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美 1월 소비자물가지수, 예상 웃도는 상승세 보여 시장 "美 기준금리, 인하 늦춰지거나 오히려 인상될 것" "금리 올려도 내려도 문제" 딜레마 빠진 한은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문가 예상치를 웃도는 상승폭을 기록했다. 주거비, 에너지 비용 상승 등을 중심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위기가 재차 고조된 것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美 인플레이션 위기 재점화
1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 상승했다. 이는 전문가 예상치(2.9%)를 소폭 웃도는 수치다. 미국 소비자물가가 3%대로 복귀한 것은 지난해 6월(3%) 이후 7개월 만이다. 같은 기간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뺀 근원 인플레이션은 3.3%로 전문가 예상보다 0.2%p 높았다.
노동부는 전체 물가의 30%를 차지하는 주거비가 월간 기준 0.4% 상승하고, 유가 상승으로 에너지 비용이 한 달 만에 1.1% 뛰며 물가 상승폭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조류 독감 확산으로 인한 달걀 가격 상승세도 소비자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시장에서는 향후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한층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부터 중국산 상품에 대한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에 더해 3월부터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 등에 25%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며, 캐나다와 멕시코산 상품에 대한 25% 관세 유예 조치도 오는 3월 종료된다. 조만간 미국 산업계 전반이 막대한 원가 상승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의미다.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 끝났나
이 같은 미국의 가파른 물가 상승세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시장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앞서 지난달 미국의 투자은행(IB)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미국의 ‘금리 인하 사이클’은 지난달 끝났고, 오히려 인상으로 기울어졌다”고 내다본 바 있다. 연준이 연내 적어도 두 차례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전면적으로 수정한 것이다.
BoA 외에도 수많은 주요 글로벌 IB가 연준의 금리 인하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올해 3차례(3·6·9월)로 점치던 인하 전망 횟수를 상·하반기 2차례로 축소했다. 바클레이스는 인하 전망 횟수를 2회에서 1회로 줄이고, 인하 시점도 1분기에서 2분기로 늦췄다.
연준도 금리 인하에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7일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 목표에 거의 도달했지만, 아직 완전히 도달한 것은 아니다”라며 “따라서 우리는 현재 정책을 제한적인 수준으로 유지하고 싶다”고 발언, 금리 인하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드러냈다. 그는 이후 11일 열린 연방 상원 청문회에서도 "연준의 현 통화정책 기조는 이전보다 현저히 덜 긴축적으로 됐고, 경제는 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정책 기조 조정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은 금리 조정 '딜레마'
미국의 금리 인하에 제동이 걸리면서 한국은행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물가, 내수, 한-미 금리차 등 금리 조정 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국내 물가는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1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15.71로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상승한 것은 지난해 9월(1.6%) 이후 5개월 만이다. 물가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는 비상계엄·탄핵 사태로 인한 환율 상승 및 휘발유(9.2%), 경유(5.7%) 등 석유류 가격(7.3%)이 상승이 꼽힌다.
반면 내수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4년 12월 및 연간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서비스 소비가 반영된 서비스 생산은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전년(3.2%) 대비 절반 수준이자, 코로나19 팬데믹이 몰아쳤던 2020년(-2.0%) 이후 4년 만에 최소치다. 재화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액 역시 2.2% 감소하며 신용카드 대란 사태가 발생했던 2003년(-3.2%) 이후 21년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에는 고환율로 인한 물가·환율 불안과 내수 부진으로 인한 경기 하방 리스크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한은은 금리 동결과 금리 인하 어느 쪽을 선택해도 걱정인 딜레마 상황에 놓였다.
만약 한은이 내수 부양을 우선시해 금리 인하를 결정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한은이 연준보다 빠른 속도로 금리를 내리면 1.5%p 수준까지 좁혀진 한-미 금리 차가 재차 벌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미 금리차가 커지면 외국인 투자자가 높은 수익률을 내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자금을 옮길 확률이 높아진다. 외국인 자금 유출이 가속화하면 국가의 외화 보유액이 줄어들며 환율이 상승하고, 환율 상승으로 인해 재차 물가가 뛰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