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중국, ‘디지털 통화는 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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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조업 대비 통화 영향력 ‘빈약’ 달러화 스테이블코인 ‘약진’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만지작’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지만 통화적 영향력으로만 보면 빈약하다.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1/3 가까이를 차지함에도, 국제 결제 시스템(SWIFT)을 통해 인민폐(RMB)로 결제된 비율은 3%를 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민간에서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s, 달러에 연동된 디지털 암호화폐)의 유통 규모는 2,300억 달러(약 320조원)를 넘어섰고 많은 개발도상국의 무역과 저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 글로벌 영향력 ‘미미’
이러한 불균형은 중국 정부의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제조업 우위가 통화 영향력(monetary influence)으로 전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이 인민폐를 달러에 필적하는 기축통화(reserve currency)로 만들고 싶다면, 관건은 공장과 수출 물량이 아니라 스테이블코인 및 관리 시스템에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통화 패권은 생산량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달러가 파운드화를 추월한 것은 1945년이 아닌 1920년으로 미국의 금융 네트워크와 자본 시장이 규모화를 이룬 시점이었다. 현재는 스테이블코인이 실시간에 가까운 결제 기능 및 글로벌 암호화폐 금융(crypto-finance)과의 일체화를 통해 달러화 우위를 강화하고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 중국에는 ‘위협적’
국제통화기금(IMF) 추산에 따르면 올해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거래는 2조 달러(약 2,779조원)로 예상되는데, 아시아가 성장의 주춧돌이 되고 있다. 테더(Tether, USDT)와 USDC가 대부분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와 튀르키예 등의 지역에서는 달러 암호화폐가 일상생활에서 이용될 정도다. 중국으로서는 전 국민 예금액의 일부만 달러 암호화폐로 흘러 나가도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 전체에 맞먹는 셈이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주: USDT, USDC, 기타

주: 누출 규모(좌측),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우측)
홍콩 통한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실험
하지만 중국 정부는 홍콩이라는 유용한 금융 시장을 활용할 수 있다. 홍콩은 지난 8월 새로운 스테이블코인 법령을 제정해 허가 및 준비금, 관리 감독 등에 대한 규정을 명확히 했다. 중국으로서는 인민폐 또는 홍콩달러에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을 본토와 격리된 해외에서 시험할 수 있는 안전한 수단을 확보한 셈이다. 이 역할은 중국이 시험 중인 엠브리지(mBridge, 다중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 플랫폼)에 맡겨질 전망이다.
원자재 무역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페트로 위안(petro-yuan, 중국이 석유 수입 결제를 위안화로 유도해 통화 위상을 강화하려는 시도)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위안화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에너지 대금 지불에 활용한다면 달러 패권을 조금씩 잠식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인한 자본 유출의 위험은 상존한다. 가구 저축이 300조 위안(약 5경8,494조원)을 넘고 은행 이자율이 1%를 밑도는 상황에서 많은 가구들이 유혹을 느낄 만하다. 중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이중 구조’(two-tier model)를 고민 중이다. 홍콩에서 중국 중앙은행의 채권으로 보증되는 위안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되, 본토에서는 등록금 납부 및 무역 금융 등으로 사용처를 한정하는 것이다.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패닉 매도를 억제하기 위한 일시적 거래 중단) 및 한도 설정(quotas) 등으로도 유출을 제한할 수 있다.
대학은 위안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시험할 편리한 무대를 제공한다. 특성상 국경 간 거래를 포함하고 이미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 대학들이 인민폐 이외의 지불 대안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미국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을 등록금 납부 및 장학금 지급, 연구개발비 지원 등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통화’는 달러와 경쟁할 수 있을까?
물론 스테이블코인이 불법 금융을 부추기고 ‘달러화’(dollarization)를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는 타당하다. 하지만 감사 및 준비금 공개, 규제 준수를 통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 역시 최근 연방 차원의 입법을 통해 위험을 줄이고 달러화의 디지털 기반 강화에 나선 바 있다.
중국으로서는 스테이블코인을 전면 규제할 경우 달러화 토큰이 음성적 경로로 유입돼 달러 지배를 공고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홍콩을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의 실험장으로 활용하고, 본토에서는 e-위안(e-CNY) 사용을 지속하며, 엠브리지를 대규모 결제에 활용하면 변화하는 통화 시장에서 인민폐가 설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이제 글로벌 기축통화를 놓고 벌이는 경쟁은 제품 생산이 아닌 유효한 결제 수단 제공에 달려 있다. 중국이 산업적 기반을 금융 영향력으로 연결시킬 수 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얼마 안 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글로벌 결제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줄 수밖에 없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hina's Reserve-Currency Test Will Be Won, or Lost, on Stablecoins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