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생각까지 맡기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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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20%, AI 생성 문서 ‘그대로 제출’ 사고 과정까지 ‘떠넘기기’ 평가 방식 바꿔 ‘행동 변화 유도해야’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이제 학생들의 필수품이 됐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88%가 과제 작업 시 AI를 활용한다고 하는데 이는 반년 전에 비해 급증한 수치다. 5명 중 1명은 AI가 작성한 문서를 리포트에 그대로 붙여 넣는다고 한다. 이러한 AI의 사용은 학생들의 글쓰기와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학습의 본질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대학생 88%, 과제 작업 시 AI 활용
부정직함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 대신 빠르고 깔끔한 문서 작성 능력이 평가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우려하는 것이다. 쉽게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는 검색 엔진이 베끼는 일을 쉽게 만들었다면, 이제는 AI가 표현과 구조화까지 도와준다.
학교와 교사들은 흐름을 따라가기도 벅차다. 작년 봄 조사에 따르면 AI와 관련한 교사 훈련을 마친 미국 학교는 전체의 절반을 넘지 않았고, 올해 들어서도 교사 5명 중 1명만이 AI 정책을 가진 학교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학생들이 AI 관련 허용 및 금지 사항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은 AI에게 과제 전부를 맡기기보다는 이해와 요약에 주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영국 학생들은 개념에 대한 설명과 자료 요약이 주된 사용처였다.

주: 개념 설명, 자료 요약, 조사 아이디어 제공, 아이디어 구조화, AI가 초안 작성 후 학생이 마무리, AI와 학생 편집 문서 혼용, AI 생성 문서를 그대로 제출, 기타(보기 위부터)
문제는 ‘사고 과정 떠넘기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들이 만드는 기준이 동료들에게 확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한 베끼기를 넘어 학생들이 AI에게 사고 과정을 떠넘기는 풍조다. AI에 대한 과잉 의존이 정신적 노력과 계획 세우기, 자아 성찰 등을 약화한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물론 AI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학습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AI를 단순 반복적인 작업에 활용하고 남는 시간을 분석에 활용하는 학생들은 더 나은 성과를 낸다. 따라서 핵심은 과제 설계와 채점 방식이다. 과정과 사고, 추론을 중시하는 과제는 학습효과를 촉진하고, 세련된 문서 작성을 우위에 두면 AI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할 수밖에 없다.
OECD ‘2022년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PISA)에 따르면 창의적 사고능력은 국가마다 상당한 차이가 난다. 싱가포르가 60점 만점에 41점으로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은 33점에 머물러 있으며 5명 중 1명의 학생이 기본적인 사고능력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주: OECD 평균, 캐나다, 싱가포르(좌측부터) / 3단계 이하 비율(%)(좌측 막대그래프), 평균 점수(우측 막대그래프)
이 차이는 지식 자체의 습득 여부 외에 연습과 교수법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AI를 이용해 결과물을 제출하지만 학생 본인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과정을 생략한다면 학습의 핵심 단계를 건너뛰는 결과가 된다.
평가 방식 개선이 ‘핵심’
AI와 관련한 부정행위는 현재 증가 추세지만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부정행위를 감지할 도구도 완벽하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영국의 사례를 보면 1년 사이에 부정행위를 저지른 학생이 1,000명당 1.6명에서 5.1명으로 증가했다. 이 사이 전통적인 부정행위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는 단속과 규제를 넘어 학생들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평가 방식이 도입돼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AI를 활용한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먼저 최종 결과물만이 아닌 사고 과정을 평가해야 한다. 사용한 지시문(prompt)과 개요, 교사 피드백에 따른 보완 사항을 포함, 사고 과정을 증명할 수 있는 과제물을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평가의 30~40%를 이 부분에 활용하면 행동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간략한 구두 설명을 평가에 추가하는 것도 좋다.
과제 자체를 AI 생성 문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도록 설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 데이터나 강의 교재 및 독창적 사고가 필요한 문제를 부과하는 것이다. 학생들 나름의 대안과 반증을 포함하도록 하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면 된다. 여기에 학생들이 AI 활용 정도를 스스로 밝히도록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아이디어 생성부터 초안 작성까지 허용 등급을 매기고 금지 사항을 지정하라. 학생들이 투명성을 높이도록 하면, 교사들이 사후 AI 사용 여부를 비교 검토하는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활용 방식’의 문제
교사들 역시 학생들의 사고력을 평가하고 자료들에 대한 적절한 피드백을 줄 수 있도록 훈련이 필요하다. AI로 절약한 시간은 심화 학습과 개인 지도, 구두 평가 등에 재투자해야 한다. 한편 공정성 문제도 들여다봐야 한다. AI 이용의 차이로 불이익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AI 도구를 제공하고, AI 생성 문서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며, AI를 활용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 AI를 잘 다루지 못하는 학생은 창의적 사고력에 배점을 더 부여하는 식으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과정과 구두 논증, AI 활용 현황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문서가 아닌 성과를 인정하는 수업을 찾아 보상하라. 사고 과정을 AI에 맡기지 않고 진정한 학습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북돋울 수 있을 것이다. 잘만 활용한다면 AI는 ‘숨겨놓은 대필자’가 아니라 학습 장벽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진정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From Parrots to Partners: A Policy Blueprint for AI-Literate Learning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