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인낸셜] 美 국방비보다 많은 이자 비용, 재정 지속가능성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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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025년 이자 지출 사상 최대 규모 베네치아·스페인 사례가 보여준 부채·통화 불안정의 위험 지속 가능한 재정 운용과 제도적 개혁의 필요성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미국의 순이자 지출은 약 9,500억 달러(약 1,280조원)에 달했다. 근대 이후 처음으로 국방비를 넘어선 규모다. 2020년 이후 이자 지출은 세 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올해에는 1조 달러(약 1,350조원)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순한 수치 증가가 아니라, 국가 지출 구조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의회예산국(CBO)은 이자 지출이 2030년대에도 사상 최고 수준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 연방준비제도(Fed)가 정치적 압력 속에서 금리를 인하하고, 관세 인상이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달러 가치는 크게 하락했다. 대규모 부채, 완화적 통화정책, 통화 약세가 맞물린 상황은 과거 제국들이 직면했던 재정 불안정과 유사하다.

역사적 사례의 교훈
역사는 과도한 부채를 짊어진 국가가 위기 국면에서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금융 억압은 금리를 낮추고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부채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17세기 베네치아는 대표적 사례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공공은행인 방코 델 지로(Banco del Giro)를 통해 화폐를 발행하며 재정 적자를 메웠다. 그러나 이 화폐는 금속화폐로 자유롭게 전환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가 약했고, 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1629~1650년 전염병으로 지출까지 급증하자 두카트화 가치는 급락했다. 신뢰받던 베네치아조차 재정·통화정책의 일관성을 잃자 통화 안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주: 날짜(X축), 환율(Y축)/재정 적자 화폐화 충격 구간(회색 영역), 10~90 백분위 구간(옅은 파란 영역), 25~75 백분위 구간(중간 파란 영역), 중앙값 환율(짙은 파란 선)
스페인 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6세기 합스부르크 왕가는 아메리카에서 유입된 은에 의존하며 유럽 패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전쟁 비용과 인플레이션이 겹치면서 1557년을 포함해 네 차례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채권자들은 왕실의 명성을 믿고 자금을 빌려줬지만, 반복된 상환 중단은 결국 신뢰를 무너뜨렸다. 이는 단일 자원에 과도하게 의존한 재정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이 두 경험은 동일한 교훈을 남겼다. 단기 위기 대응을 위해 통화 가치를 희생하거나 상환을 반복적으로 미루면, 장기적으로 신뢰와 재정 건전성이 무너진다. 문제는 당장의 디폴트가 아니라 개혁 의지가 약화될 때 임시방편에 의존하게 되고, 그 부담이 사회적 투자와 미래 세대로 전가된다는 점이다.
2025년 미국이 마주한 현실
역사의 패턴은 오늘날 미국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4월 정부는 대부분의 수입품에 10% 기본 관세를 부과했고, 일부 국가에는 더 높은 세율을 적용했다. 긴급 권한을 근거로 했지만, 법적 분쟁은 이미 시작됐다. 시장은 연준의 금리 인하와 제도적 불안정성을 달러 위상 약화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달러의 세계 외화보유액 비중은 57.7%까지 낮아졌다.
표면적으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후반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관세 영향을 받는 품목 가격은 팬데믹 이전 추세를 크게 웃돌았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의류·생활용품 가격 상승 폭이 특히 컸으며, 이는 공공 지출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은행이 관세의 물가 파급 효과를 두고 논쟁을 이어가는 동안, 현장의 조달 비용은 이미 증가하고 있다.
베네치아가 일시적 조치로 시간을 벌었으나 통화 신뢰를 지키지 못했고, 스페인이 은 의존으로 장기 쇠퇴를 자초한 것처럼, 미국 역시 약달러와 비용 상승의 압력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
정책적 시사점
베네치아와 스페인의 경험은 재정 위기 극복의 방법도 함께 보여준다. 베네치아는 전쟁과 전염병으로 재정이 흔들릴 때, 정부가 직접 시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자금을 빌려 재정을 메웠다. 당시 방식은 비민주적이었지만, 국가가 채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신용을 유지하는 장치 역할을 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강제 대출 방식 대신, 국가나 지방정부가 보증을 제공해 시장에서의 차입 비용을 낮추는 제도적 장치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
스페인의 경험은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흘러 들어온 은에 의존해 재정을 유지했으나, 결국 수입이 줄어들자 채무 상환은 반복적으로 중단됐다. 단일 자원이나 특정 수입원에 과도하게 기대면 장기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오늘날에도 한 나라의 재정이 환율, 금리, 원자재 가격 등과 같은 특정 변수에만 지나치게 좌우되지 않도록 구조적 다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통화정책의 독립성 확보는 필수다. 정치적 압력이 중앙은행의 결정을 흔든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시장은 위험 프리미엄을 높게 책정하고, 이는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최근 달러 가치 하락은 단기적으로 부채 상환 부담을 덜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외부 자금 조달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정 지출 구조의 균형이 중요하다. 대형 사업에만 집중해 운영 관리와 유지보수를 소홀히 하면 장기적으로 부채 구조가 불안정해진다. 사업의 전 생애주기 비용을 고려하고, 부채 상환을 재정 규모의 일정 비율 안에서 제한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재정 운용의 최종 과제
미국의 이자 비용이 국방비를 넘어선 현상은 이미 진행 중인 재정 압박을 보여준다. 역사가 전하는 교훈은 분명하다. 부채는 결국 상환돼야 하며, 이를 미루는 방식은 신뢰를 약화시킨다. 베네치아의 임시 대응이나 스페인의 반복적 채무불이행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신용 보강 장치, 가격 현실을 반영한 제도, 중앙은행의 독립성, 책임 있는 채무 관리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연방 정부가 환율과 금리를 활용해 부채를 조정한다면, 지방정부와 정책 당국은 장기적 건전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대응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재정 운용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heap Money, Dear Consequences: What Empires Teach Us About Education Budgets in a Weak-Dollar World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