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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재무, 젤렌스키 만나 안보 논의 "희토류 절반 달라" 우크라 측 "이게 트럼프 협상 방식" 비판 희토류 절반 러 점령지에 매장, 우크라 측 협상 카드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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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 대가로 우크라이나 희토류의 지분 50%를 요구했지만 우크라이나 측이 거절했다. 해당 제안이 미국의 이익만 반영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속한 ‘종전 협상’을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의 입장만 중시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우크라이나 측도 러시아 점령지에 매장돼 있는 희토류 등을 무기로 내세우며 자원 외교에 나선 상황이다.
美 재무, "우크라 희토류 지분 50% 주면 파병"
16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국 NBC방송 등에 따르면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 희토류와 미국의 안보 보장을 교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베센트 장관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희토류의 50%를 보장받으면 종전 후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주둔시키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베센트 장관은 미국인이 우크라이나 광물 매장지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러시아를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에 미국 자산이 있으면 인계철선(引繼鐵線) 역할을 할 수 있어 러시아가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미국 측 주장이다. 다만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협상단이 “이 광물 협정이 우크라이나의 안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베센트 장관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존재할 것”이라는 모호한 답변만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식민지 협정' 반발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에 희토류 등을 의존하지 않으려고 우크라이나로부터 약 5,000억 달러(약 719조원) 규모의 광물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이미 수천억 달러를 지원했다며 그 대가로 희토류를 갖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프랑스24 등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2인자인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최근 우크라이나에 빠른 종전을 압박하는 듯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14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트럼프)이 나타났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뜻을 따르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조 바이든 전 정부 시절의 군사 지원 대가로 희토류를 요구했으며 미국의 안보 보장 약속은 없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전직 고위 관리 역시 미국의 이번 제안을 두고 “식민지 협정”이라고 반발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희토류 채굴이 이뤄진 후 분쟁이 발생한다면 미국 뉴욕 법원이 관할할 것이라는 점에도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관계자는 FT에 “이것이 트럼프의 협상 방식”이라며 “힘들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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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러 점령지 내 광물 처리도 논의해야"
다만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 점령지 내 광물 처리 문제를 들며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러시아 점령지 안에 있는 광물이 러시아와 동맹국인 이란·북한·중국에 넘어갈 가능성을 우려하며 이 문제를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함께 협의해야 한다는 취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6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미국 상원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우크라이나에는 티타늄이 있다"며 "산업용으로 4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매장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미국은 티타늄을 중국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티타늄을 방어하면 미국은 더 이상 러시아나 중국에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를 도와 이 자원을 방어해 달라"며 "그러면 함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는 유럽연합(EU)이 중요하다고 지정한 34개 광물 중 22개가 매장돼 있다. 산업 및 건설 자재, 철 합금, 귀금속 및 비철 금속, 일부 희토류 원소가 포함된다. 우크라이나에는 석탄 매장량도 상당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광물 자원 대부분이 러시아 점령지에 매장돼 있다. 우크라이나 지질 조사국이 발행한 광물 지도를 보면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희토류가 가장 많이 매장된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로이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희토류 매장량의 약 절반을 점유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뮌헨안보회의에 참석 중인 미국 정부 관리들은 미국과 우크라이나 양측이 협상할 여지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공화당의 중진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이 같은 협정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악몽’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이것이 미국의 부담이 아니라 혜택이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광물 개발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확고한 안보협정과 연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CNBC는 “우크라이나가 오랫동안 핵심 광물 개발을 추진해 왔고, 이를 위해 미국과 협정 맺기를 원했다”면서 “미국이 광물 채굴과 가공에 필요한 재원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