법이 보편적인 건축 방식으로 자리 잡은 탓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미국은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부터 건설사, 보험사 등이 모두 목재 주택에 특화돼 있다"며 "경량목 구조 공법으로 지은 주택 수요가 꾸준하다 보니 새로운 공법을 도입할 리스크를 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7월 미국의 주택 건축 허가 건수는 2020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목재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2021년 美 강타한 목재 대란
주택 시장 상황이 미국 목재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벌어진 '목재 대란' 전례를 살펴보면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21년 3월 미국의 주택 착공 건수는 173만9,000가구로 2006년 6월 이후 14년 9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저금리 시대에 재택근무까지 확산하며 주택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목재 수요가 급등하는 가운데 공급은 오히려 줄었다. 코로나19가 미국 내에서 급속도로 확산함에 따라 제재소에서 근무하던 근로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방역 수칙에 따라 집에서 자가 격리를 실시해 목재 생산량이 크게 감소한 것이다. 이에 따라 목재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지난 2021년 5월 목재 선물 가격은 1,000보드피트당 1,600달러(약 221만9,200원)를 넘기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1차 대유행기였던 2020년 4월 초와 비교하면 무려 7배가량 뛴 수준이다.
목재 가격 상승세는 집값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1년 5월 전미주택건설업자협회(NAHB)는 목재값 급등에 따른 전년 대비 단독주택 평균 가격 상승분이 3만6,000달러(약 4,993만2,000원)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신규 다가구주택 가격은 목재 가격 상승으로 1만2,000달러(약 1,664만4,000원) 올랐고, 임차인의 월세 역시 119달러(약 16만원)가량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發 관세가 가격 급등락 부추겨
한편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 관세 정책이 목재 가격 하락세를 견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은 목재 관련 제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다음 달 원목·목재 등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라는 지시가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상무부 장관은 명령일로부터 270일 이내에 조사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해야 한다.
행정명령 서명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백악관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동맹에 가혹한 일부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악의적 행위자들이 보조금을 통해 과잉 생산을 한 뒤 이를 미국에 덤핑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미국은 국내 제조 능력을 상실하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핵심 목재 수입국인 캐나다를 비롯해 독일·브라질·중국·한국 등을 '과잉 생산국'으로 언급했다. 캐나다산 목조 주택용 구조재는 미국이 수입하는 구조재의 80%, 미국 전체 구조재 시장의 30%가량을 점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캐나다산 연질 목재에 대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는 기존 15%에서 35%까지 인상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로 수입 목재에 대한 국가 안보 차원의 전면적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캐나다산 목재 수입 시 발생하는 관세 비용 부담은 차후 한층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관세로 인한 시장 불확실성이 목재 가격의 급등락을 야기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